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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참맛

by 이상역

백수란 한 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말한다. 요즈음 나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세상을 이리저리 부유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 백수로 태어난다. 그러다 성장기를 거쳐 학교 과정을 마치면 하나의 직업을 선택해서 퇴직 때까지 일한다.


젊은 나이에 직업을 구해 일하다 자리를 잃고 잠시 직업을 구하는 기간이 순수한 백수다. 나처럼 직장을 퇴직하고 특별한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백수가 아니다.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종종 백수가 되어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다. 삶은 점진적이고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지는 집합체이지 하나의 개별적인 행태나 행위가 삶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내 삶을 돌아보니 요즘처럼 백수로 놀아 본 적이 언제 적이었던가. 아마도 백수로 놀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내 앞에는 늘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고 피할 수 없는 일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돈도 많이 모으지 못했고 재산도 없다. 조선시대처럼 신분차별이나 직업의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수로 지내는 것이 좋은 듯하면서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백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기술을 가진 것도 없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경력이 없어 사회적으로는 거의 쓸 모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백수 신세가 되면서 그간 가정사에 소홀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던 일에 손을 대고 있다. 청소기로 방을 청소하거나 식사를 하고 난 뒤 설거지 하거나 산책 나가면서 쓰레기를 가져다 분리수거하는 일이다.


백수가 되어 가정에서 하는 소소한 일도 만만치가 않다. 특히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란 것을 절절하게 배워가고 있다.


청소는 방 청소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싱크대와 현관 등 구석구석 청소를 하려면 종일 해도 못한다. 따리서 목욕을 하거나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서 청소해야 깨끗하게 유지할 수가 있다.


청소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때마다 수시로 쓸고 닦거나 문질러서 하는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바지런함과 수많은 잔손질이 가는 일이다.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백수로 지낼 때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녀보라고 한다. 그런데 여행도 백수로 지낼 때 가는 것과 직장에 적을 두고 가는 것에 많은 차이가 난다.


어떤 일을 하면서 가는 여행은 휴식 겸 나들이가 되지만 백수로 지내면서 가는 여행은 백수의 연장이다. 따라서 여행지에 가서 느끼는 감흥이나 흥미가 훨씬 줄어든다.


인생이란 어차피 백수로 태어나서 백수로 돌아가는 삶의 구조다. 직장을 퇴직하고 백수로 얼마 간의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노후의 삶과 질이 달라진다.


백수를 면하기 위해 과거의 일과 경력을 살리는 것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지만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뒤늦게 백수로 지내면서 백수의 고달픔과 배고픔 등을 감당하며 인생의 참맛을 배워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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