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주는 특별한 기쁨들
화가 난 엄마 앞에서
확실하게 달랐던 세 아이의 반응
며칠 전,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마음이 걷잡을 수가 없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났는데, 아이들 아침밥을 해주어야 하기에, 화와 짜증을 혼자서 억누르며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감추려고 했지만 감춰지지 않았고, 감출 수 없었습니다. 화가 난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감지한 세 아들들...
이때, 아들들의 반응이 모두 달라서 정말 놀랐는데요, 사소한 사건 앞에서 보인 세 아이들의 특성과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보면서 내 아이들을 더 확실히 알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일단,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화가 났든지 말든지 안중에도 없는 듯하면서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엄마인 저는 알아요. 큰 아이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고 있는 아이라는 걸요. 큰 아이는 안보는 척하면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추리하고 유추해보는 걸 아주 잘하는데, 더 놀라운 건 늘 유추한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늘 큰 아이가 조심스러워요. 큰 아이는 엄마가 화가 났을 때, 아무 일도 없는 듯 모른 척하며 눈치를 보면서 상황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애교쟁이 6살 막내가 저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 엄마! 표정이 왜 그래? 엄마 표정이 왜 안 좋은 거야? "라고 계속 물으면서 대화를 통해서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그때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았던 저는 귀여운 막내가 제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엄마가 화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모습마저도 외면했고 결국 막내는 두 어번 묻더니 놀고 있던 놀잇감을 만지작거립니다.
'막내한테 설명해주고 나도 기분을 좀 풀어볼걸 그랬나, 너무 무정했나...' 싶어 후회가 살짝 밀려오려던 순간에, 뒤에서 작은 손이 제 허리를 스리슬쩍 감싸 안더라고요. 방금 왔었던 막내의 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우리 둘째 아이의 손이 제 허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뒤에서 제 허리를 꼭 끌어안고 엄마를 백허그해주며 둘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그저 꼭 안고 있을 뿐 입니다. 그 짧은 순간, 늘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엄마를 놀라게 하는 심성 착하고 세심한 둘째 아이의 성품이 떠올라 아이가 제 허리를 감싸 안은 그 손에 제 손을 덮어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어요. 그제야 쉽게 풀리지 않았던 화가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참 묘한 경험이었어요. 모른 척하던 큰 아이, 이유를 알고 싶어 하던 막내, 아무 말 없이 뒤에서 꼭 안아주던 둘째 아이의 작은 손, 세 아이의 반응이 참 달랐던 사실이 재미있었고, 그 반응 앞에서 아이들의 성향이 드러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세 가지의 반응 앞에서 저를 꼭 안아주었던 둘째 아이의 작은 손이 결국은 제 마음을 스르르 녹여주었던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다.
내 배에서 태어났지만 세 아이는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 개인은 모두가 다 다르죠. 나와 남편이 다르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은 남편과 저의 기질과 성향을 선택하거나 포기할 자유권도 주어지지 않은 체,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태어났고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 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의 성격과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자라납니다. 세 아이 모두 완벽한 개인적인 주체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얼마나 많이 비교하고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체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지 문득 미안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그 아이마다의 특성이 더 뚜렷하게 보이고 , 장단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교하기 쉬워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각자 다른 아이가 엄마인 나에게 주는 즐거움과 감동이 저 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 즐겁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이제 저는 더 이상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상황 파악을 하며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자칫 무심해 보일 수 있는 아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큰 아이가 가진 관찰력은 다른 아이들이 쉽게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강점이고 누구보다 세심한 아들의 이성적인 충고로 저를 돌아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닌 속 깊은 어른 아이입니다. 둘째 아이는 둘째 특유의 환경적인 요인으로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고, 어떻게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아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 또한 다른 누군가가 아무리 가지려고 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따뜻한 마음과 배려와 사랑과 연민이 작은 아이 마음에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귀여운 막내 아이는 여기저기 사랑도 많이 받고, 형들의 배려 속에서 자라나 막내 특유의 이기심과 영악함이 있지만, 형들이 하지 못하는 다채로운 질문과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입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엄마가 화난 이유를 알고 싶어 했던 막내의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가 되니 확실히 막내 아이가 하루 종일 종알거리는 수다와 질문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통해서 그리실 그림
인성교육을 중하게 여기는 유대인들 또한 한 부모 아래 태어난 형제라도 저마도 특별한 재능과 개성이 있으며, 이를 잘 살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자신하며 아이들을 양육합니다. 조금은 추상적이었던 ' 아이마다의 특별한 재능과 개성을 인정하는 것' 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모두 다 다른 걸 보면서 오랫동안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세 아이에게 주신 달란트와 비전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을지, 아이들의 그 달란트를 어떻게 잘 찾고 개발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지 늘 기도하며 묻곤 했는데요, 이제야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들의 달란트와 재능과 성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변하고 달라지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들의 도화지가 무슨 색인지는 제가 알게 되었으니 참 감사한 것 같아요. 그 도화지 안에 하나님께서 어떤 그림을 그리실지, 저는 너무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실 때, 아이들이 물감을 쏟고 제가 색연필을 실수로 죽 긋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고쳐나가실 하나님이시고, 완벽하신 하나님과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실수투성이 엄마인 제가 그린 그림이 완성되는 그날이 너무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 주신 달란트와 은사대로 사용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맡겨주신 육아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길 오늘도 기도하며 아이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더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오늘 내가 엄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요?
한국인들은 흔히 형과 동생을 비교한다. "형은 저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는 식으로 나무라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형과 동생의 두뇌를 비교하는 법이 절대 없다.
'자녀의 두뇌는 서로 비교하지 말되, 개성은 서로 비교하라'는 유대인의 격언대로, 자녀들이 각각의 재능과 개성을 잘 살리도록 선의의 경쟁을 부추기는 게 유대인 교육법의 특징이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