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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Apr 19. 2024

버라이어티 한 어떤 하루

다운타운 운전은 너무 어려워

평소에 높은 빌딩들만 빽빽이 들어선 다운타운에 일부러 차를 몰고 갈 일은 사실상 별로 없다.

가는 동안은 편해도 길이 복잡해서 어둔하고 차가 많다 보니 괜히 주눅까지 들기도 하니 웬만하면 피한다.


건물마다의 주차장이 따로 없는 건지 아니면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는 건지 아무튼 공용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요금이 또 만만치가 않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다운타운엘 가려면 속 편한 것 같아 주로 전철을 이용하곤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철을 타려면 집에서 역까지 15분 정도를 걸어서 가거나 그게 싫으면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30분 어쩌면 그 이상을 또 기다려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 어떤 맛인 지 알면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뇌에서 먼저 흥분을 하고 침샘을 자극해서 바로 먹고 싶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알기 때문에 전철을 이용하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시청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데 대담하게 차를 이용해 보기로 한다.

시청 주차장 주소까지 미리 다 검색해서 알아보았으니 별일 없겠지?

나 잘할 수 있을까?


믿을 건 내비게이션 너뿐이다!

전원을 켜고 핸드폰에 연결하고는 하나하나 스펠링대로 주소를 찍은 후  인도해 주겠지 무한 신뢰를 하면서 외출을 시도한다.


덕분에 다운타운 입구까지는 잘 들어섰는데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자 교주처럼 믿고 있던 내비게이션의 신호가 끊겨 버린다.

방향은 없어지고 킬로수만 눈에 보인다.


오른쪽이야? 왼쪽이야? 물어도 대답이 없다.

당황한 나는 그 순간 생각이란 걸 해 낼 수가 없어 무작정 앞으로만 간다.


드디어 킬로수마저 0으로 찍힌 걸 보니 다 왔나 본데 옆에도 뒤에도 차들이 나를 옹호하듯 감싸고 있으니 멈출 수가 없다.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내가 가려는 주차장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지나친 모양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식은땀 삐질삐질 흘리며 머리가 하얗게 비어있던 나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수많은 생각들로 뒤섞여 뒤죽박죽이다.

너무 멀리 가면 아예 길을 놓치게 될 것도 같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자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멈춤의 시점을 못 잡아 계속 가다 보니 드디어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가 본 적 없지만 왔던 길로 다시 가려면 돌아야 할 것 같아서 일단 그 길로 방향을 틀어본다.

막힌 길이라 그 길 끝에서 우회전하고 다시 한번 지나온 길을 더듬어 찾아가 본다.


돌아 돌아 조금 전에 0km로 찍혔던 지점으로 다시 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봐야지...

아까는 보지 못했던 P 자의 주차장 표지판이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위를 봐도 입구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러는 사이 아까와 똑같은 곳에서 다시 길을 잃었다.

또 지나쳐 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딘 거야?

반복해서 돌기를 한 5번쯤은 한 듯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도대체 저 아줌마 뭐 하는 거지?" 할판이다.

아니 뭘 염탐하러 왔는지 수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는 안될 것 같고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남편에게 SOS를 청해야 할 듯싶다.

몇 번을 돌았다고 여유가 조금 생긴 건지 주차장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차 몇 대만 세워져 있는 곳이 보인다.

입구에 차를 잠깐 세워본다.


여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여기가 시청 주차장일리가 없다.

아마도 개인 건물일 테지? 


Private 답게 이곳에 주차를 하면 안 되니 만일 그럼에도 세운다면 끌고 가버리겠다는 글이 마치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당히 적혀있어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아 얼른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

바로 길 건너편에 문이 굳게 닫혀있는 주차장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인가?

들락날락 주차장을 이용하려고 오가는 차들도 안 보이고 마치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된 낡은 건물처럼 두 개의 문만 셔터가 내려진 채로 있어 과연 저기가 맞나? 할 정도로 이상한 몰골이긴 하지만 주소 검색할 때 본 그림이 맞는 듯하다.


아니 근데 왜 몇 번을 도는 동안 전혀 보질 못했을까?

계속되는 우회전을 하다 보니 왼쪽은 안 보고 오른쪽 건물들만 보고 "어디냐고?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하면서 혼자 열폭하고 있던 건가?

그래도 그렇지...


나처럼 화가 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주차장 문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니 그제야 시청 주차 전용 빌딩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야 모지리... 한심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차들이 부족한 나를 동정이라도 해 주듯 멈추라는 신호등 앞에 일렬로 줄 맞춰 서 있다.

이때다 싶어 재빨리 차를 빼서 반대편에 있는 입구를 향해 좌회전 깜빡이를 깜빡거리면서 건너가 순식간에 주차장 앞에 선다.


열려라 참깨! ~~  

과연~ 열릴까?  두두두두~두둥두두~  숨죽여 기다려본다.


잠시 후 철컥 소리를 내면서 생전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스르륵 열린다.

오!~ 주문이 통했다.

그 안에 알리바바와 그 일행이 숨겨놓은 보물들이 잔뜩 쌓여 있을 것 같은 컴컴한 동굴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이때만 해도 그 길이 일방통행이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질 못한 채...


무사히 주차빌딩 안으로 들어온 나는 1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1시간의 주차비를 자동기기에 지급하고 시청건물을 찾아가려는데 아까는 입구를 못 찾아서 애를 먹더니 이번에는 나가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이 고요하기만 그곳엔 엘리베이터 2대만 저 홀로 운행 중이다.

혹시라도 못 찾아올까 봐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을 스캔해서 잘 외워놓고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층마다의 이름은 없고 숫자들만 적혀 있다.

몇 층을 눌러야 하지?


높은 곳에 있을 것 같지가 않아 2층을 눌러본다.

문이 열리니 다시 주차장이다.


어린아이들이 장난하듯 이것저것 누르고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몇 번해도 계속 주차장일 뿐이다.

이미 15분이 경과한 후라 이러다간 주차시간인 1시간이 다 지나버릴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면 될 텐데 정말 아무도 없으니 방법이 없다.

궁지에 몰리니 어쩔 수 없이 잘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걸 해 본다.


역시 집중을 하니 다른 게 보인다.

엘리베이터의 번호판들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다른 것들은 모두 한자리 수인데 오직 하나의 버튼만 두 자릿수 그리고 옆에는 별문양이 있다.


다른 숫자의 층들은 모두 주차장이었으니 별표시가 있는 특별한(?) 숫자의 버튼을 눌러본다.


짜잔 하고 문이 열리니 드디어 주차장이 아닌 건물 내부인 듯한 곳이 나오고 환영해 주듯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제야 제대로 왔는 모양이다.


미로 같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겨우 시청에 도착해서 리셉셔니스트가 주는 번호표를 받아 들고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이젠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져 안내 데스크에 가서 주차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물으니 니 앞에 한 사람 남았단다.

늘 그렇듯 그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나만 동동 거릴 뿐...


드디어 띵똥 하고 날 부르는 소리가 나고 나의 입장이 허락되었음을 알리는 문이 열린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얼른 들어가서 이런저런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1시간이 살짝 넘어 버렸다.


급하긴 하지만 유예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서둘러 차 있는 곳으로 가보니 차는 그대로 있었다.

서둘러 차를 빼고 이번에는 기특하게도(?) 한 번에 주차장 밖으로 나온다.


좌측으로 들어왔으니 집으로 가려면 우측으로 가야 한다.

깜빡이를 켜는 순간 소름 끼칠 정도로 요란스럽고도 길게 빠앙!~ 하고 오른쪽에 서있던 차가 경적을 울린다.

그 소리가 너무 공포스러워서 왜 그러는 거지? 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 차의 운전자가 팔짓을 열심히 해주는데 그 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결국 차 주인은 빨강파랑 불빛을 쏘아대며 위협적인 사이렌을 울린다.


헉!~~ 경찰차였다.

나 잡힌 거야? 그런데 왜?


뒤로 빼라는 건가? 하고 백미러를 보니 내 뒤에는 이미 다른 차가 서 있고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른 채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경찰은 차 문을 열고 나와 그 문을 잡고 큰 팔을 휘두르며 왼쪽으로 가라는 신호를 해준다.


왼쪽? 하고 보니 어머나 세상에!~~

차들이 다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그 길은 일방통행길이라 우회전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좌회전만 되는 거리에서 것도 경찰차 앞에서 겁도 없이 우회전을 시도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

하필 그때 왜 경찰이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역주행하는 위험천만하고 몰상식할 일은 벌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하다는 손인사를 하고 얼른 좌회전 깜빡이로 바꾼 후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다운타운에서의 기막힌 얼뜨기 쇼들이 모두 마무리된다.


정작 업무는 15분 남짓밖에 안 걸렸는데 길을 못 찾아왔던 길을 뺑글뺑글 돌고 주차장에 갇히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차까지... 하도 버라이어티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길치가 자랑도 아니면서 그런 걸 알면 남편이 운전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앉아있지만 말고 길을 좀 잘 봐둘걸... 

그랬으면 좀 덜 헤매지 않았을까?

귀찮아도 전철을 탔어야 했나?


오는 길에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오늘 하루는 길을 잃어 당황하고 경찰차를 만나 깜짝 놀라고 어리바리라는 단어가 내게 딱 어울리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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