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때로 의도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기막힌 일들이 있다.
보통의 경우 티켓(Ticket)하면 콘서트나 영화 또는 스포츠 경기 같은 주로 어느 곳을 들어가려고 할 때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해 주최 측에서 발행하고 우리는 그 자격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을 말할 테다.
그런데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티켓이 있다.
교통 법규를 위반하는 경우에 그 벌로 범칙금을 내야 하는 교통 티켓(Traffic Ticket)이 바로 그것이다.
그야말로 교통에 관한 어떤 위배되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서두르다 과속을 하거나 분명 노란불이었는데 갑자기 빨간불로 바뀌면서 본의 아니게 신호를 어기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때 법(法)(???)의 잣대를 들이대고 딱지라는 심오한 뜻을 갖고 있는 쪽지더미 위에 뭔가를 끄적끄적 한 다음 그것을 쭉 찢어 건네주면서 벌을 주려는 자와 이를 거부하고 싶어 하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를 도로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전혀 상관없는 불공정(不公正)한 티켓을 받게 된 경우도 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퇴근을 하고 돌아와서는 열이 잔뜩 올라 씩씩거리면서 화를 낸다.
평소와 다름없이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데 누군가 뒤에서 조명등을 반짝이듯 번쩍번쩍거리고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따라오길래 처음엔 자기인 줄도 모르고 비켜가라고 친절하게 옆으로 빠져주었다고 한다.
계속 따라붙으며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주는 것 같아 분명 규정 속도로 달렸고 어떤 교통 법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왜?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갓길에 일단 차를 세웠다고 한다.
먹잇감을 잡은 낚시꾼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어차피 잡은 물고기니까...
기껏 세워놓고는 왜 세웠는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설명이 필요한 남편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꾸물거리다 한참만에 나타난 사람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약간의 군기가 들어간 투로 자신의 통성명을 하고는 번호판이 더러운 위반을 했다면서 우리가 아는 그 종이 위에 볼펜으로 열심히 적더니 남편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과속을 한 것도 아니고 신호위반을 한 것도 아닌 고작 번호판이 더럽다는 이유로 멀쩡히 잘 가고 있는 차를 잡았다고?"
교통법규에 이런 걸로 범칙금을 요구하는 조항이 있었던가?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도로 위에 널브러져 누운 채 얼어붙어있던 눈들이 녹아 물이 되면서 죽처럼 변해 버린다.
흙과 작은 돌멩이들까지 마구 뒤엉켜 꿀꿀이 죽처럼 지저분하기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마치 도로 위에 드럼통으로 실어다 이쁘게 뿌려놓기라도 한 듯 바퀴선을 따라 줄 마쳐 길게 늘어져 있곤 한다.
이 때문에 질퍽해진 도로를 달릴라 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나가는 차들이 튀겨대는 흙탕물을 샤워하듯 뒤집어쓴 탓에 차가 엉망이 되기 일쑤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그것에 대해 아무도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나도 똑같이 다른 차들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그런 이치로 본다면 번호판이 더러워진 차는 분명 남편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게다가 번호판이 더러우면 닦으라고 하면 그만이지 티켓까지 발부한다고?
"이게 말이 돼? 태어나서 나 그런 말 처음 들어봐 정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 뚜껑이 열려버린 남편은 "요즘 같은 날씨엔 번호판뿐만 아니라 차가 더러워지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따지듯이 말하니 "주변에 세차장이 널려있다" 되받아치며 오히려 충고하듯이 말하더란다.
그러는 순간에도 번호판이 더러워 아예 숫자들이 보이지도 않는 차들이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가고 그것을 보자마자 기회를 잡은 듯 남편이 "왜 저 차들은 안 잡냐?" 했더니 이번엔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는 스님처럼 묵묵부답...
그럼 그렇지!~ 할 말이 있을 리가!~
기가 막혀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많은 차들 중에 하필 별로 더럽지도 않은 남편의 차가 타깃이 된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심정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그렇다고 힘없는 평범한 시민이 팔뚝에 차고 있는 두꺼운 완장(腕章)의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려는 자와 붙어서 싸운 들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할 수 없이 티켓 받고 돌아온 남편은 성이 날 대로 나 있었다.
다행히 병 주고 약 주는지 신문고의 북처럼 법원에 가서 원통함을 호소해 볼 수 있는 "contest a ticket"이라는 제도가 있다.
티켓을 받고 나면 3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금을 낸다.
두 번째는 교통법원에 가서 검사에게 이의제기(異議提起)를 해본다.
세 번째는 최종 재판까지 간다.
첫째는 부당한 처사에 대한 억울함으로 절대 할 수 없고 셋째는 증거자료도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무엇보다 승리를 해야만 하는 부담도 있다.
그런 이유들로 보통은 두 번째를 선택한다.
법원(court)이라고는 부르지만 본 재판으로 가기 전에 약식재판의 개념으로 검사와 마주 앉아 티켓 받은 상황을 설명하고는 그런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의제기를 하면 검사가 이야기를 듣고 인정한다는 판단이 들면 벌금을 줄여주는 제도이다.
이 또한 내 시간을 버려가면서 까지 일부러 가야 하는 일이라 불편하고 귀찮은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던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억울함을 어필하고 싶어 그곳으로 가 잘못된 만행을 이르듯이 검사에게 차곡차곡 설명을 했고 이를 듣자마자 그는 두말도 안 하고 금액을 반으로 낮춰주어 바로 그 자리에서 지불하고 왔다고 한다.
이미 발부된 티켓에 대해 그나마 호소한 탓에 반값으로 줄어든 벌금을 내고 그날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뒤도 돌아보기 싫어 그 자리에서 지불까지 모두 마치고 끝냈지만 자신이 겪은 일이 분한 남편이 그 일에 대해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 경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으니 하나같이 경고를 줄 수는 있어도 번호판 더러운 일로 티켓까지 끊는 일은 없는데 이상하다고 한다.
부당하게 당한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아는 지인에게 혹시 이런 경우도 있나 물으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번호판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도 티켓은 아니라고 한다.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니?"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캐나다인으로서 캐나다에 대해 미안하다고까지 한다.
다른 나라에 와서 살고 있으니 그 값을 치르라는 건가?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쓰고, 시간 쓰고, 반값도 아까운 돈까지 지불했으니 억장이 무너진다.
게다가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갑작스레 우산도 없이 비바람을 막아내고 있는 것 같은 자책으로 괜히 씁쓸해진다.
언젠가 아들이 일단 모든 포커스를 인종차별에 맞추고 그쪽으로 몰고 가면 그렇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곱씹어 보고 둘러봐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야말로 죄 없이 당한 일이라는 생각만 드니 분하고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인종차별로 끌고 가면 안 된다는 뜻인듯하다.
멋진 제복을 입고 휘황찬란한 띠를 두르고 있다 해도 그들 또한 사람이라 때로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시나 그들 또한 엄연한 직장 내 계급이 있을 테니 상명하복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개인적인 편견이 개입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괜히 사그라들지 않는 분함 때문에 인종차별이니 어쩌니 하면서 스스로를 더 억울한 쪽으로 몰고 갈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냥 모르고 지나면 평생 몰랐겠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을 통해 어쨌든 겪어봤으니 앞으로 차를 몰고 나갈 때는 운전만 조심할 게 아니라 자동차 번호판도 잘 닦아야지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