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는 얼뜨기 쑈
평소에 높은 빌딩들만 빽빽이 들어선 다운타운에 일부러 차를 몰고 갈 일은 사실상 별로 없다.
편하긴 해도 길이 복잡해 어둔하고 차가 많아 괜히 주눅까지 들기도 하니 웬만하면 피한다.
건물마다의 주차장이 따로 없는 건지 아니면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는 건지 아무튼 공용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요금이 또 만만치가 않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다운타운엘 가려면 속 편할 것 같아 주로 전철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전철을 타려면 집에서 역까지 15분 정도를 걸어서 가거나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30분 어쩌면 그 이상을 또 기다려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 어떤 맛인 지 알면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뇌에서 먼저 흥분을 하고 침샘을 자극해서 바로 먹고 싶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알기 때문에 전철을 이용하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시청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데 대담하게 차를 이용해 보기로 한다.
샅샅이 검색해서 미리 시청 주차장 주소도 알아놓았고 내게는 내비게이션이라는 똑똑한 신문물(新文物)이 있으니까 그 애랑 함께라면 별일 없을 거라 자신한다.
시동을 켜고 전원을 핸드폰에 연결하고는 하나하나 스펠링대로 주소를 찍은 후 잘 인도해 주겠지 무한 신뢰를 하면서 출발한다.
덕분에 다운타운 입구까지는 잘 들어섰는데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높은 빌딩숲 때문인지 교주처럼 믿고 있던 내비게이션의 신호가 끊겨 버린다.
방향은 없어지고 킬로수만 눈에 보인다.
오른쪽이야? 왼쪽이야? 물어도 대답이 없다.
당황한 나는 그 순간 무작정 앞으로만 간다.
킬로수마저 0으로 찍힌 걸 보니 다 온 것 같은데 옆에도 뒤에도 차들이 나를 옹호하듯 감싸고 있으니 멈출 수가 없다.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가려는 주차장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고 내 친구 내비는 아무것도 하질 않는다.
결국 그냥 지나친 모양이다.
식은땀 삐질삐질 흘리며 하얗게 비어버린 머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생각들로 뒤죽박죽이다.
너무 멀리 가면 아예 길을 놓치게 될 것도 같고 다시 돌아가자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멈춤의 시점을 못 잡아 무작정 가다 보니 간신히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도로 같지 않은 낯선 길이지만 일단 그 길로 방향을 틀어본다.
막다른 길이라 그 길 끝에서 우회전하고 지나쳐 온 길을 더듬어 찾아가 본다.
돌아 돌아 조금 전에 0km로 찍혔던 지점이다.
이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봐야 한다.
조금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P 자의 주차장 표지판은 있는데 둘러봐도 입구는 여전히 보이질 않는다.
그러는 사이 아까와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상황으로 길을 잃었다.
또 지나쳐 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딘 거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기만을 한 5번쯤은 한 듯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도대체 저 아줌마 뭐 하는 거지?" 할판이다.
아니 뭘 염탐하러 왔는지 수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는 안될 것 같고 일단 어디든 차를 세우고 남편에게 SOS를 청해야 할 듯싶다.
몇 번을 돌다 보니 그래도 여유가 생긴 건지 차 몇 대가 주차되어 있는 곳이 보인다.
잠깐이라도 세워야겠다 싶어 입구에 차를 살살 들이민다.
여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여기가 시청 주차장일리는 없고 아마도 개인 건물이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 주차를 하면 안 되니 그럼에도 세우면 끌고 가버리겠다는 글이 마치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당히 적혀있어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다.
얼른 남편에게 전화해 봐야겠다 싶어 핸드폰을 집어 드는 순간...
바로 길 건너편에 주차장 입구인 듯 한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저기인가?
주차장이라면 들락날락 거리는 차들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안 보이고 마치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폐건물처럼 두 개의 문만 셔터가 내려진 채로 있어 과연 저기가 맞나? 할 정도로 흉물스러운 몰골이긴 하지만 주소 검색할 때 본 그림과 다른 듯 같은 느낌이긴 하다.
맞든 안 맞든 몇 번을 도는 동안 저곳은 처음 보는 곳이다.
왜 알아차리질 못했을까?
버젓이 저렇게 자리 잡고 있는데도 계속되는 우회전만 하다 보니 왼쪽은 안중에도 없어 어디냐고?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하면서 혼자 열폭하고 있던 거였나?
나처럼 화가 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주차장 문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제야 시청 주차 전용 빌딩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맞네... 찾았다.
하지만 이제 저기까지 어떻게 가지?
그런 내 말을 들었는지 때마침 차들이 잘 훈련된 기마병들처럼 멈추라는 신호등 앞에 일제히 줄 맞춰 선다.
이때다 싶어 재빨리 반대편에 있는 입구를 향해 좌회전 깜빡이를 깜빡거리면서 건너가 순식간에 주차장 앞에 선다.
열려라 참깨! ~~
과연~ 열릴까? 두두 두둥~ 숨죽여 기다려본다.
잠시 후 철컥 소리를 내면서 생전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스르륵 열린다.
나의 주문이 통했나 보다.
안에 알리바바와 그 일행이 숨겨놓은 보물들이 잔뜩 쌓여 있을 것 같은 컴컴한 동굴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무사히 주차빌딩 안으로 들어온 나는 1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주차비를 자동기기에 지급하고 시청을 찾아 나서는데 아까는 들어오는 입구를 못 찾아서 애를 먹더니 이제는 나가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인적이 끊긴 듯 고요하기만 한 그곳엔 엘리베이터 2대만 저 홀로 운행 중이다.
혹시라도 못 찾아올까 봐 위치확인을 해 놓고는 일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몇 층을 눌러야 하지?
층마다의 사무실 이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듯 아무것도 없고 숫자들만 적혀 있다.
민원을 보려는 사람들의 입출입이 잦은 곳이라 높은 곳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아 2층을 눌러본다.
스르륵 문이 열리자 이런~ 다시 주차장이다.
어린아이가 장난하듯 이것저것 누르고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몇 번해도 계속 같은 곳일 뿐이다.
이미 15분이 경과한 후인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위로 아래로... 주차장에 완전히 갇혀버린 느낌이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면 될 텐데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다.
궁지에 몰리니 고양이라도 물어야 할 것 같아 좀 더 집중을 해 본다.
약효(藥效)가 있었는지 엘리베이터의 번호판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다른 것들은 모두 한자리 수인데 오직 하나의 버튼만 두 자릿수 그리고 옆에는 별문양이 있다.
모두 주차장이었으니 별표시가 있는 특별한(?) 숫자의 버튼을 얼른 눌러본다.
짜잔~ 하고 열리는 문 틈으로 주차장이 아닌 건물 내부인 듯한 곳이 보이고 환영해 주듯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제야 제대로 왔는 모양이다.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겨우 시청에 도착해서 번호표를 받아 들고는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주차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바보짓하느라 주차장안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 탓이다.
마음이 급해져 발만 동동 구르다 "띵똥" 하고는 번호판 숫자가 바뀌자마자 입장이 허락된 자들에게만 자동으로 열어주는 깐깐한 문 속으로 들어간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얼른 상담만 마치고 나왔는데도 1시간이 살짝 넘어 버렸다.
서둘러 차 있는 곳으로 가 차를 빼고 이번에는 기특하게도(?) 헤매지 않고 한 번에 주차장 밖으로 나온다.
들어올 때는 좌측에서 들어왔으니 집으로 가려면 반대쪽으로 나가야 한다.
당당하게 우측 깜빡이를 탁 하고 켜는 순간 빠~앙!~ 소름 끼칠 정도로 요란스러운 경적이 울린다.
깜짝 놀라 왜 그러는 거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 차의 운전자가 팔짓을 열심히 하면서 사인을 해주는데도 뭐라는 거야? 알아차리지 못한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지금은 밤도 아니고 여기는 클럽도 아닌데 빨강파랑 불빛을 조명등처럼 쏘아대며 위협적인 사이렌소리를 삐용~ 삐용~틀어준다.
헉!~~ 경찰차였다.
나 잡힌 거야?~ 왜~?
뒤로 빼라는 건가? 하고 백미러를 보니 내 뒤에는 이미 다른 차가 서 있고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른 채 안절부절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경찰은 차 문을 열고 나와 큰 팔을 휘두르며 왼쪽으로 가라는 신호를 해준다.
왼쪽? 하고 보니 어머나 세상에!~~
차들이 다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일방통행이다!~~~
좌회전만 해야 되는 도로에서 겁도 없이 것도 경찰차를 앞에 두고 우회전을 시도하다니 미친 거 아냐?
그런데 하필 그때 경찰은 왜 그곳에 있었던 거지?
어쨌든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역주행하는 위험천만하고 몰상식할 일은 벌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하다는 손인사를 하고는 바로 좌회전 깜빡이로 바꾼 후 재촉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오늘 하루,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작 업무는 15분 남짓밖에 안 걸린 일을, 길을 못 찾아서 왔던 길을 수차례 뺑글뺑글 돌기도 하고, 주차장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그것도 모자라 경찰차까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남편이 운전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앉아있지만 말고 길을 좀 잘 봐둘걸...
그랬으면 좀 덜 헤매지 않았을까? 아니면 귀찮아도 전철을 탔어야 했나?
관객도 없는 얼뜨기 쇼를 펼치고 돌아오는 길에 하루종일 어리바리했던 나 스스로에게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