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생활의 시작

피하고 싶던 한국에서의 삶

by 세모

수능 원서접수를 놓친 그날 나는 일단 한국 밖으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이착륙 소음 때문에 공항도 올스탑 되는 나라.

경찰이 학생들 지각 안 하게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날.

하루 종일 온 나라가 수능 얘기밖에 안 하는 날.


3년 내내 속세와 연을 끊고 시험공부에 매진한 나에겐 수능 당일날에 한국에 있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제일 먼저 항공권부터 알아봤다.

부산에서는 홍콩 왕복이 가장 저렴하게 풀려있었기에 혼자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난 별생각 없이 표를 끊었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숙소에 있었다.


15만원 정도는 내야 겨우 3성급 호텔에서 묵을 수 있었고, 내 예산인 5만원 안에서는 바퀴벌레가 하룻밤에도 수십 마리 나온다는 비위생적이기로 악명 높은 청킹맨션의 작은 창고방 밖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외동딸로 곱게 자라 설거지도 안 해본 나는 벌레가 무서워 개인 공간을 포기하고 7만원대로 적당히 저렴한 침사추이의 6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홍콩 말고 다른 데로 끊을걸'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항공권을 결제한뒤였다.


홍콩에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도대체 방 안에 가구들을 어떻게 넣었나 싶을 정도로 좁디좁은 이층 침대 세 개가 끼여 있는 작은 방이었다.

침대 난간 여기저기엔 장기 여행자들이 손빨래를 해서 널어놓은 듯 한 속옷과 수건들이 걸려 있었고, 축축한 빨래에서 배어 나온 쿰쿰한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남녀 구분도 없었다.

물 빠지는 구멍은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의 온갖 색깔의 머리카락으로 반쯤 막혀 잘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짐을 풀고 아무런 계획 없이 호스텔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나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오늘 우리 경마 보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운이 좋게도 내가 체크인 한 날은 매주 한 번 호스텔 숙박객들이 모여 바깥 액티비티를 함께하는 날이었고, 덕분에 밤새도록 방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노래나 들을 예정이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마장에도 가보고 홍콩 클럽 거리도 구경했다.


전 세계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처음으로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엔 파랑 눈의 외국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색해서 심장이 쿵쾅댔지만, 3년간의 펜팔로 거의 외우다시피 한 영어 자기소개 레퍼토리는 주구장창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키운 리스닝, 스피킹 스킬과 맞물려 현실에서 외국인들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통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붙 하듯 타이핑한 문장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랐고, 마치 대본을 읽듯 자기소개를 술술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한껏 솟아올랐다.


“그나저나 너는 정말로 한국에서만 살다 온 거 맞아?

악센트도 없고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잘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원어민에게 미국에서 살다 온 줄 알았다는 영어 칭찬을 들었다. 미국 영화를 많이 본 영향이었겠지. 비록 그 해 수능은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동안의 공부와 노력이 완전히 헛된 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던 홍콩의 그 도미토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의 젊은 날의 낭만으로 남았다.

방 컨디션이 좋아 기쁜 마음에 찍은 사진들. 아쉽게도 홍콩 숙소의 기록은 없다.
홍콩에서 두번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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