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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인과응보

더 이상 비겁하지 않기로..

by 꽤 괜찮은 사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혼한 이유를 내 부모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 했을 때는 마음 깊은 곳의 앙금을 털어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있으니 누군가에게 '힘 좀 내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폭삭 속았어요'의 애순이 5명만큼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잘난 것은 없지만

'희망의 아이콘'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어 보였다.


완벽한 나의 착각, 교만이었다.

자꾸 쓰면 쓸수록 내 민낯이 드러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내 이혼은 모두 '내가 원인'이고 '내가 100%의 책임'이었다.

(이런 맘에 자꾸 글을 쓰는 것을 미루게 되었다.

창피함에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오늘은 큰맘 먹고 써 보려 한다.)




아버지는 불명예 은퇴 이후,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댔다.

일확천금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아버지는 보기 좋게 또 추락했고 마지막 희망인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평생 금융기관에서 펜만 잡은 사람에게 사업이 쉬었을까?

야생 들짐승의 먹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의 덫에 힘없이 그리고 쉽게 걸려들었다.


부동산 사기를 당했고, 다단계 사업에서 생겼던 빚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빚이 늘자, 아버지는 최후 발악이라도 하듯 사채를 썼다.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벌린 아버지는

마지막에는 시댁에게도 거짓으로 돈을 빌렸다.

'사기범'이라고 한다. 이 행위를!

졸지에, 나는 '사기범의 딸'이 되었다.

모든 것이 거짓으로 드러난 날, 시어머니가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너, 우리 집 근처에도 오지 마라. 너 오면 내가 소금 뿌릴 거야.
네가 감히 우리를 속여?
너 일부러 우리 아들한테 사기 치려고 결혼한 거지?


여기까지 보면 나의 이혼의 책임은 전적으로 내 부모에게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주 몹쓸 병이 생겼다. 그것이 내 이혼의 직접적 원인임을 이제야 나는 안다.

(이것도 집안 내력인가?)

내게는 '경제관념 무지의 불치병'이 있었다.



암은 처음에는 아픈 줄도 모르고 있다가 암세포가 장기에 다 퍼져 있을 때쯤 통증을 느낀다.


나도 그랬다. 내게 갖고 있는 암세포가 얼마나 큰 덩어리인지도 모르고

병을 키웠다.

사람 잃고 전 재산 잃고 건강과 인생을 통째로 잃은 부모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책 없이 그들을 살리려고 발버둥 쳤다.

잘못 하나 : 결혼을 했으면서도 완벽한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하지 못했음.

남편은 제대로 성숙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나로 인해서 철저하게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남편은 펄펄 뛰는 시부모님과 싸우면서 가정을 지키려 애썼다.


그는 선의의 거짓말이든 새빨간 거짓말이든

서슴지 않고 했다. 용감하다. 나와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그의 몸부림은 흡사 독립투사 같았다.

남편은 결국 빚을 갚으려 해외에 2년간 파견 근무를 자진해서 나갔다.

꽤나 많은 돈이 내게 '생활금'으로 들어왔다. 빚을 갚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린 나는 그 돈을 썼다.

내가 노름을 하고 술을 먹고 쇼핑중독이라도 되었다면 그나마 이런 후회는 안 할 텐데..


'무지한 경제관념의 암세포'를 몸에 가진 채, 우선 내 아이들과 내 부모를 위해서

그 돈을 썼다.

'일단 저축부터 하고 계획된 남은 돈을 생활비'로 써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2년 뒤, 한국에 돌아온 남편에게 나는 0원의 통장을 보여줘야 했다.

그는 무너졌고 차오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나를 때렸다.


잘못 둘 : 암세포가 제대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몰랐다. 약도 먹지 않고 키웠다.


"아빠 없는 우리 아이들, 엄마가 부족함 없이 좋은 것, 좋은 교육시켜줄게."


"엄마, 아빠 나만 믿어. 사위가 열심히 돈 벌고 있고 나도 벌잖아.

그러니 일단 엄마 아빠 필요한 것들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나는 저축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병에 걸렸다. 암세포가 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살고 싶으니, 의사한테 수술이라도 시켜 달라고 사정했어야 했는데.....

나는 괜한 자존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끝없는 욕과 폭력, 마지막에 남편은 새벽, 나를 집 밖으로 내쫓았다.

너는 이 집에 있을 자격이 안 돼!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자기 몸에 암이 자라나고 있는 줄 모르는 나는 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딴 데 쓴 것도 아니고 애들 교육하고 먹이고 입히고, 좋은 체험시켜 준 것 밖에 더 있어?

나도 맨날 돈 모자라 쩔쩔맨다고! 네가 나보고 맘껏 쓰라고 했잖아!"




사람이 미치는 데는 한순간이다.


지금 와서 이혼은 후회가 되지 않는다.

이혼 후의 생활은 후회가 된다.

가장 많이 후회가 되는 것은

왜 저축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나는 그때,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저축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그 안일함이 병을 키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경제관념이 전혀 없는 여자로 생을 스스로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끝나면 참 좋을 텐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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