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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식이가 탐이 난다.

금반지 좋아하세요?

by 꽤 괜찮은 사람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를 보면서 눈물 콧물 다 짜낸 내가 든 한 가지 생각!


'남자 하나만 잘 만남 돼!'

백마 탄 왕자님도 아니고 재력과 권력이 있는 실세도 아니었다.

그냥 '관식이'란 남자가 탐이 났다.

사실, 박보검이 아닌 다른 내 주변의 평범한 남자들이 '관식이'었다고 해도

'관식이'가 몹시 탐이 난다.




철없던 시절, 20대의 사랑은 선물로 시작해서 선물로 끝이 났다.

어쩌면 그토록 달콤한 말을 매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을 낸다.

커다란 곰 인형, 꽃다발, 연애편지, 향수, 옷, 액세서리, 신발, 가방 등등.

선물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결론은 사랑으로 잘 포장해 버린다.


전 남편은 꽤나 로맨티시스트였다.

(원래, 불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다정할 때는 꿀을 몸 전체에 부은 듯하다.)

사랑을 하니 거짓말도 점점 더 늘어난다.

수많은 고백과 맹세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속고

'히죽' 좋아서 웃고 가슴 설레는 밤을 지새운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졸업을 앞둔 그는 '첫 월급'을 받으면 내게 수만 가지의 선물을 사 준다고 약속했었다.

누가 보면 대기업 갓 신입의 월급이 몇 백 정도는 충분히 넘는 줄 알겠다.

그는 그 월급으로 매일 내 선물을 사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묶고

그가 좋아하는 하이힐을 신고 청바지를 입었다.



하지만, 꽤나 하기 힘들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20대 중반부터 그는 금반지를 좋아했다.

노란색의 번쩍번쩍, 내 손가락에 쌍가락지가 채워졌을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는 그 손가락을 감추고 싶었다.


"어멋, 금 가락지네요. 대박이야."

26세의 대학원생 손가락에 끼어진 금 쌍가락지를 보고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자랑대신 황금색의 그 반지가 퍽이나 촌스러워서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그가 해외 근무를 마치고 난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이혼 도장을 찍고 난 후, 내게 끊임없는 사랑의 구걸을 할 때도,

그의 금 가락지 사랑은 한결같았다.

그는 금을 좋아했다. 그는 진짜를 좋아했다.

이런 거 하나 갖고 있음 나중에 다 쓸 때가 있다니까.



훗날, 나에게 끔찍한 폭언과 행동을 할 때, 나는 그 금반지를 몽땅 금은방에다 팔아 버렸다.

'내가 네가 해 준 것들 하나라도 갖고 있나 봐라!'


왜, 그때 그 번쩍이는 것들이 돈으로 생각되지 않았을까?

24k 금반지의 가치도 몰랐던 나는 내 마음의 복수를 애꿎은 금 가락지에 해 버렸다.



그리고 올해 초, 전 남편 그가 나를 다시 금은방에 데려갔다.

"하나 골라 봐! 이왕이면 금 가락지로!"

요새는 금 가락지도 제법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결국 18k 반지를 골랐다.


"이것도 이뻐, 아니 이게 더 이뻐!"

세상을 좀 알 나이가 되니 금테크라도 할까 싶어서 망설였지만 나는 실속 없는 '예쁜 것'에 또 끌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진짜를 잘 구분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마음속에는 금 한 덩어리가 꽉 차 있는 듯하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라도

10년 후의 미래가 어떨지 몰라도

나는 현재 세상에서 제일 비싼 마음을 선물 받았으니까.


2025년 내 관식이!

휴대폰의 전 남편 연락처 이름이 바뀌었다.

내가 금을 극도로 좋아하거나, 돈을 좋아하는 속물은 결코 아니다. (아니, 속물이면 좀 어때?)

진짜를 볼 줄 아는 사람, 변하지 않는 금같은 사람.

그 사람이 현재 내 앞에 있다.


'관식이'가 더 탐이 나지 않는다.

나도 '관식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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