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메꾸기
사람들의 소울푸드는 참 다양하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매운 닭발에 밥까지 비벼 먹으며 날려 버리고,
열다섯 살 딸의 시험 스트레스는 마라탕 2단계와 엽떡으로 충분히 풀린다.
‘소울푸드’란 말엔 한국어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정감이 간다.
굳이 번역하자면 ‘영혼의 음식’쯤 될까.
영어 교육가인 나조차 ‘소울푸드’보다 ‘쏘울푸드’의 어감이 더 좋다.
“엄마, 엽떡에 우삼겹, 유부 네 개는 나의 영혼 음식이야. 시켜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쏘울푸드’라고 말할 때가 훨씬 한국적이다.
하지만 ‘SOUL FOOD’의 본래 유래는 미국 흑인들의 식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그 속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래서일까, 그 단어가 입안에 착 감긴다.
그는 바다 사람이다.
대학 입학 전까지 바닷가에서 자랐고,
해녀였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 내내 싱싱한 해산물과 함께했다.
“전복, 성게, 미역… 이런 걸 다 먹었다고? 몸에 좋은 건 다 먹었네.”
내가 감탄하자, 남편은 담담히 말했다.
“그건 엄마가 팔고 남은 거였어.
우린 늘 가난했거든. 도시락에 분홍색 소시지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도시락에 비엔나 소시지를 칼집 내어 케첩을 뿌려 다니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는 걸.
그래서였을까.
그는 웬만한 해산물로는 “맛있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런 남편에게 된장찌개는 늘 ‘프리패스’였다.
잘못 끓여도, 대충 끓여도, 밀키트든 새벽배송이든 모두 합격.
된장, 애호박, 버섯, 두부, 그리고 차돌박이 한 점이면 충분했다.
국물에 고기 맛이 배고, 따뜻한 밥과 김치 한 접시면 그에게 세상 최고의 밥상이었다.
요리를 못 하는 내겐 딱 맞는 남자였다.
된장찌개의 응용 버전은 구수함의 끝판왕, 청국장.
덕분에 나는 ‘청국장 맛집’과 ‘밀키트 추천’을 술술 읊는 사람이 되었고,
10분 안에 끓여내는 청국장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단순한 그 남자에게도 유난히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다.
전 남편: “00야, 나 발톱 좀 깎아 줘.”
나 : “지난주에 깎았잖아.”
전 남편: “알잖아. 난 짧게 해야 마음이 편해. 손톱도 부탁해.”
지방 근무지에서 주말마다 올라오던 그는
내게 늘 손톱깎이를 내밀었다.
미처 자라지도 않은 손톱, 발톱을 정성 들여 깎아 주는 일.
그것이 우리의 주말의식이었다.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오래전 사라졌던 정을 조금씩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