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의 시행착오의 희생양 큰 아이 (첫 번째 이야기)
첫째 아이를 품에 품고 태교를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면 태교에 좋지 않을까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집에서 쉬면서 태교에 전념했다. 자연분만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고 자연분만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산모요가교실에 등록했고, 원활한 자연분만을 위해서 매일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행복하고 감사했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12시간의 진통끝에 큰 아이를 품에 안았다.
밤새 진통을 해서 그런지 너무 힘들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잠깐 기절을 했다. 일어나보니 의사선생님께서 후처치를 하고 계셨다. 온 몸이 찢어지게 아프고 힘들면서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조리원에 있으면서 모유호출이 올 때마다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갔다. 내 젖을 찾는 아이의 코와 입술이 너무 예뻤다. 그렇게 젖을 먹이고 돌아오면 금새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첫사랑보다 더 아련했다. 신기한 감정이다.
첫째 아이의 임신과 출산은 모든 부모가 나와 동일한 마음일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귀했고 특별했다.정말 잘 키우고 싶었고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만 넘치게 주면,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건강하게 잘 자랄거라고 생각했다.
첫째아이는 상당히 온순한 편이였다. 어디 데리고 나가도 힘들게 하는 법이 없었다.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분주하게 탐험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한 자리에서 바라보거나 관찰하는 일이 많았다.
내성적인 내 성격을 영락없이 닮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내성적인 성격이 가끔은 불편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네살 때,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철저하게 큰 아이 위주로 육아했다. 둘째가 빽빽 울어대도 큰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엔 큰아이에게 먼저 집중하고 필요를 해결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을 보고 으레 부리는 심술이나 해꼬지가 없었다. 예뻐하고 귀여워했다. 주변에서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하는데도 어쩐지 짠해서 보내지 않았다. 4살이였던 큰 아이가 둘째아이의 낮잠타임에 함께 자는 시간이 잘 맞았다. 큰 아이랑 놀아주고 둘째 젖을 물리면서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두 아이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고 그 시간이 꿀같은 자유시간였다.
큰 아이는 5살에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다.
이렇게 나름 애지중지 키운 첫 아이라서, 모든 사랑을 넘치게 주었던 아이라서, 크게 어려움 없이 순하게 잘 자랐던 큰 아이라서 더 많이 기대했던 것 같다. 멋진 아들이 될 거라고!
유치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고, 부쩍 커버린 큰 아이는 나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잘 내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다. 자존감도 낮고 매사에 자신도 없어했다. 화를 잘 내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 때마다 엄청 아이를 잡았다. 아이가 왜 그러는지 이유와 원인은 파악하지 않은 체,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이의 잘못된 모습만 지적했다. 남자아이는 짧고 강하게 훈육해야 했는데 그것도 몰랐다. 옆에 앉혀놓고 닥달을 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캐 물었다. 나름 마음을 만져주려고 했는데 방법을 몰라서 본의 아니게 큰 아이를 너무 힘들고 피곤하게 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이 좋아지지 않고 계속 심해지자 기도제목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었는데,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사춘기가 오는 시기도 아닌 나이에 왜 저렇게 화가 많고 짜증이 많고 욱하는거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배신감이 느껴졌다.
오래동안 기도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셨고 큰 아이가 왜 그런지 하나 하나 퍼즐조각이 맞춰지듯이 알게 해주셨다. 기억나게 해주셨다.
난 너무 수용적인 부모였다. 아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는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안되는 것도 있고 훈육의 법칙도 나름 정해놓았지만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 다음에 알게 된 엄마의 문제는 난 한번도 아이 편이였던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또래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또 아이의 정적인 모습을 조금은 바꿔주고싶고, 변화를 주고 싶어서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에 많이 노출해주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다보면 다툴 수도 있고 속상할 수도 있는데, 늘 우리 아이만 속상해하고 억울한 상황이 되자 화가 났다.
그것도 몰랐다. 우리 아이는 다수의 아이들과 노는 것 보다는 단짝 친구 한명과 어울리는 게 편하고 좋은 아이라는 것을... 그냥 다양한 친구와 어울리며 사교성을 키워나가길 바랬고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상황속에 던져두었다.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아이 편이 되어주지 못했고 큰 아이에게 참으라고만 했다. '그럴수도 있지' 라며 넘기라고만 했다. 그 어린 아이한테 말이다....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내 아이가 모난 모습을 보이는게 싫어서 빨리 그 상황을 종료하기에만 급급했다. 아이가 억울한 일이 생겨도 한번도 아이편을 들어주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지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큰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만든 건 바로 엄마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몇날 몇일을 잠든 큰 아이를 보면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가슴을 치며 눈물 콧물을 흘렸다.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못했다. 모든 부모가 부모교육을 필수로 받고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원망하며 필수교육으로 받아야 하는 부모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사회를 원망했다.
몇날 몇일을 울고 나서 큰 아이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엄마마음과 엄마가 느낀 것, 엄마가 잘 못한 것에 대해서 다 설명해주었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이도 어느정도 공감하며 자신의 속 마음도 말해주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다음 편에 두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