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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Mar 04. 2024

검은 밤의 시작

연재소설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어두웠다. 유리는 앞서 걸으며 계속 정태에게 전화했고, 그 핸드폰 불빛을 따라 걷는 원우는 조용했다. 원우는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그게 뭔지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세 명이 잠깐 나온 산책인데 돌아가는 사람은 두 명뿐이라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안 받아.”               


유리는 핸드폰을 내리고 돌아보았다. 원우를 향한 얼굴에 드리운 어둠은 단순한 의심이었다.               


“너랑 같이 사라졌잖아. 둘이 내 앞에서 없어졌어. 그런데 왜 나중에 나타난 거야?”               


유리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말을 감추지 않고 다 꺼냈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탓에 유리의 눈에 이원우의 얼굴은 반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원우도 마찬가지였다.               


“선글라스는?”     

“몰라. 안개 때문에 안 보여서 뺐는데 …아, 몰라!“               


밤이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바닷속으로 떨어지자 마자 섬과 바다는 온통 검은 파도에 뒤덮인 듯했다.             


“정태한테 전화해 봐.”     

“안 받는다니까? 혹시, 숨어서 황은수 동생 몰카 찍는 거 아닐까? 음흉한 새끼. 몰래 자기만 빠져나가서 무슨 짓 하고 있는지 알게 뭐야.”                         


그게 아니면? 정우는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추론을 해보려 했다.


“황은수 아빠가 처리한 거 아닐까? 배에 가두거나, 아니면 죽여서 바다에 버리거나.“


백유리의 말이 그럴듯했다.


“ 그래서 물어볼 거야?”

“미쳤어? 우리가 황은수 죽게 만든 걔들이라고 자백할래? 겨우 숨겼는데?“


백유리가 발작하듯 대꾸했고, 이원우는 침묵했다.




민박집 마당은 백열전구의 불빛으로 환했다. 마당은 비어있고 불빛 아래 아무것도 없는데, 둘러싼 어둠 때문에 무언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우는 민박집 숙소부터 들어가 방마다 문을 열어 보았지만, 안정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늦었네요?”                    


계단을 올라오는 황은채의 목소리에 원우가 다가가 물었다.               


“혹시 저희 친구 봤어요?”     

“아뇨. 안 그래도 너무 늦으셔서 요 앞까지 나갔다 왔어요.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걱정했어요.”               


걱정했다는 황은수의 동생은 해변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던 그 표정 그대로였다.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원우와 유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식사부터 하실래요?”               


딱히 밥맛은 없었지만, 원우는 유리와 함께 본채 거실로 들어갔다. 황은수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 황은수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바로 그것을 보기 위해 이런 볼품없는 섬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황은수가 남겨놓은 것, 황은수의 유가족이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꼭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알면 두렵지 않아. 모르니까 무서운 거야.”               


안정태가 한 그 말이 이원우를 여기까지 오도록 했다. 그런데 막상 황은수의 집에 들어가는 이 순간, 안정태는 보이지도 않고 통화도 되지 않았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자, 확실히 조금 불안했다.                         



거실에는 큰 밥상 하나가 놓여있었고, 밑반찬과 휴대용 가스버너가 있었다. 유리는 그 앞에 앉아서 다시 안정태에게 전화를 했고, 원우는 거실에 서서 둘러 보았다. 커다란 가족사진에는 덩치가 큰 남자와 긴 머리의 여성, 그사이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앉아서 식사하세요.”               


전골용 냄비가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올랐다. 파란 불꽃이 냄비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자, 유리가 다시 정태에게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는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아. 혼자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아까 안개 속에서 뭐 이상한 거 못 봤어?"               


머뭇거리다가 결국 원우가 그 질문을 던졌다. 유리의 눈 사이가 좁아졌다. 말 없는 표정만으로는 의심인지 경계인지 알 수 없었다.               


"아까 사진 많이 찍던데, 좀 볼 수 있어?"               


원우가 핸드폰으로 손을 뻗자, 유리가 얼른 핸드폰을 상 아래로 숨겼다. 원우와 유리의 눈빛만이 얽히고 있을 때, 황은채가 그릇을 들고 주방에서 다시 나왔다.               

“낙지는 오래 끓이면 맛이 없어요. 움직이는 게 멈추면 바로 드세요.”                    


황은채는 손으로 낙지 머리를 잡아 끓고 있는 닭백숙 국물에 넣었다. 뜨거운 열기에 놀란 낙지의 다리가 살려고 꿈틀댔다. 하얗게 올라오는 김 속에서 낙지는 냄비 밖으로 나가기 위해 8개의 다리로 이곳저곳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탈출구를 찾기 전에 움직임이 멈췄고, 하얀 김이 낙지를 집어삼켰다.     


유리는 가위를 들고 낙지의 다리를 잘라가며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다. 그녀를 지켜보며 밥을 먹던 원우는 자꾸만 안개 속에서 본 정태가 떠올랐다. 정태의 얼굴을 하고 자신이 백유리라고 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떠올라 유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본채 건물에서 나왔을 때는 어둠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밤공기는 낮과 달리 선선했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쌀쌀하게까지 느껴졌다.          


“아까 안개 속에서 다른 거 못 봤어?”     

“다른 거 뭐? 정확히 말해. 뭘 말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볼까? 너 지금 진짜 수상해.“


원우는 솔직하게 대꾸할 수가 없었다. 정태를 보았지만 그건 정태가 아닌 백유리였다고 할 수도 없고, 그건 정태도 백유리도 아닌, 정의할 수 없는 존재였다고 할 수도 없다. 머릿속에는 온통 안개 속에서 본 그것이 한,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내가 백유리로 안 보여?”                    


확인하는 그 말투, 비어있는 그 눈빛, 안개 속으로 사라지던 얼굴. 이원우는 핸드폰으로 다시 정태의 이름을 눌렀다. 핸드폰은 그의 귀에 연결음만을 뱉어냈다. 원우는 고개를 돌려 안개가 시작됐던 산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의 산은 달빛이 물든 하늘과 경계 지어져 있을 뿐, 그 내면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낯선 발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정태가 돌아오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계단참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남자는 덩치가 컸다. 180이 훌쩍 넘을 듯한 키에 어깨가 넓은 남자 하나가 한 손에 고무 물통을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물통 안에는 긴 집게가 들어있었고, 어둠 때문에 물통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원우는 조금 전 본 가족사진을 떠올렸다. 황은수와 황은채의 뒤에 서있던 남자. 민박집주인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를 마주한 유리는 뒤로 물러났고, 원우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수염이 덮수룩한 남자는 모자를 푹 눌러써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멈춰서 원우와 유리를 훑은 후 물통을 든 채 본채 건물 뒤로 걸어갔다.                         

그가 뒤뜰로 사라지자 유리가 원우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봤어?”     

“뭘?”     

“황은수 아빠 맞지?”     

“그런 거 같아.”     

“손에 든 통에 그거. 못 봤어?”     

“어두워서. 너는 봤어? 뭔데?“               




원우는 유리의 목소리에 담긴 공포에 전염될 것만 같았다.               


“머리 같아.”               


유리가 크기를 짐작해 두 손으로 흉내내며 말했다.               


“잘린 … 사람 머리 같아.”               


그녀의 말에 이원우는 밥상 앞에서 자주 들은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아들! 빛으로 가려고 하지 마. 눈이 부시면 눈을 감게 되어 있어. 눈을 감으면 너의 적이 너의 목을 잘라도 모르는 거야.          


섬의 검은 어둠 속에서 백유리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아들! 어둠에 있으면 말이야. 그 어둠에 익숙해지면 말이야. 눈이 더 커지는 거야.          


검은 밤은 아직 길었고, 안정태는 돌아오지 않았고, 백유리는 자신이 본 것이 사람의 머리라고 확신했다. 이원우는 검은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뜬 채 떠올렸다. 황은수의 아빠, 민박집주인이 백열전구의 불빛에서 멀리 돌아 뒤뜰 쪽으로 걸어가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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