세상의 모두가 나와 같다면 어떨까? 쉽게 말해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군상이 나와 동일한 단일 타입으로 통일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는 거다. 흔한 MBTI N의 상상이라고도 하겠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걸 어떡해. 게다가 이건 내가 살면서 최소한 다섯 번 이상은 해 본 상상이다.
얼마 전에 쓴 문장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참고로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나 같은 사람들일 경우, 우선 이 세상에서 풍선과 폭죽과 놀이공원부터 사라질 것이고, 음악 산업과 여행 산업과 상당수의 연예오락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세상에서, 이동할 때 음악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선 이어폰 산업이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는다. 유선 이어폰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건 없다. 음악 산업 자체가 쇠퇴한다. 그나마 각종 장소들에서 bgm으로 재생되는 덕분에 간신히 저작권료가 발생한다. 풍선과 폭죽이라는 상품 자체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아, 정정하겠다. 각종 무대효과에 쓰일 행사용 폭죽은 살아남는다. 다만 생일파티에서 터트리곤 하는 폭죽과,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흔히들 가지고 노는 불꽃놀이 관련 물품은 전멸한다. 모든 서프라이즈는 시끄러운 소리 대신 감동적인 편지와 축하로 대체된다.
음료 업계도 사양길로 접어든다. 각종 술, 커피를 포함한 카페인 음료, 그리고 탄산음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모든 카페에는 '물 한 잔과 공간 이용' 옵션이 기본값으로 자리잡는다. 액상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해롭다는 잔소리도 당연히 공허한 말로 변하고 만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매운 음식을 안 먹고도 몇 달 몇 년을 거뜬히 살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불닭볶음면이나 마라탕 같은 건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된다. 사실 불닭볶음면만의 문제가 아니라, 라면 관련 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 된다. 간신히 생존한 극소수의 라면은 마트에서 가장 재고를 채울 필요 없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은 아예 찾을 길이 없어진다. 저속노화가 인구 대다수의 생활양식이 된다.
출판 산업이 그야말로 호황을 누린다. 이 문장을 쓰면서 급격히 행복해졌다. 전국민이 글을 쓰고 읽는 세상. 성인의 연간 독서율이 매년 100%를 달성하는 사회. 모든 동네에 도서관과 서점이 빠짐없이 존재하고, 교보문고가 교보생명을 먹여살리고, 전국적으로 독서 모임이 뿌리내리고, 모두가 활자를 사랑하며 서재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회... 여기까지 해두자. 한편 게임 업계와 영상 업계는 소비자 유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모두가 게임과 영상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영역에 쉽게 발을 들이지도 않기 때문에 소비자 유입이 그야말로 엄청난 관문이 되고 만다. 한번 진입한 소비자들도 자신이 중독된 것 같다 싶으면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이탈해버린다.
모든 사람이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삶을 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안전지향적, 위험회피형이다. '놀이공원? 뭐 하러 돈 내고 무서움과 위험을 감수해?'가 이곳의 보편 정서다. 패러글라이딩과 번지점프를 비롯한 각종 액티비티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전무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상상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모두가 얌전히 글 쓰고 책 읽고 안전하게 살려고만 하지, 몸 쓰는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소방관? 경찰관? 안전과 치안을 담당할 자원자가 한 명도 없다. 아주 이상적이고 미화된 사회를 그려보며 자그마한 범법자도 없을 거라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자연재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는데, 거기에 대처할 인력 또한 부재한다. '세상의 모두가 나와 같다면'에서 시작하는 나의 이 상상은 항상 이 대목에서 현실적으로 멈추고 만다.
사실 세상의 인간군상이 단 하나로 집약된다면 그 존재가 심지어 성인(聖人)이라 해도 그 사회는 온전히 돌아갈 수 없다. 모두가 한 유형에 속하는데 어떻게 세상의 다양한 역할들이 제대로 충족될 수 있을까. 모두가 성인(聖人)이라면? 모든 이가 자신의 지혜만을 설파하며, 혹은 자신의 지혜만을 간직하며 살겠지. 모두가 외향적이어도, 모두가 내향적이어도, 모두가 낙천적이어도, 모두가 냉소적이어도 문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다채롭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왁자지껄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이 세상이 멋지고 아름다운 거라는 이상적인 결론...으로 마무리할 생각은 아니고. 그냥 가끔 해보는 이런 상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도통 이해되지 않는 세상 반대편의 사람들을 보며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고 답답해하던 마음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가더라. '모두가 (나와) 같을 순 없으니까' 하면서 돌아서는 게 아니라 '모두가 같아선 안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나아가는 태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