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혼을 막아선 대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이 사회가 자퇴생을 어떻게 보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노는 애들”,
“문제 있는 애들”,
“사회가 포기한 애들.”
그 시선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그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진짜 끝이라는
벼랑 끝의 위기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중학교 교과서부터 다시 펼쳤다.
수학 공식 하나하나가 다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했다.
“목표는 크게 가져야 해.
하버드를 목표로 해야 삐끗해도 서울대로 가는 거야.”
나는 수포자였던 주제에
취업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 이과를 골랐다.
그리고 상위권 이과생이 된 듯
당당하게 '의대'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
누구보다 나를 응원해 줄 것 같았던 아빠는,
정작 내가 정말 공부에 간절해진 순간엔
되려 내가 넘어지길 바라는 사람처럼 굴었다.
옛날엔 그렇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더니,
막상 내가 진짜 해보겠다고 나서자
그 태도는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아빠를 피해 부산에서 강원도로 도망쳤던 그날,
엄마는 이번엔 꼭 이혼하겠노라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그래도 아빠잖아. 용서해 주자.”
그 한마디로 아빠는 부산 집을 정리하고,
우리와 다시 함께 살기 위해 원주로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세 식구가 다시 함께 살게 되자,
뭔가 잘못됐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아빠는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중요한 순간마다 내 공부를 방해했다.
내가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볼 때면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깔깔대며 박장대소했고,
참다참다 공부 중이니 조용히 해달라 부탁하면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TV도 못 보냐”며
오히려 더 볼륨을 높이곤 했다.
딸자식이 열심히 공부 좀 해보겠다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난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아빠는 우리랑 다시 살 기회조차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