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대에 가야 하는 이유
그 시절, 나의 하루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공부‘
처음 해보는 공부라 뭐부터 손대야 할지도 몰랐다.
출제자의 의도나 학습 효율을 높이는 방법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질보단 양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그동안 놓쳐온 교과 내용을 따라가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부터 책을 폈고,
그들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방구석 내 자리를 지키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섯 시간씩 수학 문제집을 붙들고,
풀고 또 풀고 틀린 건 다시 들여다봤다.
그 시간이 쌓이자 뜻밖에도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외계어 같던 공식들이 조금씩 말이 되기 시작했다.
영어는 내 식대로 해보기로 했다.
펜팔 사이트에 가입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문장 구조와 문법을 직접 써보는 식으로 연습했다.
공부가 영 안 되는 날엔 미국 영화를 하루 세 편씩 몰아봤다.
6개월쯤 지나자
자막 없이도 이야기의 흐름과 맥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고 느리지만
분명히 나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나와 엄마는 이번에도 아빠를 피해서 원주를 떠났다.
엄마의 예전 가게 단골손님들도 올 수 있을만한,
부산 북구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하지만 아빠는 찾지 못할 만한 곳.
그렇게 우리는 양산의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 날이면
근처 이마트에 가서 사람 구경을 하거나
집 근처 대학병원에 가는 것 말고는
집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바쁘게 오가는 젊은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미래의 내 모습일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나는 고2 나이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해 처음 본 수능에서도
예상 밖으로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그다음 해
현역의 나이로 응시한 두 번째 수능 점수로는
인서울 화학공학과까지 갈 수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친아빠를 찾으려면 의대를 가야 해 ‘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번 수능으론 꼭 의대에 갈 수 있도록
더더욱 속세와 연을 끊고 공부에만 집중하겠다고.
“엄마, 수능 원서 접수 기간 때 나한테 알려줘.
나 이제 인강 사이트 말고는
인터넷 싹 끊고 뉴스도 안 볼 거야.”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방 안에서
또다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정말 그렇게 공부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