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 스폰서이자 에너지 드링크 브랜드인 레드불(Red Bull)은 2006년을 시작으로 3년에 한 번씩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레드불 전용 격납고에서 세계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레드불 페이퍼 윙스(Red Bull Paper Wings)'를 개최한다.
코로나19로 계속 대회가 개최되지 않던 중 다시 개최한 2022년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 부분에서 1등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공부방에서도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마스크를 쓰고 서로 접촉도 못하고 대화도 못하여, 오랫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놀았던 놀이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던 차라 아이들과 함께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종이비행기를 만드는 재료는 A4용지를 사용한다. 아이들이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을 하기 위함이다. 단 종이비행기 모양은 각자 자신이 만들고 싶은 모양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방학식날 종이비행기 날리기를 하기로 하고 2주 전부터 각자 알아서 유튜브나 종이접기 책을 찾아서 종이비행기 만드는 법을 알아 오라고 했다.
일부 적극적인 아이들은 유튜브로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 직접 날려 보는 등 연습을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대회를 하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하기 싫은 공부를 안 하니 그걸로 만족할 뿐이다. 하지만 막상 놀이를 시작하니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공부방에 도착하자마자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관련 신문기사를 다 함께 읽고 각자 비행기를 만들도록 하였다. 함께 읽었던 신문기사에도 비행기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진과 설명이 있었다. 종이비행기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워낙 쉽기 때문에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종이비행기 만들기를 집에서 미리 연습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비행기 접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집에서 개인적으로 만들고 연습해 온 승부욕이 강한 학생들마저도 종이비행기를 이번에 처음으로 만들어봤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몇 번 종이비행기 날리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종이비행기 만드는 법을 미리 알아오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알아서 잘 접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5~6학년 학생들인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이다, 아이들의 놀이를 대부분 스마트폰이 대신하니 아이들 정서와 성장에 도움이 되는 놀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변해버린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당황하여 한참 동안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대회 규칙은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의 비행기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을 날려야 한다. 둘째, 연습으로 날리기를 한 후 두 번의 기록을 재고 이 중 좋은 기록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날리는 방향은 베란다로 통하는 거실문을 열어두고 베란다 끝을 출발선으로 정해 현관문 쪽으로 날리는 것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아이들은 놀이 규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고 비행기 만드는 방식도 달랐다. 미리 종이비행기 만드는 법을 배워온 몇몇 남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아이들을 도와줘서 모두가 자신만의 종이비행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베란다에서 목표방향인 현관문까지 책상 칸막이와 다른 장애물이 많아 비행기가 일정한 높이와 방향을 갖지 못하면 장애물에 부딪힌다. 처음에는 많은 장애물들 때문에 실내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막상 종이비행기를 베란다 끝에서 현관 방향으로 날리다 보니, 오히려 장애물이 놀이를 더 재미있게 해 주었다.
사람이 작정을 하고 어느 한 곳을 목표로 비행기를 날리고자 하면 오히려 그 목표에 정확하게 맞히기가 매우 어렵다. 종이비행기가 날아가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에 꽂히는 경우가 많자, 아이들이 놀라서 내지르는 함성으로 작은 거실이 들썩거렸다.
그러니 작은 공부방 거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는 장애물 달리기처럼 장애물을 잘 피해 멀리 날리는 대회가 되어 더 박진감이 넘치는 대회가 된 것이다.
연습 시간이 끝난 후 종이비행기 날리는 순서를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1차 기록에서 5학년 학생 J가 거의 8미터를 날려서 중간 순위 1위를 하였다. 그 외 대부분 5미터 이하에서 제각각이었다. 2차 기록을 재기에 앞서 각자의 종이비행기를 점검하거나 다시 만들기도 하면서 연습 시간을 가졌다.
중간 연습 시간 중 승부욕이 강한 K가 종이비행기 모양을 매우 가늘고 뾰족하게,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모양으로 만들어 연습으로 날렸다. 1차 날리기에서 1등 한 J의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아이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다들 K의 비행기 모양을 배우고 싶어 했다. K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비행기 만드는 법과 날리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결승 격인 2차 날리기 순간이 왔고, 모두 K가 알려 준 방식으로 비행기를 접어서 아이들 반 이상이 6미터를 넘기게 되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K를 포함 어떤 아이도 1차 최고 기록인 8미터를 넘기지 못했다. 결국 1차 기록으로 J가 1등을 하여 1등 상품 손선풍기를 받았다.
3등까지 시상을 하는 데 안타깝게도 아이들에게 비행기 만드는 법과 날리는 법을 알려 주었던 K는 실전에서는 기록이 좋지 않아 4등을 하게 되었고, K로부터 비행기 만드는 법을 배운 다른 두 학생이 2등과 3등을 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승부욕이 강했던 K는 복잡한 표정으로 울먹였다.
K가 자신만 잘하고 싶어서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으면 혼자 1등을 하고 끝났을 거다. 하지만 K가 그런 욕심을 버리고 다른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만드는 법과 날리는 법을 알려주어 모두가 ‘멀리 더 멀리’ 날리면서 훨씬 재미있는 비행기 날리기를 할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K의 배려하는 마음과 노력에 대해 칭찬과 보상을 안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K에게는 특별상을 주기로 했다. 다른 학생들이 잘 만들고 날릴 수 있도록 정성껏 도와주었다는 것이 특별상의 이유다. 비록 1등이 가져간 손선풍기는 갖지 못했지만 2등과 3등 부럽지 않은 상품을 고를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2등, 3등을 한 학생들 역시 K의 도움을 많이 받은지라 불만 없이 K의 특별상을 축하해 주었다.
아이들 모두 비행기를 더 잘 날릴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많아, 개학식날 다시 대회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학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서 종이비행기를 접기로 했고, 종이는 A4 용지가 아닌 색종이로 접어서 날리기로 했다.
1등을 했던 J가 “전 제가 세운 기록을 제가 깨야겠네요.” 라며 다시 한번 1등에 도전할 것임을 자랑스레 얘기하기도 했고, 특별상을 받은 K 역시 이번엔 꼭 1등을 하겠다는 각오가 남달랐다.
열띤 분위기 속에서 한 명 한 명 신중하게 종이비행기를 날렸고, 1등 종이비행기는 8미터 지점을 지나 현관 문도 넘어 복도 창 밖으로 유유히 날아가버렸다.
야구에서 장외 홈런의 느낌이랄까?
그 종이비행기의 주인공은 K.
순간 아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환호와 함께 K를 축하해 주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경쟁 요소를 넣었지만, 승부 때문에 마음에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는 놀이였다. 게다가 스마트폰만 갖고 놀 던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통해 온전히 아날로그 감성으로 놀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학교 성적을 올릴 때보다 더 보람을 느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익한 놀이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아이들이 또래와 함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교과 공부 외에 함께 하는 놀이를 배우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놀이를 통해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이 시대의 초등학생들을 위한 필수 교과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