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는 기본 값...
몇일 전, 쿠키 키트를 선물 받은 둘째 아이가 쿠키를 만들고 싶은데 바로 만들지 못하게 되자 속이 상해서 입이 삐죽 나와 있었다. 쿠키를 만들면 버터가 필요했고 집에는 버터가 없었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마트에 가서 버터를 사오고 싶었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였고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터 하나 사기 위해 천근만근인 내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가고 싶지 않은 이상한 오기도 생겼다. 쿠키를 바로 만들지 못해서 속상해 하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내일 버터를 꼭 사올테니 내일 꼭 만들자' 라고 약속을 해봐도 아이는 속상한 마음을 쉬이 털어버리지 못한다.
아이의 속상해하는 모습에 나는 또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버터 까짓 거 얼른 나가서 사오지' vs ' 엄마가 몸이 이렇게 힘든데 쿠키 만들지 못하는 거 하나 때문에 이렇게 속상해 해야 해? 내일 만들면 안되는거야?' 라는 아이와 똑같은 이기적인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이렇게 다독이고 있다.
"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 수는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다 할 수 없는거야.
금 나와라 뚝딱! 하는 것 처럼 우리집에 없는 버터가 뚝딱 나오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집에는 버터가 없잖아... 오늘 당장 쿠키를 만들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잖아..."
아이를 타이르고 세상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세상 이치를 그 어린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이것은 영락 없이 '버터를 사러 나가지 않은 나' 의 입장만 고수하며 나를 변호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엄마의 모습이다. 그렇게 어른인 나는 어린아이인 둘째아이를 결국 이겼고, 다음날 오전에 바로 마트에 가서 버터를 사왔고 우리 아이는 그렇게나 만들고 싶었던 쿠키를 비로소 만들 수 있었다.
쿠키를 만들지 못해서 속상한 아이를 보며, 속상해 하는 아이의 감정상태에 휘둘려져서 함께 속상했고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가 속상해하자 나도 속상했고,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불편해졌고, 자주 삐치는 모습이 영 못 마땅해지기도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안에 가득해졌다.
아이의 마음도 비슷했으리라. 아이의 입장에서는 '왜 쿠키를 당장 만들 수 없는건지, 왜 우리 집에는 버터가 없는 건지, 왜 엄마는 버터를 당장 사러 가지 않는 건지...'서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쿠키를 만들면서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며 또 미안해진다. 어제 쿠키를 만들고 싶을 때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안 겪어도 되었을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의 마음에 잔뜩 집어넣어 준 죄책감도 함께 든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엄마는 버터를 사러 나가기 너무 귀찮았고 몸이 무거웠다. 어쨌든 그런 엄마를 잘 참아주고 견뎌주어 하루를 잘 참고 다음날 쿠키를 만들며 재미있어 하고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니 미안해해지고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며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이다.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가.
괜찮은 척 말고, 애 쓰지도 말고] 의 저자인 홍창진 신부는 어린 시절 불우하고 가난했던 가정사를 떠올리며 ' 대체 가족이란 인연이 무엇이기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행이 내 불행으로 전이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아이와 이 이런 일을 겪은 후, 이 문구가 내 가슴을 콕 찌른다.
"가족이란 인연이 무엇이기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행이 내 불행으로 전이되는가..."
아이의 속상한 모습에 함께 속상해지고, 아이의 화난 모습에 나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아이가 아프면 난 더 많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지는 경험을 한다. 아이가 기쁘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지 간에 모두 잊고 덩달아 평안해진다. 반대로 내 마음이 뭔가 불편한 것이 가득하면 평안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불같은 짜증을 쏟아낸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의 욕구불만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표출이 되고 아이들도 함께 불안해한다. 그렇게 각자 다른 개개인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의 끈이 전기줄 같이 엮어 있는 것이 가족인 것이다. 그 연결된 전기줄로 슬픔, 기쁨, 행복, 모든 감정이 감전이라도 된 듯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너무 불편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의 감정에 반응해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이기적인 인간이 비로소 인격을 이루고 사랑을 배우게 된다고 홍창진 신부님은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가족은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는 기본값이라고....
앞으로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감정을 배우고 그 감정에 감전될지 모른다. 아이들은 나와 남편을 통해서 무수히도 많은 감정의 감전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이 전기줄을 절대 끊어낼 수 없다. 그 전기줄에 서로 감전되어 다양한 감정을 겪어내고 부딪히고 참고 인내하고 인정하고 받아주며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임은 확실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이제 아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감전되어 함께 힘들어하는 내 마음도 위로도 되고 한결 편안해진다.
남편의 존재가, 아이들의 존재가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진정한 사랑은 '견디는 힘' 입니다.
그렇게 묵묵히 견디다 보면 가족이라는 전깃줄을 통해 언젠가는 예기치 않은 기쁨과 보람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신이 우리 곁에 가족을 머물게 한 이유입니다.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
저자 :홍창진 신부
#주부에세이 #육아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