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국 Apr 27. 2024

알고리즘이라는 환상이 지배하는 곳

(feat. 예모마일)

     

얼마 전, 예전에 피팅모델 일을 했었던 쇼핑몰 사장님과 오랜만에 만났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요즘 일은 잘 되고 계시냐 등등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사장님께서 최근에 새로운 쇼핑몰을 구상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는 최근 유튜브 쇼츠(Shorts)를 보며 시간을 때우던 중, ‘예모마일’이라는 쇼핑몰의 룩북(Look book) 영상이 나왔다.

      

관심사가 맞지도 않았고 일단 여자 옷을 다루는 분이셨기 때문에 나와 연관이 없다 생각하여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을 본 이후로, 쇼츠에 예모마일님의 영상이 나올 때마다 넘기지 못하고 자꾸 넋 놓고 보게 되었다.

    

그분의 외모와 같은 외적인 것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물론 룩북 영상에서 모델이 입고 있는 패션이 예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코디는 지금 어디서든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그 영상에 시선을 빼앗긴 이유는 영상의 BGM, 모델의 포즈, 영어 단어까지 뭔가 ‘힙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힙하다는 건 무엇일까? 분명한 건 가까운 과거에는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 사람들이 ‘힙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뭔가 멋있고, 특별하고, 개성이 강하고, 트렌디한 것을 지칭할 때 말했던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많고 많은 룩북 영상 중 예모마일님의 영상만 힙하다고 느낀 이유가 무엇일까? 굳이 그 쇼츠가 눈에 들어와 결국 중독되어 버린 것은 우연일까?      


갑자기 왜 ‘예모마일’님의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본다면, 앞서 쇼핑몰 사장님이 구상 중이라던 쇼핑몰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룩북 쇼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장님도 똑같은 유튜브 채널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장님의 이야기로는 주변의 쇼핑몰 사장님들도 최근에 ‘예모마일’ 채널의 쇼츠를 보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듣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에서 무작위로 보여주는 쇼츠, 릴스, 피드와 같은 것들은 모두에게 비슷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이런 콘텐츠를 보여주는 경향성은 몇 가지의 요소에 기인한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상 어떤 콘텐츠를 많이 시청할수록 그에 관련한 새로운 콘텐츠가 나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경향성은 흔히 말하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당신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혹은 그와 비슷한 것들을 사용한다면 당신도 알고리즘의 영향 아래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신이 사용하는 어떤 플랫폼은 당신이 사용 기록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당신이 소비할 확률이 높은 콘텐츠를 당신에게 제시한다. 그렇게 당신이 관심 있는 분야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관심사, 취향, 재능과 같은 것들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완벽히 같은 취향이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예모마일님의 사례를 비롯해, 나는 나와 취향이 매우 다르고 관심사도 다른 내 지인들과 알고리즘을 공유하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이렇게 공통적인 것이 노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이런 것을 보고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다.’라고 표현한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찍고 편집한 영상,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 올려 본인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돈이든, 팔로워 수든, 좋아요 수든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원하는 바를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콘텐츠를 계속 올리며 알고리즘이 본인을 선택해 주기를 기도한다.   

  

일반인들이 소비하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영상 뒤로, 선택받지 못한 콘텐츠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렇게 데이터 쪼가리가 되어 사라지는 콘텐츠들은 단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라지는 것일까? 알고리즘의 선택은 운의 영역일까?    

 

내 생각엔 그건 아닌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다는 영상이나 콘텐츠들은 모두 하나같이 처음 접했을 때 눈을 떼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처음에 언급한 ‘예모마일’님의 룩북 영상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눈을 떼지 못하는 영상들은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특별한 영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결국 알고리즘의 선택이라는 건 그저 환상이 아닐까? 조금 위험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여 선택받지 못한 쪽이 된 사람들의 변명이 아닐까?   

  

PS.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AI가 우리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분석해 우리가 소비할 확률이 높은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존재예요. 만약 그 존재가 우리를 선동하고,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하는 데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것들은 조금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