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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Dec 19. 2022

연인

눈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 일요일 아침, 습관처럼 동네 카페로 갔다.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지만 순식간에 몸이 싸늘해졌다. 다행히 카페로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훅 밀려왔지만, 카페는 비어있었다.


오늘은 안 오는 걸까?


커피를 시켜놓고, 눈 쌓인 마당을 찍고, 노트북을 펼치고, 기다려 보았다. 일요일 이 시간이면 꼭 왔었는데, 오늘은 안 오는 걸까? 마음이 조마조마한 그때 문이 열리는 풍경 소리 후, 직원의 반가운 인사가 들렸다.


"날이 많이 추워요."


할아버지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인사를 하는 할머니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카페 사진을 찍는 척 나가보았다. 그분들이었다.

90이 가까워 보이는 노부부가 손을 잡고 들어왔다. 두 분은 거실의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야구 모자를 쓴 할아버지와 예쁜 꽃모자를 쓴 소녀 같은 할머니. 지난번에 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두분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춥지 않아?“

"괜찮아.“


그들 앞에 놓인 유자차와 커피보다 다정한 목소리다. 두 분은 차를 마시며, 별말 없이 서로를 보기만 했다. 그때, 고요한 카페 안으로 할아버지의 웃음기 가득한 말이 흘렀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진으로 찍으며 두 분의 대화를 엿듣던 내 마음에 몽글몽글하고 달콤한 것들이 피어 올랐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눈빛과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내 광대는 솟아올랐다. 마음에 뭉클한 것이 가득 찼다.


짧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려고 하면 쑥스러운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 그 한 마디를 앞에 있는 연인에게 건네는 목소리가 참 따스하다. 그 말 속에는 ‘사랑해.’가 ‘고마워.’가 ‘행복해.’가 담겨있었다.


영하 14도라는 날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창밖에 쌓인 하얀 눈은 이 사랑스러운 연인들의 나들이를 위한 배경이었고, 찬 바람은 연인들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며칠 동안 내내 고민했다.


사랑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만일 나와 너의 동기화라면, 오직 너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단 하나의 사랑은 없다. 그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거라면 내 삶에 사랑은 오직 하나여야 하지만, 아니다. 나는 언제든 누구와든 동기화될 수 있다.


단 하나인 것은 오직 ‘나’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랑이 참 하찮아졌다. 정작 중요한 것이 사랑을 하고 있는 현재의 나, 현재의 내 감정이라면 사랑은 너무 이기적이다.

내 마음에 사랑이 생겼고, 마침 그 사람이 너일 뿐이라면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나다. 이기적이다. 나는 그렇게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에 점점 패배하고 있었다.



20분쯤 지나자, 할아버지가 벗어놓은 장갑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도 모자를 고쳐 쓰고 소파에서 일어나셨다. 다른 손님들에게는 인사로 배웅하던 직원이 직접 나왔다.


"잘 마셨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나서는 할머니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할아버지는 내내 할머니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그 뒤를 따라갔다. 문이 닫히고 창문 너머로 아름다운 연인이 눈 내린 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게 보였다.


일요일의 단 20분을 위해 나란히 길을 걸어와 오롯이 서로를 마주한 남자와 여자. 자식도 손자도 빼고 단지 내 앞의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과 이야기하고 당신이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표현해 주는 두 사람.


나는 '연인이 뭘까?'라는 질문의 미로에 갇혀있었다. 최단거리의 탈출 공식을 만들어 보려 했다. 명확한 하나의 대답을 찾고, 정형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샤이닝의 잭처럼 미로 속에서 얼어붙어갈 때, 아름다운 연인들을 만났다. 따뜻했다.


탈출로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묻는다면,


연인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고

사랑은 지금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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