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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돌이 할아버지

동화

by 인산

동네 아이들은 점돌이 할아버지를 무서워했어요. 괜한 일로 트집을 잡아 잔소리하거나 호통을 치기 일쑤였으니까요. 점돌이 할아버지는 아이들만 보면 못마땅한 표정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죠.

“이놈들, 저쪽으로 가지 못해? 조용히 좀 해!”

그러면 아이들은 도망치며 놀려댔어요.


“점돌이, 점돌이, 점이 있대요. 점이 있대요.”

“이놈들이! 거기 서지 못해?”


할아버지 별명은 어려서부터 점돌이였어요. 왼쪽 볼에 새끼손톱만 한 검은 점이 볼록 튀어나왔거든요.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아들 복점, 우리 아들 복점”하고 말했었죠. 그래서 할아버지도 아무 생각 없이 복점을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런데 이 쬐그만 놈들이 복점을 놀려대니 속이 편하겠어요? 그래서 피차 앙숙이 된 거예요. 동네 아이들과 심술쟁이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예쁜 여자를 신부로 맞이하게 되었어요. 할아버지 아들은 결혼 첫날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죠.


“아버지 성격이 좀 까다로워. 원래 마음은 그렇지 않으신데 겉으로 표현을 잘 못 하셔. 그리고 우리 아버지 점 봤지? 그거 복점이라고 생각하셔. 할머니께서 늘 복점이라고 하셨고, 그 점 덕분에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시거든. 그러니까 혹시라도 점을 흉보면 안 돼.”

“호호호! 흉보기는... 알았어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새댁이 시아버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커다란 점이 거슬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심술은 며느리에게도 이어졌죠. 별일 아닌데 화를 내기도 하고 반찬 투정도 심하게 부렸어요. 그러나 새댁은 꿋꿋하게 점돌이 시아버지를 잘 모셨어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거예요.




새댁은 임신하게 되었고 점점 배가 불러왔어요. 거의 출산을 앞두고 한 번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흰옷에 흰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산신령처럼 생긴 노인이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서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네 시아버지의 복점을 없애지 않으면 태어날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다.”

꿈이 하도 생생해서 새댁은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어요. 남편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죠.

“거참 이상하네. 그 점이 복점이라고 했는데... 태어날 아기에게 해가 된다면 어쩌지?”

“그러게 말이에요. 여보, 우리 아기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큰일이에요. 당신이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뭐라고? 점을 빼라고? 허 그건 안 될 거야. 아마 난리를 치실 걸!”


아들과 며느리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다 며느리는 그만 몸져눕고 말았어요.

“우리 아기, 어떡해요?”


아내의 울음 섞인 소리에 아들은 단단히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말했어요.


“아버지, 아내가 꿈을 꿨는데요... ”


자초지종을 들은 점돌이 할아버지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네 할머니가 하는 소리 못 들었냐? 이 점은 복점이다. 이 점을 빼면 내 복이 다 날아갈 거야! 넌 그래도 좋으냐?”

“그게 아니고요, 조상님 말씀이 아버지 점을 안 빼면 태어날 아기가 문제가 생긴데요.”

“흥! 그만둬라. 어떤 노인네인 줄은 모르겠지만 허튼소리 작작 하라고 해. 복점을 빼라고? 집안 말아먹을 일 있냐?!”


더 이상 대꾸를 할 수 없게 된 아들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어요.


“그래서 아내가 저렇게 누워있는 거라고요. 걱정이 돼서...”


그러나 점돌이 할아버지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입술을 꾹 다물고 하늘만 쳐다보았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귓가에 태어날 아이가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 계속 맴도는 거예요.


‘이 복점이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손주가...’


할아버지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밖으로 나갔어요. 복슬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자 점돌이 할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저리 가지 못해? 이 점박이야.”


복슬이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강아지였거든요. 놀란 복슬이는 꼬리를 내리고 얼른 자리를 피해 버렸어요. 할아버지는 자신의 볼록한 점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어요.


“이 점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내 평생을 함께한 복점인데... 하지만... 손주가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점박이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이 슬금슬금 할아버지 눈치를 살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아무런 시비도 안 거는 거예요. 오히려 아이가 할아버지를 자극했어요. 한 아이가 외쳐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아이들이 합세했죠.


“점돌이, 점돌이, 점이 있대요. 점이 있대요.”


평소 같았으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아이들에게 삿대질을 해댔을 할아버지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아이들도 놀리는 재미가 없어졌죠. 아이들은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할아버지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복점이라며 웃으시던 얼굴이 떠올랐고, 한편으로는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손주의 얼굴이 아른거렸죠. 입맛도 없어지고 하루가 다르게 핼쑥해진 모습이었어요.



며칠이 지난 후 할아버지가 어딘가를 다녀왔는데 아니 글쎄 볼록 튀어나왔던 복점이 온데간데없어진 거예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들 내외에게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점... 뺐다.”


며느리는 할아버지의 텅 빈 볼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어요.


“아이고, 아버님! 정말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야야 배고프다. 늙은이 굶겨 죽일 판이냐?”


점이 사라진 할아버지 얼굴은 완전히 달라져 보였어요. 심술궂은 표정도 없어지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죠.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점을 뺀 뒤로 할아버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요. 기력이 없고, 아무런 의욕도 없는 모습이었어요. 아들과 며느리는 참으로 걱정이 되었어요.

“아버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정말 복점이었나 봐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누웠어요.


“여보 그 점이 정말 복점인가 봐요. 아버님 어떡해요. 나 때문에... 저러다 돌아가시는 거 아니에요. 얼른 병원에 모시고 가요.”


아들은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참 이상하네요. 다 검사를 해 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한 데는 없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식욕도 없고 힘을 못 쓰시니.”


의사도 대략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저 혹시...”

“혹시 뭐요?”

“아 그게... 원래 아버지 얼굴에 점이 있었는데요. 그 점을 빼고 나서 저렇게 되셨거든요.”


그러자 의사는 안경 너머로 아들을 빤히 쳐다보았어요. 그게 말이 되냐는 표정이었죠.




통증을 느낀 산모는 산부인과에 입원하게 되었어요. 아들은 하염없이 누워만 있는 아버지에게 말했죠.


“아내가 애를 낳으려고 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어서 가 보라는 손짓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아들이 방안에 뛰어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버지! 산모도 아기도 모두 건강해요! 아기 울음소리가 아주아주 우렁찹니다! 이게 다 아버지가 복점을 뺀 덕분이에요!”


아무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힘은 없어도 갓 태어난 손주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아들의 외침과 함께 왠지 모르게 몸에 기운이 솟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들과 함께 병원엘 가는데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 들었죠. 병원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여린 손주를 보았어요. 작고 귀여운 얼굴, 그리고 그 손주의 왼쪽 볼에... 할아버지는 크게 웃어댔어요. 할아버지 평생 그렇게 크게 웃어본 적은 없을 거예요.


“푸하하 하하하! 그놈! 복점이 있구나! 복점!”


손주의 왼쪽 볼에 자그만 점이 있었던 거예요. 할아버지의 복점이 마치 손주에게 옮겨간 것처럼 말이죠.




다시 씩씩해진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만 보면 또 심술을 부렸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놀리기가 좀 난감했죠. 평소 같았으면 “점돌이, 점돌이, 점이 있대요. 점이 있대요.”하고 놀렸을 테지만 할아버지 얼굴엔 더 이상 점이 없거든요. 그래도 아이들은 묘하게 변한 할아버지가 예전처럼 마냥 무섭지만은 않았어요. 가끔은 심술 가득한 할아버지의 눈빛에 장난기가 엿보이는 듯했으니까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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