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하던 날의 그 서러움!

어설픈 정보는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by 스몰토크

생전 처음으로 뜻하지 않게 손목이 부러졌다.


깁스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주에 살고 있어 비행기를 타고 와야만 하는 아들내외는 올 수가 없다.

남편은 와이프가 팔이 부러졌는데도 출근을 해 버렸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타주로 이주를 했다.


당장은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오롯이 나 홀로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그날의 일은 지울 수 없는 서러움 그 자체로 남는다.


아직은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어느 봄날

오늘도 애썼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욕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끝낸 후,

슬리퍼를 벗어던지고는 포근한 이불이 깔려있는 침대로 가려는 순간

'어라!' 뭔가 잘못된 듯하다.


슬리퍼 한쪽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았었나? 갑자기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안 넘어지려고 안간힘을 써봤으나 이미 꼬여버린 두 발은 무력한 나를 결국 넘어뜨리고 말았다.

그 순간 바닥을 짚고 있던 내 손 안쪽 어딘가에서 '뚜둑'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속수무책으로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제대로 폼 잡고 잘 넘어졌을 리가 없다.

차라리 폼이라도 짜잔~멋지게 잡을 수 있었다면 본의든 아니든

야밤에 홀로 생쇼를 벌이고 있는 내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럽기는 했겠지만 그뿐일 뿐,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잡을 것이 없어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리다 고꾸라지듯 넘어졌으니

순간적으로 바닥을 짚을 때 손가락이 꺾이거나 해서 부러진 게 아닐까

무서운 생각이 든다.


에이! 고정도로 부러진다고? 우리 몸의 뼈들을 어찌 보고?

절대 아닐 거라고, 아니어야 한다고 나를 세뇌시켜 본다.

아마 내 나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릴 때 체육시간에 피구 놀이를 하다 보면,

안 죽으려고 공을 손으로 받거나 쳐내는 동작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이 손가락에 잘못 맞기라도 하면,

금방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 퉁퉁 부어올라

손가락이 굵어진 채로 통증이 심해진다.


그렇다고 병원엘 가지도 않는다.

아무런 조치를 안 취해도 며칠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붓기가 싸악 가라앉으면서 통증이 사라지곤 했으니까.


그때는 단순히 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실제로 뼈가 부러졌었다고 해도

어렸으니까 금방 붙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싶고, 그래 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제발 제발! 부러진 게 아니고 그냥 삔 거야!


야무진 기대는 저만치서 손가락질하며 날 비웃는다.

금방 손이 뚱뚱해지면서 몸에 한기가 느껴져 부르르 떤다.


벌써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내일 아침 가정의 (家庭醫 family doctor)한테 갈 때까지 이 통증을 어떻게 참지?

진통제라도 찾아서 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대로 밤새 통증과 씨름하느라 잠을 한숨도 못 잔다.


아침이 오자 패밀리 닥터 사무실에 바로 전화를 해 본다.

오늘은 예약이 다 차서 진료를 볼 수 없다...

예약을 안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지만,

절실한 지금의 내 처지로서는 그 대답이 너무나 야멸차게 느껴진다.


팔이 부러진 것 같은데 응급으로 안 되겠냐고 사정하듯 말하니

다른 의사한테 예약을 잡아 주겠다고 선심 쓰듯 대답한다.


어차피 다른 의사를 볼 것 같으면 굳이 거리가 먼 그곳까지 갈 필요가 없다.

급하거나 하면 예약이 필요 없는 워크인 클리닉(walk -in clinic)이라는 곳이 있으니까.


사실 그곳의 단점은 내 담당의가 없다.

그 말은 지속적으로 나의 상태를 봐줄 수가 없어 오늘만 보면 끝이다.

그렇다 보니 웬만하면 패밀리닥터를 찾아가는 것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남편을 출근시키자마자 오전 9시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클리닉으로 가본다.

예약을 안 하고 가는 곳이니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먼저 오는 순서대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1시간 반 정도 기다렸나?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의사는 사진을 찍어봐야 정확히 부러진 건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니

엑스레이부터 찍고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다.

결과가 도착하면 그걸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이 팔로 밤새 기다렸는데...

맞는 말이긴 한데요~ 내가 지금 너무 아프다고요~


벌써 낮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X-ray 찍고, 결과 기다리고... 그러면 깁스는 언제 해?

더군다나 사진 찍으러 가려면 당장 운전을 해야 하는데 부러진 팔로 운전을?

내 팔 이대로 괜찮을까 싶긴 하지만 나 말고는 곁에 아무도 없으니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무식해서 용감한 거지.

핸들을 돌릴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으로 그제야 아픈 팔로 운전하고 있는 내가 가엾게 느껴진다.


엑스레이 찍으러 간 곳도 먼저 온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도 기다림은 당연한 수순이다.

어찌 되었건 순서는 오는 거니까 요리조리 팔을 돌리며 사진을 찍는다.


결과는 원래 3-4일은 걸리지만 너의 상태로 봐서

오늘 오후 늦게나 내일까지 최대한으로 빨리 해 보겠다고 엄청 생각해 주는 척 말한다.

한시가 급한 나한테 내일? 그건 아니지! 팔이 부러졌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라는 말만 돌아올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온다.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이제 4시 반이 되면 클리닉이 문을 닫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러다가 오늘 안에 깁스를 할 수 있을까?

슬슬 불안해진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싶어 답답한 내가 먼저 클리닉에 전화를 한다.


구구절절 설명을 하니까 지금 오면 된다고 한다.

그럼 미리 연락을 해 주던가,

아픈 팔 때문에 피가 마르는 사람한테 너무 예의가 없으시다.

역시 패밀리 닥터 사무실이 아니라서 책임감 같은 건 개나 주었나 보다.


그나마 전화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안 했으면 아마 내일까지도 연락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긴 그들에겐 매일 보는 환자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뭐가 답답할까?

부러진 팔 깁스도 못하고 통증과 함께 기다림의 늪에 빠진 나만 괴로운 거지.


결국, 엑스레이 결과 손목이 부러졌다.

아니길 그렇게 바랬는데 손가락도 아니고 손목이 부러진 거였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여기서는 기구가 없어 깁스를 못하니

큰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한다.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처음부터 응급실로 가라고 했어야지,

왜 엑스레이는 찍고 기다리라고 해서 시간만 낭비하게 한 거야'

진짜 어이가 없다.


"응급실 가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들어서요,

결과만 나오면 이곳에서 바로 처치까지 해 주는 줄 알고 통증 참아가며 지금껏 기다렸잖아요"

"엑스레이도 이미 찍었고, 내가 레터를 써줄 거니까 기다릴 필요 없을 거야"


순진한 건지 아니면 바보인 건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레터라고 써준 종이 한 장 들고는

또다시 운전을 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손목 고정을 안 해서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뼈가 닿는지 통증이 더욱 심해지고,

이러다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도 앞선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접수처엔 역시 줄이 엄청 길다.

언제나 일하는 사람들은 세월아 네월아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고,

어딜 가나 줄 서는 일은 너무 익숙한 일이라 다들 평안한 얼굴이다.

거기서 또 아픈 팔을 잡고 1시간 이상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나만 숨이 막힐 듯 괴롭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자신 있게 의사가 준 레터를 보여준다.

거기에 팔이 부러지게 된 경위며 사진상 어떤 부위가 부러졌고 등등 다 쓰여있는데도

왜 왔는지, 어떻게 하다가 부러졌는지를 또 설명하라고 한다.


혈압도 재고, 알레르기등 물어볼 거 다 물어보면서 한 20분 이상 붙잡고 있더니

창구에서 부를 거니 앉아서 기다리란다.

또 기다려? 기다림이 하나의 치료 과정인가?


그녀가 '의사로서의 진료 소견을 적은 거니까 이것만 있으면 바로 해줄 거야'라는 의미로

건네준 레터는 아무런 힘도, 소용도 없다.

이미 의사를 만나서 상태 확인을 다 하고, 엑스레이까지 찍고 왔다 해도

이곳에 온 이상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응급실에 처음 온 환자일 뿐,

'의사의 레터'같은 특권은 없었다.


드디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내 순서가 되었다.

접수대에서 물었던 것들을 그대로 묻는다.

레터에 다 나와 있잖아 외치고 싶지만 체념한 채로 표정 없이 대답만 한다.

이번에는 종교까지 묻는다.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한테 왜 그런 사적인 걸 묻는지 의아했지만

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별한 종교적 믿음과 관행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이 또한 알려준다.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가 데리러 올 테니 또 앉아 있으라고 한다.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지겨워진다.


응급실안은 환자들로 꽉 차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새통이다.

베드에 누워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여기저기 먼저 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 틈에서 정해진 시간도 없이 무작정 기다림은 다시 시작되고...


어느새 시간은 오후 6시가 되어간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 보니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부러진 팔을 방치한 채 운전까지 하고 와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처량해진다.


예전에 엄마가 집에 아무도 없어 혼자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행려병자인 줄 알고 치료를 안 해줘 엄청 서러웠다고 하더니만

그때의 엄마 심정이 이해가 간다.


조금 다르긴 해도 아픈 팔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과

무기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건장한 청년이 부른다.

이제 이곳으로 들어가면 치료받을 수 있겠지? 싶었는데...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길 옆으로 서있는 문들은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있고,

한참만에 도착한 그곳엔 또 다른 환자들이 수두룩... 답답해진다.

도대체 깁스는 언제 해?

하루 종일 기다림의 연속이다.


내 차례는 언제냐고 물으니 너 앞으로 7명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들이 보는 한 사람마다의 시간은 꽤 길기 때문에 7명은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갇힌듯한 탁한 병원의 공기가 불편해 잠시 바람 쐬러 나갔다 와도 되겠냐 했더니 못 나간다고 한다.

전화 통화도 안되고...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 감옥이야?


또 얼마를 기다렸나.

의사가 아까 창구에서 물었던 걸 처음인 것처럼 다시 묻는다.

도대체 여기는 병원 시스템이 어찌 되었길래 차트만 보면 기록이 다 되어 있을 텐데도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는지.

일하는 게 비효율적인 듯해 짜증이 난다.


한참을 묻더니 간호사를 부른다.

방으로 안내하라길래 이제는 해주나 했더니 또 기다리고 있으라고...

아마도 이곳은 도를 닦고 인내가 필요한 곳인가 보다.


사실 제대로 알고 나면 캐나다 의료 시스템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는 해도 어쩌면 정형화되어 있는 그 과정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설픈 정보는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처음부터 응급실엘 갔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을...


손가락이 잘려 덜러덩 덜러덩 하는 걸 들고 가도

5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꿰매 준다는 응급실의 괴담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안 가려고 했던 것이 원인이었고,

패밀리 닥터를 거쳐야만 다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와 무지(無知)가 문제였다.


차라리 어젯밤 12시쯤이라도 부러졌을 당시 곧바로 응급실에 갔다면

엑스레이도 이곳에서 찍었을 테니 부러진 팔로 운전까지 하면서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오래 기다렸어도 최소한 오늘 새벽 5시 정도에는 깁스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운전은 내가 아닌 남편이 했을 것이고,

밤새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이곳저곳 다니면서 스스로를 불쌍해하지도,

애쓰는 일도 없었을 것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정작 깁스하는 데는 30분도 채 안 걸렸다.

그 시간을 위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던 건지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벌써 밤 10시가 다 되어간다.

손목이 부러지고 석고 붕대를 칭칭 감을 때까지

거의 24시간 꼬박 통증을 참아가며 보낸 셈이다.


최하 6주 깁스를 해야 하고,

그 후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풀되 아니면 좀 더 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면서

이제 가도 된다고 한다.

드디어 여기서 나가도 되는 거야?

자유를 얻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허탈감이 몰려오는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이제껏 고생하면서 흘린 땀을 식혀주려는 듯 얼굴을 살짝 스친다.

손목도 마음도 안정을 찾아 편안해지고,

이젠 날아도 될 듯하다.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있는 동안 연락이 안 된 내가 걱정이 된 아들 내외가

핸드폰으로 나를 찾느라 벨이 쉬지 않고 울린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진다.


운전 중이라 집에 도착하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나의 홀로 고생담을 나눠야지~

할 말이 너~무 많다~

통증이 덜 해지니 농담을 해 보는 여유도 생기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깁스로 고정된 팔 덕분에 운전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픈 팔로 깜깜한 밤에 운전하는 나를 지키려 유리창 너머 달님이 함께 따라나서고,

양 옆으로 줄지어 선 가로등 불빛은 집으로의 무사귀환(無事歸還)을 응원하듯 도로를 환히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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