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향한 역설
전쟁이 멈춘 뒤에도, 우리 집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 부모님은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다.
전쟁과 가난, 생존의 전선 위에서 그들은 결코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반면 나는 싸우지 않고도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세대다.
그것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다.
생존에서 ‘즐거움’으로, 고통에서 ‘의미’로 옮겨가는 ‘삶의 진화’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우리 싸우지 말자”라는 말이 오히려 새로운 싸움의 불씨가 되곤 한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평화를 향한 역설’ 속을 걷는다.
평화를 간절히 바라지만, 평화를 말하는 순간 다시 긴장이 피어난다.
내 안에는 오래된 감정들이 뒤엉켜 있다.
풀리지 않은 서운함, 말하지 못한 분노, 그리고 진심으로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사람이 진정으로 싸움을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마음속 깊은 미움과 두려움, 억울함을 조용히 직면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이제 나는 안다.
“싸우지 말자”로 시작된 대화가 더 큰 싸움으로 번질 때조차 그건 실패가 아니라,
마음이 회복을 갈망하는 신호라는 것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어 풀고 싶다는 내면의 외침이다. 내면아이 치료전문가 존 브래드쇼는 “해로운 수치심으로부터 건강하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를 숨기는 것부터 그만 두어야한다” 라고 했다.
긴 세월이 흘렀다. 나는 부끄러워 숨겨 두었던 상처를 이제 과감히 꺼내어 마주 선다.
삶의 전사였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하늘나라에 계신다.
세월은 몸의 흉터를 지워 주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건드려지면 통증을 남긴다.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헌신과 기도로 내 몸이 나았듯, 이제 나도 모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불같은 당신의 사랑으로, 오래된 영혼의 상처를 태워 주소서.'
이제 분노와 수치를 넘어 이해와 용서 속에서 다시 사랑을 배우고 싶다.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재미있게, 신나게 살고 싶다.
다짐한다. 이제는 싸움 대신 사랑으로, 생존 대신 삶으로 나아가겠다.
그리고 더 이상 싸움과 긴장을 반복하지 않겠다.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삶을 즐기며 살아가겠다.
그들은 싸워야 살았고, 나는 싸우지 않기 위해 산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생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