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처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마음의 변화에 대하여

by 서별

<흔들리는 쪽으로>


눈이 멀었나 봅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귀가 먹었나 봅니다.

응원도 들리지 않습니다.


후각도 잃었나 봅니다.

사랑의 향기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지로 희망을 쓰려는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저

변덕 많은 마음에 맡긴 채

오늘은

흔들리는 쪽으로

서 있으려 합니다.




릴스 하나를 보았습니다.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일본인 여성 하나가 화면 속에서 웃고 있었고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감정의 모순은 놀랍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했습니다.


그 여성이 처음 꺼낸 말은 단순했습니다.


"지쳐버렸습니다."


그 말에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사연도, 해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은 충분히 길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가볍게 삼켜버리는 말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침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주 작은 변화로 시작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예전만큼 내일이 궁금하지 않다는 사실.

누군가의 응원이 소음처럼 느껴지는 순간.

좋아하던 것들의 향기가 더 이상 나지 않는 저녁.


그 변화들은 너무 사소해서 기록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개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하며 지나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웃고 있는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말합니다.

지쳐버렸다고.


저는 요즘, 희망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희망은 종종 처방처럼 사용됩니다.

아직 견딜 수 있다, 곧 나아질 것이다, 버티면 의미가 생길 것이다.

그 말들은 틀리지 않지만 언제나 옳지도 않습니다.


희망을 억지로 쓰는 순간, 마음은 노동이 됩니다.

기대해야 할 의무, 긍정해야 할 책임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미세한 균열은 더 빨리 닫혀버립니다.

느끼지 못하게 되고, 듣지 않게 되고, 결국 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희망 대신 상태를 기록합니다.

괜찮은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고, 좋아질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 있는지만 살핍니다.


흔들린다면, 흔들리는 쪽으로 서 있기로 합니다.

똑바로 서지 못하는 날에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기로 합니다.

그 선택은 체념이 아니라 일상을 통과하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릴스 속 그 여성의 웃음과 눈물은 특별한 감정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자주, 너무 조용히 지나쳐 온 얼굴이었을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지쳐버렸습니다"라는 말은 사실 이렇게 들렸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