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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Feb 22. 2024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무슨 일이?

폭포보다 더 센 녀석을 만나다

이곳에 사는 캐네디언들 중에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살다 간 우리도 그 꼴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산다고 서울에만 있지 말고 부산도 가고 대전도 가고 제주도도 가봐야 하는 것처럼 캐나다에 살면서 적어도 캐나다에 있는 10개의 주(Province)와 3개의 준주들은 다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으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식을 위해서 캐나다에 왔는데 먹고 사느라 바빠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얼마나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가?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서 이뤄놓은 것들 다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면서 정작 아이들과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니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출근길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퇴근하면서 픽업하고 주말이나 연휴도 같이 쉬니까 늘 아이를 케어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반복적인 루틴 말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근처에 바람 쏘이러 나가보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여행한 번 가본 적이 없는듯하다.


맘만 먹으면 며칠 휴가 내고 어디든 가 볼 수 있는데 그걸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들로 이유를 만들어 흘러가버리면 그만인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 다짐하고 살짝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아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도 거기에 맞춰 휴가계획을 짠다.


큰 맘은 먹었어도 현실과 타협하기가 만만치는 않다.

결국 소심하게 주말연휴 끼고 3박 4일... 그러면 결국 금요일 하루 휴가? 

휴가도 아닌 휴가를 보내기로 하고 토론토로 향한다.


각 지역마다 관광을 할 만한 곳이 하나씩은 있는데 토론토에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쌩쌩 달려서 도착한 곳은 역시 유명 관광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람이 많다.

일단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세차게 내리는 물살 때문에 폭포에서 울리는 묘한 진동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곳에 오기 전 어릴 때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어 그것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내게 브라질에 있는 이과수 폭포를 다녀온 온 경험이 있는 남편은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용담 전하듯 말한다.


스포 당한 드라마는 더 이상의 재미가 없어지듯이 그 말을 듣고 봐서 그런지 아니면 세상에 놀랄 일이 하도 많아서인지 처음 보는 광경인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색다르거나 경이롭지는 않았다.

책에서 많이 보던 그림이라 별 감흥도 없다.


물론 커다란 하나의 물줄기가 아래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폭포와는 다르게 여러 개의 실타래를 한 곳에 묶어놓고 한꺼번에 풀어헤쳐 늘어뜨려 놓은 것처럼 일열로 줄 마쳐 펼쳐져 있는 넓이가 꽤나 웅장하게 보이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볼까?"하고 다가가니 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지는 물살의 무리의 힘에서 못 버티고 튕겨져 나오는 물방울들이 머리를 옷을 적시고 물보라가 피어오르며 만들어내는 수증기 덕분에 살갗이 끈적끈적해진다.


폭포에 와서 폭포를 보고 나니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보트 타고 폭포 근처까지 갔다 돌아오는 투어를 해볼까 하다가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아찔한 경험은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우비를 입고도 흠뻑 젖어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쏴악 사라진다.


그렇다고 여행이라고 왔는데 폭포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뭔가 많이 아쉽다.

밤이 되어야 까만 하늘 위의 별들이 반짝반짝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여러 개의 빛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불꽃놀이 쇼를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뭘 하지?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하니 차를 타고 오느라 지나친 것들을 다시 주워 담으려 입구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가는 길목마다 음식을 팔고 있는 부스에선 코끝에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들로 행인들의 식욕을 자극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입구 밖으로 살짝 빠져나가 보니 진짜 관광지는 폭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아니라 폭포를 끼고 있는 주변 마을 바로 이곳인듯했다.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번쩍이고 공룡모형들도 눈에 띈다.


설악산 입구에 가면 산채비빔밥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듯이 근처에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한국음식이 당기지만 그 많은 식당 중에 한국식당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중에 만만하고 익숙한 피자집으로 들어가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겨우 피자랑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허기를 채운다.


배도 차고 소화도 시킬 겸 오락실에 들르니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나 즐기는 듯하다.

아들과 남편이 농구를 몇 번 하고 이제 폭죽놀이를 보러 다시 폭포가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우리처럼 불꽃놀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아 여기저기 부딪힌다.

사람에 치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걷고 있으니 차가운 물방울 같은 것이 얼굴로 스치면서 잠시 후에 벌어질 뭔가를 예고해 준다.


예고편을 보고도 그땐 알아차리지 못한다.

멍청한 거지...

새가 오줌을 싸고 지나갔나?

폭포물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신호는 주었으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해봐라 요놈들... 하듯이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거침없이 퍼붓는다.

비 온다는 소리도 없었고 해가 쨍쨍 나면서 날씨가 좋았는데 갑자기 마른하늘에 무슨 날벼락인가?


무조건 반사로 머리에 손을 얹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 지붕(canopy) 아래로 잠시 피신을 했는데 벽이 없어서 지붕이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비가 마구 들이친다.


비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냥 똑바로 내리지 않고 사선을 그으면서 내린다.

가끔 어르신들이 어깨 통증 때문에 안마를 위해 폭포를 맞으러 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는데 우리는 마사지를 요구한 적도 없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를 온 등으로 따갑게 맞는 느낌이다.


이미 머리는 다 젖은 채로 샤워기에서 세차게 뿜어내는 물줄기처럼 귀로 얼굴로 마구 흘러내리는 물을 그리고 몰아치는 물세례를 어떤 저항도 없이 등으로 다 받아내고 있는 아들을 보자니 안쓰러워 비가 좀 덜 들이치는 곳으로 자리를 좀 옮겨 보라고 신호를 보내도 무슨 고집인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팔짱을 끼고 서서 그걸 그대로 다 맞고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가만히 있을까?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만 자꾸 눈이 간다.


신나서 한바탕 춤이라도 추듯 쏟아붓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순간의 퍼포먼스를 마친 소낙비는 금세 존재감을 감추고 숨어있던 햇빛이 살짝 고개 내민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마치 애로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야하게 옷 입고 샤워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처럼 옷도 신발도 다 젖고 풀어헤친 듯한 머리는 얼굴에 쫙쫙 달라붙고... 물폭탄을 제대로 맞은 듯했다.


물에 빠진 생쥐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영화 한 편을 찍었지만 꼬라지가 처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짧은 시간 안에 훑고 지나간 흔적치고 몹시 참혹한 모습이었다.


우스워진 몰골은 둘째치고 다 젖어 축축해진 옷을 그대로 입고 신발안으로 들이친 물 덕분에 아기들 신발처럼 걸을 때마다 뾱뾱 소리를 내며 퉁퉁 부었을 발을 질질 끌면서 이 와중에도 불꽃놀이는 포기할 수 없었는지 그래도 잘 보이는 자리를 찾겠다고 처량하게 걷고 또 걷는다.


밤이 되자 총소리와 함께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하늘에 수놓아지는 아름다운 불꽃들을 보니까 조금 전 있었던 일은 다 잊었나? 대학 축제 때 터지던 폭죽이 생각난다.

단순하기는...


잠시 옛날 생각에 잠기는 듯했으나 분위기에 취하기도 전에 쇼는 벌써 끝나버렸다.

폭포처럼 퍼붓던 비를 온몸으로 맞아 눅눅하고 질척거리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렸는데 허무할 정도로 보람이 없다.


어쩌다 계획하고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즐겨 보고 싶었던 우리는 플랜 B에도 없었던 심술궂은 소낙비라는 방해꾼 덕분에 나이아가라에서 그렇게 남루하게 젖어버렸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분명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그 이름값의 위세를 펼치며 거침없는 물살을 세차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폭포보다도 훨씬 힘과 그 기세가 강한 나머지 우산도 없이 아니 우산이 있어도 소용이 없을 만큼 사나운 소낙비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흠뻑 젖은 채로 한없이 초라해졌다.


살면서 여러 경우의 수와 만나게 되지만 그리 대책 없는 비는 처음인 듯하다.


여행의 끝엔 피곤이 밀려오듯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고 예상 못한 일에 무력하게도 녹다운당한 우리는 모두 지쳐 멍해진 채로 따라오고 있는 별빛들만 바라본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던 소낙비를 온몸으로 맞던 날 나이아가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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