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가 될 결심
나의 부모님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기적으로 싸웠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도 늘 그러했듯,
나와 엄마는 아빠를 이기지 못하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도망치듯 부산을 떠났다.
이번의 목적지는 강원도, 엄마의 고향이었다.
6학년 때 회피하듯 전학을 택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새로운 도시로 이사한 뒤,
내 세상은 점점 단순해졌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또다시 버림받지 않는 것.’
그게 어느새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었다.
친구란 존재는
한순간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공포가
늘 내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고
그 불안은 나를 조용히 조여왔다.
학교 공부 같은 건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고,
아이들과 더 잘 섞이기 위해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댔다.
한때 모두가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하던,
그때로 너무나 돌아가고 싶었다.
난 매일 밤 잠들기 전 불안에 떨며
오늘 내가 했던 말들을 머릿속에서 되감았다.
혹시 실수한 건 없었나,
괜히 기분 나쁘게 들렸던 건 없었을까.
그렇게 혼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깎아내렸다.
그 무렵, 나는 자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슬프게도 피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머릿속이 뒤엉키고 불안한 감정이 폭주할 때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빨갛고 뜨거운 피를 보면
거짓말처럼 정신이 들었다.
“아, 이거 닦아야 돼.”
“이불에 피 떨어졌잖아.”
혹여나 누가 보기 전에 휴지를 찾아 핏자국을 지우고
상처를 지혈하는 그 물리적인 일련의 과정은,
미쳐가기 직전까지 나를 몰아가던
지독한 생각의 연결고리를
잠시나마 끊어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픔을 통해 버티는 방법에 익숙해져 갔다.
아니,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가위로 시작한 자해는 어느새 커터칼로 바뀌었고,
피부조직이 보일 정도로 스스로를 해쳤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상처들은 어느새 스스로 지혈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매번 병원에 가서 꿰매야 했다.
수학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은 나를 문제아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나의 우울증과 중2병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선생님한테 대드는 게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인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공부에서 멀어졌다.
'어차피 담임도 날 문제아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더 애쓸 필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