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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ide up Oct 21. 2024

프랑스 노숙자가 손에 쥐어준 7만 원

마트 그릇 판매대에서 만난 아주 수상한 노숙자 

'하나부터 열까지 사야 할 것이 많구나.'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시작하는 첫 자취에 야금야금 살림살이를 들여갔다. 

오자마자 이케아에서 이불은 샀고, 그다음은 드라이기 그다음은 접시였다. 


접시를 하나 사러 모노프리(프랑스의 유명 마트 브랜드)에 갔을 때였다.

형형색색의 예쁜 디자인의 그릇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그릇은 

흰색 접시였다. 


어떤 걸 담아도 다 품어줄 것 같은 색, 가격도 3유로로 제일 저렴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그릇을 집으려고 매대에 다가갔을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머리카락은 뒤엉켜 있으며 썩은 이가 드문드문 보이고, 눈은 충혈되었으며 손마디에 낀 검은 때가 돋보였다.

그는 노숙자였다. 


그 순간 난 긴장했고, 자연스레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더니 50유로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건네주었다.


'뭐지, 이 상황은?'

당황스럽고 무서운 상황에 나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 있을 뿐이었다. 


'쉬이이잇'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고서는 내 손안에 지폐를 넣어주었다.  


자동 반사적으로 다시 그에게 지폐를 건네었다. 

그랬더니, 그는 쉿! 하며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이 돈이 많다며 자랑하듯, 주머니 속 현금 다발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당연히 영문도 모르는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


그의 얼굴이 내 코 앞까지 가까워졌다. 

'쉬이이잇' 

"japanese... i like japanese"


'여기서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안 될 거야..'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해코지를 당할 것 같은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릇 판매대를 지나가던 한 남성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제가 도와줄까요?"


그는 소리 없이 손과 입으로 쉿! 하며 시야에서 점점 사라졌다. 


도와주러 온 남성에게 난 '그가 나에게 50유로를 줬어요.'라고 말했다. 의문이 가득하면서도 어이없는 상황에 웃으며 'well, it's good' 하면서 남성은 인사를 건네고 갔다.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상기되고 사방팔방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들고 사려고 했던 하얀 접시를 집었다.

접시 하나를 든 채로 자가 계산대로 가자, 다시 그가 보였다.


프랑스 마트들은 안전 요원이 3명 정도 있는데 이들이 그를 예의주시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산 품목을 계산할 때, 마치 안전요원들을 놀리듯이 의기양양하게 주머니 속에 뭉툭하게 접혀있는 현금을 꺼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고자, 계산대에 서있는 그를 계속해 응시했다. 

그러자, 또 소리 없이 '쉿'하고서는 자신이 산 것들을 가방 속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마트 직원이 '무슨 일이 있냐.'라고 물어보았고 이번에 나는 ' 그가 나에게 50유로를 줬어요.'하고 속삭이듯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 돈은 진짜 못 쓰겠는데' 

접시 하나와 50유로를 들고 마트를 나가면서 그가 왜 50유로를 줬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먼 타지에 와서 유심히 그릇을 고르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으려나?', 아니면 '한탕 누군가에게 돈을 받은 날이려나.'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별 다른 이유 없이 베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프랑스 몽펠리에에서는 노숙자들이 길목마다 보인다. 

그들은 '돈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먹을 걸 손에 들고 있으면 그걸 달라고 요구하거나, 2유로만 달라고 요구하거나, 

언제는 스케치북을 ppt삼아 1분 자기소개를 한 뒤, 돈을 달라고 하는 노숙자도 있었다. 

사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경멸을 느꼈다. 


나한테 다가왔던 그 노숙자에게서는

그저 한 사람이 느껴졌다. 


그의 바람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의 돈은 그의 바람대로 쓰인 것 같다. 


살림살이를 야금야금 사고 있는 자그마한 나의 행복에 

그리고

노숙자들에게 


우리는 각기 다른 개인이지만 ‘인간’ ‘사람’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이는 존재들.

결국엔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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