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의 시행착오의 희생양 큰 아이( 두 번째 못다한 이야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너무 서툴러서, 아이에게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무시한 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였다.
아이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였다. 신경질적이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툭하면 나에게 욱하며 이를 으르렁거렸다. 그게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사춘기가 올 나이도 아닌데, 욱하는 아이를 보며 그 모습에 화가 났다. 엄마에게 버릇없이 대하는 모습만 붙들고 늘어졌다. 아이가 신호를 보내는건데 미처 몰랐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런 무지한 엄마에게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세밀하게 보여주셨던 것이다.
큰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만든건,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만든 건 바로 나였다.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었는데 왜 이러는거지?' 라는 마음속에 내 잘못을 보지 못하고 아이의 잘못된 모습만 크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많이 울엇는지 모른다.
아이를 손에 쥐고 쥐락펴락 내가 원하는 아이로 만들려고 했다. 아이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무시한 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의 모습으로 자라가길 원하고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잘못을 지적할 줄만 알았지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속상해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부정적인 모습이나 감정을 전혀 받아주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나고 무지한 실수를 큰 아이에게 해버린 것일까... 나름 육아책도 정말 많이 읽었다. 육책으로 다 이해하고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론과 현실은 철저히 분리되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나의 아픔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 엄마의 공백은 내 인생에서, 내가 엄마가 되고 나자 크게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이 모든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고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셨다. 나의 아픔과 나의 어린시절의 상처까지도 보듬어보는 시간을 주셨다.
몇날 몇일을 울다가 아이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고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앉혀놓고 모든 것을, 깨닫고 알게 된 엄마의 모든 무지와 실수를 고백했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이도 진지하게 듣고는 어느정도 공감해주었고 자신도 미안하다며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게 되다
큰 아이를 내가 꿈꾸는 아이로 키우려고 애쓰지 않았다.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해주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공감해주었다.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었다. " 많이 속상했구나? 진짜 속상했겠다..." 그리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나갔다.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었다. 매일 진심으로 안아주었다. 늘 아이편이 되어주었다. 매일 스킨십을 놓치지 않았다. 비로소야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 ,
부모의 한계의 선을 긋지 말자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여서 너무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멋지게 자란 큰 아이. 이 일이 있었던 것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고, 지금은 4학년이 되었다.
동생들과 너무 잘 지내고 잘 이끄는 매너남이다. 다른 동생들에게도 참 따뜻하고 다정하다. 정말 큰 아이를 보면 젠틀하고 듬직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직도 놀이터에서 동생들과 얼음땡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순수한 4학년이다. 동생들과 놀면서 강약을 조절할 줄 안다. 성취욕과 승부욕도 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다. 학습지를 밀려본 적도 단 한번도 없다. 늘 학습지 선생님이 칭찬하신다. 다른 집 아이들과 정말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으레 하시는 입바른 소리가 아니다.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라는 것도 알았다. 암기에 뛰어난 아이다. 좋은 머리를 어떻게 활용해서 잘 키워야 하나 고민되었는데, 공부하는 습관은 잡아주되 너무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 스스로 공부능력을 더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뭐든지 100점, 1등을 하려는 욕심이 있고 해내고야 만다.
어디서나 늘 착하고 바른 행실로 칭찬받고 인정받는 아이가 되었다.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더니 기어이 트로필 품에 안았다. 매일 피아노를 치는 아이의 아름다운 선율이 온 집안이 흘러넘친다.
현재 방학인데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영어학원에서 운영하는 캠프에 참여하며 방학을 아주 의미있고 보람되게 보내고 있다. 3주의 캠프를 끝까지 마쳤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일어나 영어단어를 외우고 나랑 같이 시험을 보고, 아침을 먹은 후에 다시 한번 더 시험을 보고 학원에 나선다. 이 모든 게 내가 시킨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고 계획한 일이다. 매일 백점을 받는다. 학원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다.
교회에서 하는 성경골든벨이나 말씀 암송대회에서도 탈락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안되겠다며 a4용지 2장이나 되는 아리송하고 헷갈리는 성경구절들도 모두 암기하여 형, 누나들을 제치고 성경골든벨 1등을 차지하였다.
아이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니 아이가 달라졌다. 아이가 본성의 성품과 재능을 더 키워나가며 자라나는 모습이 보인다. 믿는 만큼 자란다고 했던가...어쩌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인 나도 함께 자란다. 엄마라는 자리는 엄마사람을 만들기 위한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가 느끼는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내심 긴장되었다.
" 엄마는 너무 상냥하고 친절해.
내 주변에 친구들 엄마를 보면 애들한테 막 화내는 엄마들 많은데 엄마는 그렇게 화내지 않아서 좋아.
엄마 목소리는 친근하고 부드러워서 좋아.
엄마가 꼭 안아줄 때 포근한 구름같이 폭신하고 너무 좋아.
엄마가 내 엄마인 게 나한테는 행운인 것 같아.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고 노력하잖아.
엄마! 내 태명이 뭐라고 했지? 아 ! 다복이!
그 태명처럼 난 모든 복을 다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좋았던지...
아이는 나의 무지를 가슴에 묻었다.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는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신뢰한다. 정말 무한한 사랑이다. 내가 어디서 이런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도 난 더 노력한다. 아이들앞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어제보다 더 나은 엄마의 모습으로 서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아이들이 자라는만큼 엄마도 자란다....
아이의 교육을 생각해보기 전에, 우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어떤 모습이든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를 알고 나를 아는데서부터 진정한 교육이 시작되니까요.
[이지성의 칼비테 교육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