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은 태양 4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살 권리와 재미를 잃어버린 채, 오직 가족을 지탱해야 하는 의무로만 자신을 무장했다. 아버지의 삶은 의무로 무장된 전투였다. 번 돈은 온전히 가족의 생계로 흘러들었고, 그 위에 동생의 중학교 학비까지 도맡아 대어 주었다.
그 무렵의 중학교는 지금처럼 모두가 일반 과정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학문을 잇는 보통중학교가 있었는가 하면, 기술과 직업교육을 중점으로 한 실업계 중학교도 있었다. 삼촌은 직업교육이 중점인 실업계 중학교를 택했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금융조합에 사서로 취직되었다.
아버지는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자신의 뼈아픈 상처를 덮어두고, 동생의 졸업과 취업을 마치 자신의 성취인 양 기뻐했다.
태줄을 감고 태어나 아명은 태술이라 불렸으나, 본명은 ‘천일(天日)’, 곧 하늘의 태양이었다. 그 이름처럼, 그때는 집안을 환히 비출 듯 빛나 보였다.
그러나 그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촌은 회계 담당이었는데 서류상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다, 회계 업무를 맡았지만, 돈을 직접 만져본 적도, 눈앞에서 본 적도 없었다. 장부와 서류만이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서류상에 금전적 손실이 발생하자, 조합은 책임을 삼촌에게 떠넘겼다. 조합은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갚을 길 없는 빚 독촉이 이어졌다.
삼촌은 억울함과 두려움 속에서 밤마다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임을 벗어날 수도, 사실을 바로잡을 수도 없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그는 끝내 형님이자 가장인 아버지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돈을 벌러 들어갔는데, 이제는 돈을 내놓으라니…”
그 고백은 오히려 아버지의 눌린 분노를 터뜨리는 불씨가 되고 말았다.
이미 수많은 짐을 홀로 짊어진 장남은, 예민해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삼촌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주먹이 날아들었고, 삼촌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맞고 또 맞다가 결국 쓰러졌다.
그날 이후, 삼촌은 무너져 내렸다. 책임과 모멸, 형에게서조차 보호받지 못했다는 절망은 어린 영혼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조합에서의 압박과 가족 안의 폭력은 그의 마음을 끝내 지탱할 수 없게 했다.
삼촌은 점점 말을 잃어갔고, 눈빛이 흐려졌다. 한때는 집안을 비추던 ‘천일(天日)’, 하늘의 태양이던 그는, 이제 제 빛을 거두고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미쳐버렸다”고 말했다. 삼촌은 끝내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전기충격치료까지 받았지만, 정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 태줄을 감고 태어나 ‘태술’이라 불리던 동생, 집안을 밝히라는 뜻으로 ‘천일(天日)’이라 이름 붙여졌던 동생은, 이제 더 이상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늘 허공을 떠돌았고, 말은 더듬거리며 흩어졌다. 가족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집안을 일으킬 희망이었던 삼촌이, 시대와 가난, 억압과 폭력의 무게에 무너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타고난 광기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짊어진 끝에 무너져 버린, 시대와 가족이 만든 병이었다.
아버지는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이를 악물었고, 우리의 가족사는 또 하나의 깊은 그림자를 안게 되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이를 앙다물었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과, 끝내 터뜨려 버린 분노가 아버지의 가슴을 짓눌렀다. 아버지의 고단한 삶에 또 하나의 깊은 상처가 새겨진 순간이었다.
삼촌의 삶이 무너져 내린 뒤, 그 충격은 고스란히 할머니에게로 옮겨 갔다. 기도로 버티며 집안을 붙들던 분이었지만, 더 이상 감당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오래도록 깊은 우울에 잠겨 계셨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슬픔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우울은 점점 분열의 세계로 번져갔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이는 순간들이 잦아졌고, 종종 혼잣말을 하시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셨다.
어린 아버지에게는 그 모든 장면이 고통스러운 낙인처럼 남았다. 동생은 미쳐버리고, 어머니는 병든 마음으로 멀어져 갔으며, 가장으로 서 있던 아버지는 그 모든 무너짐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집안일에 시종일관 방관자였다. 깊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도, 누군가가 그의 신경을 건드리면 돌연 분노가 폭발했다. 밥상을 엎어버리고, 때로는 누구의 뺨이라도 서슴없이 때렸다. 가족 모두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은 끝내 헤아리기 어려웠다. 무심한 듯 보이면서도, 속에 어떤 불길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두려움 그 자체였고, 동시에 미스터리였다.
이 모두가 슬픔으로 남는다.
‘슬픔이여! 안녕’ 그러나 그 안녕은 끝맺음이 아니라, 흘러 흘러 강으로, 바다로 이어지는 눈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