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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Nov 08. 2022

깨진 유리창과 깨진 나의 마음

- 낙서하는 마음 1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

"만일 한 건물의 유리창이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있다면 다른 유리창들도 곧 깨어질 것이라는 데 대해 사회심리학자들과 경찰관들은 동의하곤 한다. 이런 경향은 잘 사는 동네에서건 못 사는 동네에서건 마찬가지이다. (중략) 한 장의 방치된 깨진 유리창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신호이며, 따라서 유리창을 더 깨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이 없다."     


범죄는 아니지만, 공부방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낙서에도 이 깨진 유리창 이론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깨끗한 책상과 칸막이에는 누구도 선뜻 낙서하지 않는데 아주 자그마한 낙서나 심지어 연필 가루가 번진 얼룩에도 이를 출발 신호로 삼아 아이들은 낙서를 시작한다. 여기에는 ‘내가 먼저 안 했는데요’라는 아이들의 대표적인 ‘자기변호’와도 결합한 듯하다. 내가 먼저 낙서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낙서했으니 나도 낙서했고 그러니 나의 낙서는 정당하다, 먼저 낙서한 사람을 찾아내면 그때 나도 벌을 받겠다는 식이다.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난무할 때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표제어로 ‘◯◯과의 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공부방에서는 ‘낙서와의 전쟁’이라는 말도 낙서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낙서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공부방의 벽과 책상, 책상을 받치고 있는 쇠기둥, 의자 등받이와 다리, 책장의 선반 모서리 기둥, 베란다 창의 롤스크린 등 그야말로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아이들이 낙서해버린다.     


아이들의 낙서 기술은 신기에 가까울 때가 있다. 도대체 의자에 앉아서 가능할까 싶게 책상 아랫면에 낙서하는 것이다. 책상 아래로 웅크리고 들어가서 낙서해도 힘들 텐데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어떻게 책상 아랫면에 그림 같은 낙서를 하는지 어느 땐 화보다 감탄이 앞선다.      


이러한 낙서는 나의 공부방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공부방과 학원 관련 커뮤니티에서 새로 산 가구에 학생이 낙서하는 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많이 봤다. 나 역시 초창기에는 매일매일 맞닥뜨리게 되는 낙서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낙서를 막기 위해 강한 광택 코팅이 된 책상을 사서 물티슈로 문지르기만 해도 쓱쓱 잘 지워지도록 했고, 책상 칸막이는 낙서하면 바로 눈에 뜨일 밝은 색 시트지로 전체를 포장했다. 물론 이런다고 아이들이 낙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낙서를 발견할 때마다 매번 낙서한 아이를 찾아내고 혼내는 일은 낙서를 지우는 것보다 더 피곤한 일이다. 그로 인해 아이들과의 관계도 나빠진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마련했다. 낙서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만 그 아이들에게 훈계하고 낙서한 곳의 사진을 찍어 둔다. 사진을 찍어서 그걸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그 사진을 찍었던 사실마저 잊어버리는지라 그저 학생들에게 자신의 낙서 현장이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여 이후 함께 쓰는 물건들에 하는 낙서를 좀 더 줄여 보겠다는 일종의 제어 장치인 것이다.    

  

‘아이들은 왜 끊임없이 낙서할까?’로 시작하여 ‘그래, 아이들에게 낙서는 그들만의 또 다른 마음의 표현 방식이야.’라고 자문자답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해도  깨끗해야 할 부분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낙서로 나의 마음에 금이 가고 결국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진다.


언제나 아이들 마음도 깨지지 않고 나의 마음도 깨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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