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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Oct 17. 2022

시속 200 킬로미터의 진실

아이들은 글 읽기를 싫어한다. 심지어 문제를 풀려면 문제를 읽어야 하는데 그것도 싫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글 읽기에 흥미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신문기사를 모아서 소리 내어 읽게 한다. 처음에는 “왜 읽어요?”, “안 읽으면 안 돼요?”, “그냥 눈으로만 읽을래요.”라며 볼멘소리를 하다가도 관심 있는 내용이 나오면 모든 걸 잊고 신문 기사 내용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러니 매일 아이들이 읽을 만한 재미난 신문기사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그날은 아이들과 함께 부가티 시론이라는 자동차 관련 신문 기사를 함께 읽었다. 부가티 시론이라는 차가 최고 속력으로 시속 490㎞의 주행 기록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한 시간에 490km나 간데, 정말 빠르지?”

“......”

아직 애들 반응이 없다.     


초등학생 특히 저학년은 길이나 무게의 값이 너무 커지면 그 값이 얼마나 큰지 감을 못 잡는다. 2~3학년 수학 교과서에도 지우개의 길이나 내 발 사이즈, 학교 운동장 길이 등이 센티미터와 밀리미터, 미터 중 어떤 단위를 쓰는지, 실제 사물의 무게나 길이에 알맞은 단위를 고르는 문제가 나오는데 저학년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제 유형 중 하나이다. 그러니 일상생활에서 쉽게 알 수 있는 무게나 길이 등으로 바꿔서 알려 주어야 한다.     


“부산 가본 사람?”

“저요~”, “저요~”

“여기서 부산에 가려면 아빠 차로 아무리 빨리 가도 보통 4시간 이상 걸려. 차가 밀리면 더 걸리지. 근데 부가티 시론의 속력으로 가면 부산에 1시간도 안 돼서 도착할 수 있다는 거야.”


그제야 반응을 보인다.

“부산을 한 시간 만에?, 헐”

“우와~”

“대박~”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가티 시론이 달릴 수 있는 일반 도로가 없어. 우리나라는 보통 최고 속도가 시속 110㎞이고 차량 계기판 속도계에는 최고 속도가 260㎞로 되어 있지만 그렇게 빨리 달리지도 못한단다.”     


유난히 글 읽기를 싫어하는 정훈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

“아닌데요. 우리 아빠는 항상 200㎞ 보다 더 빨리 달리는데요.”

“엥? 정말?”

“네, 부산 갈 때 아빠는 200㎞ 이상으로 달리는데요. 제가 봤어요.”     

‘설마...’

하마터면 또 그대로 믿을 뻔했다.

“정훈아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는 110㎞가 최고 속도이고 아주 일부 구간에서만 130㎞인데? “

“정말이에요, 아빠랑 할아버지 집이나 어디 놀러 갈 때 200㎞ 넘게 빨리 달려요.”     

하기 싫은 신문 읽기를 매일 시키는 나에 대한 불만이 뚱한 표정과 툴툴대는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본인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아빠를 폭주족으로 만들면서까지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우기는 정훈이의 마음은 그 순간 부가티 시론의 최고 속력인 시속 490㎞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아, 이상하네, 정훈아,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30㎞만 넘어도 카메라에 찍혀서 벌금을 많이 내야 하고 시속 200㎞나 되면 경찰차가 출동해서 운전자를 경찰서로 데려가는데....”     

정훈이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부릅떴던 두 눈이 불안하게 아래를 향하면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어? 내가 잘못 봤나... 아닌 거 같기도 하고... ”

그리고 숨을 크게 한 번 내쉰다.

“선생님, 제가 잘못 본 거 같아요.”

“그래, 정훈아 잘못 봤을 거야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는 차가 120㎞이상을 달릴 수 있어도 실제로 그렇게 달리면 불법이거든. 정훈이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지?”     


정훈이는 아빠가 운전할 때마다 자신이 직접 속도계를 보았던 기억을 근거로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아빠의 차가 자신이 만족할 만큼 신나게 잘 달렸던 기분 좋은 기억에 아빠 차는 분명 시속 200㎞ 이상의 속도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빠 차를 통해 아빠 자랑도 하고 나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매일 신문 읽기를 시키는 선생님에 대한 반항심으로 끝까지 우겨보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정훈이의 이런 태도는 귀여운 편에 속한다. 가끔 초등생들 중 일부는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경우에 딴지를 걸며 덤비거나 발을 구르며 소리 지르고 울면서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너무 말도 안 되게 고집을 부리면 그 감정에 휘말릴 때가 있다. 공부를 하러 와서 괜히 감정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데 어느 한순간 감정에 금이 가면 강물을 덮었던 얼음이 쩍쩍 갈라져 학생과 선생 둘 다 침몰한다. 그러니 서로가 상처받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상을 좀 더 산 어른에게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하나님, 오늘도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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