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길래...
캐나다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었을 때는 홈스테이(homestay)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우리 집이 아니라 매일 돈을 지불해야 허락되는 곳이지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미 얼굴을 튼 주인내외 말고는 낯선 이를 만날 일도 없으니 무서운 영어를 해야 할 일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정된 삶을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담보로 무작정 오긴 했지만 정해진 것없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저 막막할 따름이고 지금은 뭘 할 수 조차도 없는 무대책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우리의 심란한 마음을 부추긴다.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니 봄이라 부르기도 무색할 정도로 뒷마당에 쌓여있는 눈이 밖의 날씨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이곳 대문밖의 세상은 아직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렇지만 직접 부딪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니까 작은 용기라도 내서 나가보기로 한다.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실어다 줄 차는 없지만 다행히 버스가 매일 스케줄 대로 온다고 하니 정확한 시간과 버스요금을 철저히 알아본 다음, 시간에 맞춰 나가 기다리고 있으면 될 듯하다.
꽤 추운 날씨라 그에 맞게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자칫 험난할 수도 있는 바깥세상으로 감히 첫발을 내디뎌 본다.
겨우 도착한 버스 정류장엔 추위 탓인지 사람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적막강산(寂寞江山)이고 우리 세 사람 말고는 그 어떤 이도 없다.
과연 여기가 버스 정류장이 맞는지 버스가 오기는 하는 건지 물어볼 곳도 사람도 없다.
게다가 오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나름 고민한 끝에 큰맘 먹고 나와 본 것인데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는 버스를 애타게 기다리다 몸만 꽁꽁 얼어 버렸다.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좌절의 쓴맛만 보고 결국은 민박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오지 않은 이유를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는 걸 보니 주인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한국이었다면 관련 부서에 항의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오고 신문엔 1면 기사로 도배가 되었을 것을... 나아가 저녁뉴스엔 특종 잡은 방송 3사의 앵커들이 나와
"오늘 ㅇㅇ 지역에 도착시간보다 1시간이 넘도록 버스가 오지 않아 추운 영하의 날씨에 기다리던 시민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난리가 날 텐데...
역시 넓은 땅 덩어리만큼 너그러운 캐나다인들은 그런 일쯤엔 아무런 불평, 불만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모양이다.
직접 당한 가엾은 우리 가족 말고는 어느 누구도 그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도, 언급하는 이도 없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우리에게 증언 인터뷰라도 해달라 요청하는 방송사나 신문사도 없다.
나름의 두려움을 이겨보겠다고 시도해 본 그날의 외출은 매서운 추위에 떨기만 했을 뿐 아무런 성과도, 의미도 얻지 못한 채 맥없이 끝나 버렸다.
거부당한 첫 시도가 억울하기도 하고, 한번 해 봤으니 두 번은 못할까 싶은 오기(傲氣)가 생긴다.
살짝 걸린 발동에 엑셀로 속도를 더해 다음날 시간에 맞춰 다시 한번 버스정류장으로 가 본다.
어제의 일은 이미 우리만 아는 비밀로 묻혀 버렸고 정류장에는 알 수 없는 고요만이 머문다.
괜한 객기(客氣)를 부린 건 아닐까? 오늘도 안 오면 어쩌지?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 걱정이 된다.
손이 시려오기 시작한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받을까 싶어 잔뜩 웅크린 채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멀리서 버스가 보인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제시간에 도착한 버스에 오늘은 무사히 몸을 싣는다.
침착하게 요금 통에 돈을 넣고 빈자리에 앉고 나니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캐나다에서 이용해 보는 첫 대중교통이다.
~출발!~
우여곡절(?) 끝에 탄 버스 안에는 우리와는 다른 얼굴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여기저기 멀미 나듯 들려오고 비어 있던 내 옆자리는 백인 소녀아이가 채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혹시 말이라도 시킬까 식은땀이 흐른다.
같은 마음인 건지 남편도 아들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듯 조용히 앞만 응시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는 낯선 집들과 건물들... 남편이 이끄는 곳이 어디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다 왔으니 내리라고 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벨을 누르면서 내린다는 무언의 사인을 주고 그것을 눈치챈 영리한 운전기사는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를 세운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 남편과 아이가 먼저 내리고 내 차례가 된 순간, 이를 어째~ 서서히 문이 닫힌다.
살짝 손으로 밀기만 하면 되는데 방법을 몰랐던 나는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고 그대로 문이 닫혀버린 버스는 홀로 남은 나를 가둔 채 서둘러 떠나버린다.
둘러보니 안에 있던 승객들은 모두 내렸고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갇혀 버렸다! 버스 안에... 그것도 캐나다에서...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다니! 왜? 왜? 왜?
혹시라도 어리바리하고 나이 들어 효용가치(效用價値) 1도 없는 아줌마지만 멍텅쿠리배에 팔아넘길 요량으로 일부러 재빨리 문을 닫아 버린 건 아닌지...
제발 저 냉정한 사내는 운전기사를 사칭한 인신매매범은 아니어야 할 텐데...
별 쓸데없는 상상까지 한다.
이런 속 타는 마음을 알 리 없는 버스는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당장 버스를 세워달라고 하고 싶지만 영어로 문 열어 주세요, 버스 좀 세워 주세요 그 쉬운 말들 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하얗게 비어버린 머리가 단어들을 생각하느라 열일 중이지만 아무리 레이더(radar)를 돌려도 별다른 방안(方案)을 내놓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당황하지 말고 진정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문 door 열다 open 이니까 Open the door
머리로는 조각 맞춤을 다 해놨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강강술래 하듯 안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낼 용기가 없으니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버스는 계속 직진 go.
운전기사는 내가 이 버스에 있는 것을 모르는 가 보다.
살짝만이라도 돌아 봐 주면 좋겠는데...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 뒤 좀 봐주시면 안 돼요? 한 번만요~!
들리지도 않을 마음속 소리를 외쳐본다.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다.
전 정류장에서부터 지금 버스가 가고 있는 곳의 노선을 머리로 암기해서라도 기억해 둬야 할 것 같다.
여기서라도 내리면 찾아갈 것도 같은데 더 가면 어려울 듯하니 어떻게 해서든 다시 돌아갈 길을 머릿속에라도 그려놓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멈춤을 모르는 버스 때문에 가족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어디까지 가게 될지 몰라 초조하고 조급해진다.
더구나 두뇌 용량에 과부하(過負荷)가 걸렸는지 메모리가 꽉 차서 더 이상 외울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고 배터리마저 이미 방전된 상태다.
가슴이 쿵덕~쿵덕~ 돌 방아질을 해 대고 코너 끝까지 몰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던 바로 그때, 입에서 자리를 못 찾고 떠돌던 영어 단어가 한심한 나를 비웃듯이 밖으로 툭하고 튀어나와 버렸다 "오픈 더 도어!"...
그 여세를 몰아 행여 못 들을까 문까지 탕탕 두드리며 "오픈 더 도어!" 울부짖듯 소리친다.
살면서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절실하게...
이 와중에 예의까지 차릴 여력은 없었나 보다.
~주세요(please)는 진즉이 온데간데도 없고 문 열어! 명령하듯 한 문장만 짧고 간단하게 쏟아낸다.
그제야 기사가 운전석 위에 있는 백미러로 슬쩍 보더니 묵직한 중저음으로 말을 건넨다.
This bus is not going to stop any more
That was the last bus stop...
역시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영어가 안 나와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그 말이 그토록 또렷하게 들릴 수가 없다.
이 버스는 더 이상 서지 않아요
거기가 종점이었거든요...
문제는 그의 말이 들렸다고는 하나 딱히 이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버스가 안 선다고 하니 더 난감해져 버렸다.
핸드폰이 없어 가족과는 연락도 안되고, 주인집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돈은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공중전화 거는 법 또한 배운 적이 전무(全無) 하니 나는 이제 완전한 국제미아가 되어 버렸다.
다급해진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손바닥으로 버스문을 둔탁하게 두드리며 다시 한번 절규하듯 목놓아 외친다.
"오픈 더 도어! 오픈 더 도어!"
그 모습이 얼마나 가엾어 보였는지 마음 착한(?) 기사 아저씨가 중간쯤 어딘가에서 차를 세우더니 말없이 문을 열어 준다.
천천히 열리고 있는 버스 문밖의 세상이 나를 환영한다는 듯 환한 빛을 비춰준다.
살았다!~~
탈옥하듯 빠져나온 자유의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는 남편과 아이를 찾아야 한다.
평소엔 길을 잘 못 찾는 길치지만 그런 응석(應碩)은 사치라는 걸 저도 아는지 안테나를 풀가동해 버스가 왔던 길을 더듬어가며 죽기 살기로 머리의 전파가 송수신(送受信) 해 주는 대로 걷고 또 걷는다.
혹여라도 내가 걱정 돼 두 남자가 찾아와 주지 않을까 은근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잃어버린 날 찾을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건가? 이대로 날 버린 거야? 서운한 마음에 투덜거리다가도 이러다 진짜 못 만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면 또다시 공포가 밀려온다.
다 용서할 테니 제발...
잔뜩 긴장한 탓에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터덜 터덜 한참을 걷다 보니 저쪽에서 익숙한 두 남자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찾았다!~~~
놀이공원에서 부모를 잃었다 한참만에 찾게 된 어린아이의 심정이 이랬을까?
눈물도 나고, 원망도 들고...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다...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향해 가면서 이제는 더 이상 국제미아도 아니고 온전한 내 편인 가족을 만났다고 안도했나?
뜬금없이 내가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뀐다.
촤르륵 필름이 돌면서 실체 없는 감독님의 ~큐(cue)~ 사인 명령에 따라 오래전 KBS 예능 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잔잔하게 흘러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훔치게 하던 바로 그 삽입곡(BGM) 셀린디옹(Céline Dion)의 사랑의 힘(The Power Of Love)의 클라이 맥스 부분이 분위기 있게 쫘악 깔리면~~
이국땅에서 버스에 갇히는 사고로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국제 미아가 되었던 돌아온 탕자 어미 양이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 홀로 헤매고 방황하다 마침내 가족의 품으로 달려가 무사히 안긴다~~
~컷(cut)~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감동 영화를 머릿속에서 찍고 아직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면서 걸음을 재촉해 걷는다.
세상 밖은 역시 만만치가 않다 아니 위험하다.
이렇게 무방비(無防備) 상태에서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영어와 이런 식으로 마주하다니...
설렘은커녕 공포… 거기에 더해 수치(羞恥)였다.
학교에서 공부 한 세월이 얼만데 영어로 말을 못 해 살면서 꿈에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버스에 갇혀 국제미아까지 될 뻔했을까?
도대체 그놈의 영어가 뭐길래... 한없는 자책에 고개가 떨구어진다.
이제 새로운 삶을 좇아 잠시 비워두었던 내 삶의 여백은 부족한 영어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빈틈없이 채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