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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Feb 08. 2024

어느 캐나다 노인이 한국을 말할 때

6.25 참전용사

한적한 주말 오후 남편과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주문한다.


넓지 않은 카페 안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두 노인만 창가 쪽에 앉아 때늦은 브런치를 즐기고 있을 뿐 꽤 조용하다.


멋들어진 백발의 머리와 이마엔 주름 그리고 듬직하고 넉넉해 보이는 풍채로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두 노인은

마치 유명 치킨집 앞에 가면 하얀 양복을 입고 온화한 미소와 함께 지팡이 들고 서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풍겨오는 외모와는 달리 그들은 소박한 아침으로 달걀과 베이컨 그리고 토스트를 마치 스테이크라도 썰듯이 한 손에는 나이프 다른 손에는 포크를 번갈아 사용하며 입속에 넣고는 연신 허허 웃는 소리를 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때 마침 나온 커피를 받아 들고 우리도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유리창쪽으로 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커피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악이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부부가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딱히 할 말도 없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커피내음이 나고 음악이 있는 분위기에 취해 밖을 내다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이유로 그곳을 지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알리 없는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연출해 보여주는 장면마다 하나의 무대 배경이 되어 우리에게 작은 볼거리를 선사해 준다.


단편 영화 한 편을 보듯 넋 놓고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이 고요한 정적을 깨고 식사를 마친 노인중 한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한국에서 왔어요." 하니까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들은 6.25 전쟁 때 캐나다 군인으로서 파견되었던 참전 용사라고 한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혹시라도 한국을 아는 사람이나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든다.

게다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우리도 잘 모르는 한국 전쟁에 대해 자신들은 직접 참여했다고 자랑하듯 말하고 있는 캐나다 노인들의 말이 뭔가 생소하긴 하지만 그 시대를 겪어낸 우리의 할아버지들 같아 맞장구 쳐주듯 목소리 톤을 약간 높여 말을 해 본다.


"어머!~ 그러셨어요?" 

이때만 해도 그들이 여행이 아닌 전쟁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군대이야기만 하듯 그들도 묻지도 않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한참을 신나서 얘기하던 그들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캐나다에는 어떻게 왔냐?"라고 


"영주권 받아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No Way!~ 너희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예상외의 갑작스러운 그의 말이 황당하고 의아해서 우리끼리 "왜 아니라는 거지? 왜 저렇게 말을 할까?" 하다가 궁금해져서 

"아니 왜요?" 하고 물어본다.


자신들이 한국에 있을 때 "서울에는 빌딩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을 한다.

사진 보니 하나보다 많던데...

"너무 가난해서 자신들이 집차를 타고 지나다닐 때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을 내밀며 초콜릿이며 껌이며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들 투성이었다"고...

"그런데 너희가 어떻게 영주권을 받아서 오느냐? 말도 안된다" 고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한다.


헐!~~ 기가 막혀온다 아니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그들 눈에 우리는 자신들이 껌과 초콜릿을 나누어 주면서 보았던 가난한 나라에서 온 피난민 정도로만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니 난민(refugees)으로 왔으면 모를까 합법적인 영주권을 받았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난민이라고? 우리가? 이거 좀 억울해지는데...

"아니요. 영주권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절차에 따른 모든 자격요건이 맞아 정당하게 승인받고 합법적으로 영주권 받아서 왔어요"하고 당당하게 말한다.


동이 나 서나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는 건지 영감님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못 믿겠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살살 흔든다.

그런 그들의 행동이 우리를 아니 한국을 무시하는듯해 괜히 언짢아진다.


어찌 보면 인종차별적 발언일 수도 있다.

지금의 세상에서도 우크라이나나 하마스 같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의 삶은 참혹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 살기 위한 몸부림을 겪어보지 않은 그들의 눈에는 한국은 그저 국력도 힘도 없어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TV도 안 보시나?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한류K-Pop, K-Drama , BTS 같은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젊은이들이라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전쟁대신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작품들을 통해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하고 엄청난 인기유명세를 얻기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만하건만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좀 있는 노인분들이라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으려 하질 않는다.


그들의 뇌리에 한국은 아직까지도 6.25 전쟁이 벌어지던 그때에만 머물러 있으니까...

전쟁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그들 말대로라면 빌딩이 하나밖에 없던 서울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알리도 없고 전쟁 이후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의 놀라운 변화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당신들이 있었던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입이 닳도록 말을 해줘도 자신들이 본모습이 있으니 우리말을 믿을 수도 없긴 할 거다.

그들 입장에서만 본다면 못된 마음으로 인종차별을 위해 한국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만 기억하고 있어 그런 거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캐나다에 와 있는 한국인들을 난민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노인들이니 적당한 선에서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몇 년 만에 한국에 가보면 가끔 우리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한 빌딩들도 많고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하게 생긴 건물들도 많아요.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시면 좋겠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역시 고집 센 노인들이라 그런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해를 못 하는 듯하다.

저들끼리 알 수 없는 제스처로 사인을 주고받고는 더 이상은 묻지도 않은 채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신들의 대화를 나누다 우리에게 가벼운 손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난다.






한국에 대한 세계적 인지도가 많이 달라진 지금의 시점에도 한국 전쟁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몇몇 캐나다 노인들 눈에는 여전히 우리를 먹을 것을 구걸하던 그 시절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난민으로만 본다는 그 사실은 과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도 그 시절엔 살아본 적이 없으니 사진으로 보고 책으로 배우고 어른들의 말을 들은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사실 없긴 하지만 타국에 살다 보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래서인가? 

그런 편협한 시선이 야속하고 서운하다.


처음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삼성이나 엘지가 한국 상표인 줄 몰랐다는 사람도 많았고 김치은 냄새난다고 해서 아이 도시락에도 넣어줄 수가 없었는데 요즘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해 가보고 싶어 하고 김치 만드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할 정도로 코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우호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 슈퍼가 아닌 이곳의 대형슈퍼마켓에서도 김치며 김, 만두, 불고기까지 만들어 팔기도 하는 걸 보면 일본음식 하면 떠오르는 스시 못지않게 K-Food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졌음을 몸소 느끼게 되어 뿌듯하기까지 하다.


거리를 나가봐도 현대기아 같은 한국상표가 붙은 자동차들이 많이 보이고 미국차보다 오히려 더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이렇듯 이제는 어딜 가나 Made In Korea라는 마크가 붙어있는 상품을 많이 볼 수가 있어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K- 열풍이 여기저기 뿌리내리고 좋은 뜻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2002년 월드컵 때 빨간 티를 입고 너도 나도 응원하며 하나로 뭉쳤던 그 에너지와 힘으로 지구 어딘가에서 또 다른 K- 열풍을 만들어 내 앞으로도 더 많은 영향력 있는 한국인이 그리고 한국브랜드가 세계 어느 곳에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코리아의 위상이 훨씬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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