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졸지에 부동산을 싣고....
(언제는 있었던 집이었나?)
정말 아무것도 없는 우리는 결혼반지를 포함한 얼마 되지 않은 예물을 싹 팔고
3살 난 아이랑 원룸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 집에서 친정 부모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보다 내가 내 부모를 더 미워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었고,
그냥 흘리는 눈물 말고 피부로 느껴지는 실제적인 사과를 원했다.
나의 현실은 매일이 전쟁터였다.
내가 버는 돈은 그대로 남편 몰래 친정의 밑 빠진 독을 채우기 바빴다.
남편 몰래 빚을 져야 했다.
남편 몰래, 그 빚을 갚느라 허덕였다.
엄마 아빠가 '말기암'에 차례로 걸렸다. 장애가 생겼다.
사채업자들과의 싸움은 10년을 넘게 시달려야 했다.
모든 것이 내 몫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게 '계산 좀 해 주세요'라고 청구서를 내밀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는 피노키오가 순간 부러웠다.
차라리 거짓말인 줄 고백을 하면 마음이 이리 불편하지 않을 텐데....
한참을 헤맨 후 남편은 내게 '진짜 이혼'을 선포했다.
즉, 다른 여자를 찾기로.. 이제 '너희 집 뒷바라지는 이것으로 끝을 내겠다'는 공식 선언!
다만, 그의 아버지로서의 사랑은 바다보다 더 깊었다.
그는 정말 충실하게 양육비를 꼬박꼬박 주었다. 통장에 마이너스가 나더라도.
몇 년 후, 내게 '우리가 이제 함께 있을 수는 없어!'를 외쳤다.
그 역시, 아직도 빚을 갚느라 쩔쩔매고 있다.
우리는 이혼한 성인 남녀로, 아이들의 엄마 아빠로 각자 자리에서 빚을 갚고 있다.
삶의 빚, 아파트 대출금, 시댁 부모에게 거짓말 한 남편이 진 빚, 시간의 빚,
마이너스를 내면서 살아온 그 빚 등등.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 그 빚들까지도!!
나는 세상에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월세 100을 내면서 그 돈이 아까운 줄도 몰랐다.
집안에 입지도 않은 옷들을 잔뜩 갖고 있는 것이 낭비인 줄도 몰랐다.
'만원, 이만 원이 뭐 큰돈이라고?'
큰돈이었다. 작은 것부터 원래 시작해야 함을 몰랐다.
남편이 마이너스를 내면서 돈을 아이들한테 보낼 때 그가 얼마나 애쓰는지 몰랐다.
나만 힘들 줄 알았다.
나만 피해자인 줄 알았다. 나만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줄 알았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은 진짜 지식이 넘쳐나는 것도 몰랐다.
공부만 하면 뭐 하나? 남들 앞에서 지식을 전하면 뭐 하나?
세상에 진짜 지혜를 모르는 사람이 나였다는 것도 몰랐다.
예컨대, 이사를 하면서
사다리차가 온다고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미리 해야 하는 것도 몰랐고.
도배업체를 불러야 하는 것도 모르고,
부동산 계약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돈을 버는 것보다 모아야 함이 더 중요함도 몰랐다.
돈의 선순환 따윈 관심조차 없었다.
아파트 재테크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빚은 아주 적은 액수라도 갚는 것이 고통 그 자체라는 것도 몰랐다.
카드보다는 현금을 써야 함도 몰랐고
계획 없는 소비, 작은 실천이 중요함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어서..
그리고 내 마음이 아직도 살아 있음도 알게 되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욕심,
낭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고 사랑도 놓치고 싶지 않다.
전 남편에게 갚고 싶다.
사랑도, 마음도, 진심도, 빚도....
무너져서 폐허가 된 곳에 벽돌 하나씩을 쌓고 싶다.
완공 시기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닌 진짜 나로 살아가기 시작했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모한 용기 일 수 있겠지만,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