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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Jan 25. 2024

눈 속에 차가 빠지던 날의 대 혼란

선한 사마리아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고 밋밋한 삶에 가끔은 가슴이 턱 하고 막혀오는 난감한 순간이 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면 경험이 실력이 되는 날도 오겠지만 그 순간에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곳의 겨울은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한파(寒波)를 몰고 와 몹시 추운 날씨를 선보이고 잦은 폭설로 인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어 버리기도 한다.

덤으로 녹지 않고 쌓여버린 눈은 치워도 치워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게으름 피우다 집 앞에 눈을 치우지 않아 지나가던 사람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분쟁(紛爭)이 생길 수도 있으니 눈이 올 때면 집 앞뿐 아니라 인도(人道)까지도 즉각 즉각 쌓여있는 눈을 치우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 된다.


겨울이 되면 유난히 해가 짧아 초저녁 4-5시만 되어도 밖이 캄캄하다.

군데군데 서있는 가로등이 빛으로 밝혀주고는 있지만 깊은 어둠을 뚫지는 못하는 듯하다.


하루는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를 Pick up(픽업) 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금 늦은 듯 해 서둘러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다 문제가 터졌다.


후진을 하는데 쿵 하면서 뭔가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 온다.

아무리 액셀(accelerator)을 밟아도 굉음만 들리고 미끄러우니 바퀴만 헛돌 뿐 좀처럼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뭐지?


며칠 전 내린 폭설로 남편이 눈을 치우면서 주차장 양 옆으로 쌓아 두었었는데 혹시 거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봐야 하니 일단 시동을 끈다. 

기계치에 "언니! 달려~"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본다고 아나?

그래도 뭔가는 해봐야 하니 그냥 내려본다.

헉!~ 이런 예감은 빗나가지도 않아.


산처럼 쌓인 눈더미가 사랑이 식어 떠나가려는 자신의 사랑을 놓지 않으려는 듯 오른쪽 뒷바퀴를 꼬옥~끌어안고 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일은 늘 하던 일이라 전혀 문제 될 일이 없는데 서두르지 말았어야 했다.


멀쩡한 길 나 두고 하필 눈더미를 향해 후진을 하다니... 왜 그랬니?

캐나다에 와서 버스에 갇히는 그 기막힌 일을 겪은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찼나?

이번에는 차바퀴가 눈더미 속에 빠져 갇혀 버렸다.

수난이다.


얼른 가야 하는데 차는 꼼짝을 안 하고 방법은 모르겠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이거 만져라 저거 만져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영 소용이 없다.

차는 "날 잡아 잡숴" 하면서 퍼져버린 채 말도 안 듣고 또다시 대략 난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은데 어두 컴컴한 저녁 시간에 낯선 이가 벨을 누르면 과연 문을 열어 줄까?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고 시간은 자꾸 가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용기 내 뚜벅뚜벅 걸어서 먼저 옆집 벨을 눌렀다.

몇 번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이제 어쩌지?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깜깜해져서 이젠 앞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더 이상은 생각만 하면서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민폐인건 알지만 한 번도 말을 섞어 본 적도 없는 앞집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집 앞까지는 용감하게 갔지만 문 앞에서 잠시 쭈뼛거리다 마음을 가다듬고 벨을 누른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제발 제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오~!... 철컥!~... 문이 열린다. 

할렐루야!~감사합니다!~

아줌마가 얼굴을 내민다.


너무 반가워서 다급하게 "저는 앞집에 사는데요... 차가 눈더미 속에 갇혔어요.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처음 보는 이의 방문이 놀라웠을 텐데도 아줌마는 어리둥절해하거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내가 도와 줄게요"

"정말요? 너무 감사합니다"

  

도와주겠다는 그 말이 얼나 고마웠는지 천군만마(千軍萬馬) 라도 얻은 느낌이다.

그녀는 우리 차 앞으로 오더니"자신이 운전해 볼 테니 뒤에서 밀어요"라고 말한다.

시키는 대로 그녀가 운전을 하고 나는 뒤에서 있는 힘껏 밀었지만 나 하나만으로는 당연히 역부족이다.

젖 먹던 힘마저 다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차는 헛바퀴질만 계속할 뿐이다.


그녀도 난감했는지 "하필, 오늘 남편이 집에 없다"라고 하면서 집 쪽을 향해서 걸어간다.

잡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그냥 가는 거예요? 안 되는데...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래도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혼자 머릿속으로 생쑈를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그녀는 장성한 두 딸을 불러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는 딸들에게 같이 차를 밀어 보라고 한다.


두 딸까지 합세해 힘이 많아진 우리는 함께 밀면서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마치 그런 우리를 조롱하듯 차는 꿈적도 하지를 않는다.


네 명서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이지 않는 차를 두고 모두 씨름하고 있는 동안 트럭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간다.

워낙 급해서인지 나는 겁도 없이 앞뒤 재지도 가리지도 않고 무조건 달려가 차를 세운다. 

큰 차니까 당연히 남자가 운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운전자는 여자다.


"차가 눈더미 속에 갇혔어요... 도와주세요!"

당황했을 그녀는 나를 보고 아줌마와 두 딸을 번갈아 보더니 차를 집에다 세워놓고 다시 오겠다고 한다.

"지금 해주시면 안 되나요?" 또 속으로만 소심하게 외쳐보지만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 트럭은 이미 떠나버렸다.

대놓고 거절하기 민망하니 에둘러대는 말하는 거려니 했다.


내가 도움을 청하느라 자리를 비운 와중에도 의리 있는 모녀(母女)들은 자기 일처럼 정말 열심히 엄마는 운전하고 딸들은 밀고 온 힘으로 차를 움직여 보려 힘을 쓰고 있었고 차로 돌아가면서 그들을 보고 있던 나는 그 사람들 마저 가버릴까 봐 무서워졌다.

사방팔방 아무도 없는 내겐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작은 요동도 하지 않는 차 앞에서 바퀴를 빼 보려고 감싸고 있는 눈을 삽으로 퍼 나르기도 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액셀도 밟아보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차는 조금도 움직일 의사가 없는듯하다.

까칠하기는...


그때 저쪽에서 산책하듯 지나가던 한 가족이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아저씨가 이 상황을 보고 웃더니 "자신이 운전을 해 볼 테니 뒤에서 밀어보라"고 한다.

그가 운전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게 된 우리는 뒤에서 옆에서 난리 법석을 치면서 영차 영차 밀어댄다.


그렇게 꼼짝도 안 하던 차가... 드디어... 신호가 온다.

역시 남자의 힘이 있어야 했나? 우리도 똑같이 했는데도 안 움직이던데...

이 놈의 차가 사람도 가리나? 떼끼!~ 네 어찌 그럴 수가! 


세상에!~ 눈더미 속에 파묻혀 꿈쩍도 안 하고 버티던 차가 별 저항도 없이 스르륵 빠져나온다.

나는 그저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를 연발할 뿐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이방인에게 이 추운 겨울밤 저렇게나 큰 도움을 베풀어 줄 수 있다니 백번 천 번을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감사한 일이다.


큰 일을 함께 치러낸 동지끼리 승리의 기쁨을 나누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생각해서 염치를 무릅쓰고 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손인사로 인사를 대신하고 아직까지 여운이 남은 채로 그대로 머물러 잠시 전에 있었던 크나 큰 사건에 대한 승전보(勝戰譜)를 주고받고 있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더 많은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데 고작 고맙다는 말 밖에는 못하고 그 자리를 뜨게 되어서 아직까지도 여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니다.


기나긴 겨울밤 내게 벌어진 일을 아무도 알 리가 없고 고요와 적막만 흐르는 이 동네에 마치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도와준 너무 고마운 나의 이웃들... 그들은 분명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분명하다.

특히 두 딸까지 동원해 내 곁을 지키면서 도와준 앞집 아줌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사람이다.


다음날 오후 감사의 뜻으로 정성껏 바나나 브레드를 구워서 아줌마에게 전해 주었지만 그걸로는 어제의 고마움에 비하면 그저 약소할 뿐이다.

그것 조차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그 아줌마는 마음씨 착한 천사임에 틀림없다.


아!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날 산책을 하느라 지나가는 가족인 줄만 알았던 이들은 내가 도와 달라고 했을 때 트럭을 집에 주차해 놓고 오겠다고 했던 여자의 가족이었다. 빵빠라 빵~~~

거절하기 뭐해서 그냥 둘러댄 거라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진심이었다.


그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더 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 몰라 전하지 못했다.

경황이 없어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밤이라 얼굴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언젠가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꼭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록 몸으로 터득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그런 작은 경험들이 하나씩 쌓여 가면서 커다란 지식으로 남고 자신의 일처럼 어려움에 처한 나를 망설임 없이 도와준 좋은 사람들이 내 이웃으로 살고 있는 이곳에서의 삶은 더욱더 익숙해져만 가고 막막해서 무서웠던 그날의 일은 선한 사마리아인인 그들 덕분에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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