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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국 Apr 23. 2024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들

"지금은 가능 불가능을 따질 때가 아니야" (feat. 시험 기간)

2024년 1학기 시험 기간 중, 친구와 잠깐 통화를 했다.

    

“나 공부할 게 너무 많아.”

    

이번 학기 거의 모든 학점 전공을 듣는 친구의 단말마 같은 말이었다. 간단한 한 문장이었지만 그 친구가 얼마나 많이 공부에 시간을 쓰는지 알기에 나에게 들린 의미는 비명, 후회, 고통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동시에 피부로 와닿았다. 그에 반해 시험이 하나인 나는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다 할 수 있어?”

     

너무 무미건조하게 물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마 그 느낌이 맞을 것이다. 사실 생각을 거치고 나간 말이 아니라 입이 자동으로 움직여 한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친구가 한 말은 정말 나의 심금을 울렸다.     


“지금은 가능 불가능을 따질 때가 아니야.”

     

영화의 절정 부분에 주인공이 읊을만한 대사를 한 친구는 전화를 끊고 공부를 하러 갔고 나는 속으로 친구의 결연한 의지에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일들과 마주한다. 그것이 하기 싫은 일이든, 좋아하는 일이든 말이다.

     

한 가지 경험이 있다.

     

얼마 전, 수학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선생님,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

“....”     


한 아이가 와서 문제 하나를 물어보았다. 그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모르겠는데?’

    

그리고 이런 생각이 뇌에서 필터링되어 겨우 입으로 튀어나왔다.   

  

“식이 조금 복잡해서 풀어보고 다시 알려줄게.”   

  

사실 시간을 좀 벌려고 한 말이었다. 심지어 그 문제는 답지에 풀이과정도 없어서 오직 나의 수학 실력으로 풀어내야만 하는 문제였다.     


그렇게 문제 풀이를 시작한 후, 30초가 지나가고, 1분이 지나가고, 결국 5분이 넘게 흘렀을 때 정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가능 불가능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조건 풀어내야만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 있던 조바심이 커질수록, 문제는 더 풀리지 않았고, 결국 풀어냈을 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의 해석을 잘못한 나머지, 완전 다른 방향으로 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내가 그 자리에서 왜 그렇게 큰 조바심을 느꼈을까? 왜 식은땀을 흘린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자리에서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학원에서 선생님이란, 말 그대로 공부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면 결국 선생님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약간의 비약이 존재하기는 한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알고, 모든 문제를 바로 풀 수는 없다. 심지어 나는 그냥 대학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부여된 책임에 대한 행동을 해야 하기에 그렇게 큰 조바심을 느꼈던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좋든 싫든 해야만 하는 것들’이 이렇게 책임과 관련 있지 않을까?     


당신은 직업,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당신에게 부여된 자리, 지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의 경중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책임에 대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부여된 자리, 지위는 박탈되는 것이 당연하다.

    

앞서 말한 친구와 한 전화통화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친구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있고, 그에 맞는 전공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고, 몇 번의 학사경고가 반복되면 퇴학당하게 된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지위’란 대학생이고, ‘책임’은 전공 지식 습득이며, ‘책임에 대한 행동’을 하지 못하면 퇴학당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의 ‘책임’ 즉, 지위나 신분에 관련된 행동들은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아닐까? 정말 하기 싫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이런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들’에 의해서 덜컹거리지만 굴러가고, 불완전하게나마 유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에 대한 행동을 하면서 이 세상의 발전,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다. 사회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즉, 책임, 그리고 그에 대한 행동은 우리의 세상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PS.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책임도 있어요. 옆 나라 일본의 사형 제도에서 이를 엿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 사형을 집행할 때 교도관 3명이 동시에 버튼을 눌러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요. 이는 한 사람이 버튼을 눌렀을 때 그 사람에게 가해질 죄책감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요. 이런 것들을 보면 너무 무거운 책임은 나눠서 가지고 있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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