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달이 남쪽에서 서쪽 하늘로 조금씩 지며, 동지의 밤은 어느새 점점 깊어 갔다. 인적이 끊겨가는 늦은 시간, 성균관 사역원들이 사는 반촌의 주막에는 서로 만나기는커녕 스치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50대의 주막 여주인은 직접 솜을 넣어 누빈 배자를 입은 채 마당에 서있었고, 상투를 틀 수 없어 더벅머리를 한 백정은 평상 끝에 앉아 아직 김이 오르는 팥죽을 먹고 있었다.
반대쪽 자리에 앉은 비단 도포를 입은 40대의 남자, 자신을 산에서 글공부만 했다는 이생원이 술잔에 다시 막걸리를 따르는데, 등불을 든 두 남자와 검을 든 두 남자는 이생원의 눈치를 살피느라 굳어있었다. 호산월은 이생원의 옆에 앉아 주막 안의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낮에 주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종잇장처럼 얇고 바스락거리는 치마 아래 부지깽이처럼 말라비틀어진 다리가 있고, 신도 신지 않은 발은 살이 하나도 없는 뼈다귀였다오.”
‘주모가 보았다는 것은 역신인데, 이 중 누구의 몸에 들어가 기회를 보는 걸까?’
호산월의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차가운 공기 속 이생원의 칼날 같은 눈빛이었다. 술그릇을 내려놓은 이생원이 팥죽을 뜨다가, 숟가락 위에 놓인 수수 새알심을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계축년에는 도성 안에서 기침 소리가 그치질 않았지.”
이생원의 말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주모는 깊은숨을 내쉬며 백정이 앉은 평상에 가서 앉았다. 그날을 떠올리는 주모의 눈은 동지의 어둠만큼이나 흐려졌다.
“다들 기침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두려워, 솜이불을 두 겹 세 겹 덮고 숨었답니다. 열꽃이 핀 자들은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고, 기침 소리만 나도 역병 환자라고 소문이 났지요. 계축년에는 광희문 밖에서 시신 태우는 연기가 끊이질 않았어요.”
주모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백정의 술그릇에 막걸리를 따랐다. 찰랑거리는 막걸리를 보며 백정이 입을 열었다.
“숨어서는 그런 말들을 했습니다. 살육당한 억울한 영혼 때문이라고.”
그 말에 검을 든 두 남자의 오른손이 움찔했다. 당장이라도 검을 검집에서 빼 들을 듯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평상 쪽을 바라보았다. 이생원은 오히려 팥죽을 먹고 새알심을 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모친께서 강원도 사람이라 수수팥떡을 좋아하셨다는 말을 듣곤 했지. 그런데 어째서 저치는 새알심이 가득한데, 나는 겨우 세 개인가?”
“귀하신 양반 나리께서 수수 새알심을 입에 대실까 싶어서… 더 드릴까요?”
주모의 말에 이생원이 팥죽 그릇을 들어 내밀었다. 주모가 팥죽 그릇에 수수 새알심을 더 얹는 사이 이생원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양반도 전란을 겪었지. 함경도에 있을 때였나? 먹을 것이 없어 수수로 죽을 쑤어 먹어야 했어. 그것도 먹지 못하는 날이 있었고.”
“전란도 아닌데 굶어 죽게 생긴 사람도 있지요.”
이생원의 말에 대꾸하는 소리가 주막의 싸리문 앞에서 들려왔다. 크고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머리와 수염이 까끌하게 덮여있는 나이 든 승려였다. 잿빛 승복을 입고 목에 굵은 나무 염주를 걸고 있는 승려가 주막으로 들어와 툇마루에 가서 앉았다.
“하룻밤 묵고 가려는데, 방은 있나?”
“있지요. 스님. 저녁은 드셨소?”
“팥죽이 남았으면 한 그릇 주시오.”
이생원이 몸을 틀어 툇마루에 앉은 나이 지긋한 승려를 바라보았다. 승려는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 눈을 털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서궁 근처만 가도 악취가 진동하고, 궁녀들이 먹을 것을 구걸한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장작도 없고 솜옷도 없으니 얼어 죽지 않으면 굶어 죽겠지요.”
“불쌍하신 서궁마마.“
주모가 한숨을 뱉으며 자기 얘기하듯 말했다.
“아비도 잃고, 자식도 잃고, 어미는 북쪽 변방에서 술을 따르는 주모가 되었다던데. 쯧쯧쯧쯧 ... 공주님 아니었으면 죽어도 벌써 죽었지. ”
호산월은 주모의 말을 듣는 이생원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별 반응 없이 팥죽을 먹기만 했고, 그의 주위를 지키는 제등을 든 남자들과 검을 든 남자들만 안절부절못했다. 더벅머리의 천한 백정은 수수 새알심을 먹지 않고 팥죽만 먹었고, 주모는 소반에 팥죽과 동치미를 올려서 툇마루의 스님에게 갖다 주고는 마주 앉았다.
“그놈이 그놈이지. 서쪽 놈들은 기축년에 천여 명을 도륙내고, 북쪽 놈들은 계축년에 천여 명을 도륙내고.”
숟가락을 든 승려가 소반을 두드리며 흥겹게 말하자, 주모가 웃으며 마룻바닥을 탁 치고 그 말을 받았다.
“하늘 같은 분의 아들들은 전쟁통에 남의 재산도 뺏고 남의 계집도 뺏고.”
“그렇지! 목숨도 뺏고 충신도 죽이고.”
문 앞에 선 남자가 들고 있던 검을 뽑았다. 차가운 동지의 밤을 가르는 쇳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쇳소리만으로도 달빛이 잘려 나갈 것 같았다. 싸늘한 쇳소리에 웃고 노래하던 주모와 승려, 백정은 숨을 멈추고 눈치를 살폈다. 그 정적 속에서 이생원이 소반을 탁, 치며 장단을 맞췄다.
“왕이란 작자는 궁궐병에 걸려.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을 짓더니. 경덕궁에 인경궁까지 짓는다고, 허구한 날 나무를 가져와라. 기와를 가져와라.”
이생원의 말에 주모와 스님이 깔깔대고, 백정마저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제야 검을 빼 들었던 남자가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제등을 든 두 남자만이 불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호산월은 조금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이 일을 부추기고 있는 걸까?’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살폈다.
‘여기서 누구 하나 죽어 나가면, 순식간에 역병이 퍼진다. 피 한 방울이면 ...’
쥐들이 눈쌓인 담을 따라서 빠르게 움직였다. 인적은 끊겼고, 집집마다 담벼락에 팥죽을 뿌려둔 탓이다. 낄낄거리던 주막 안도 고요해졌다.
“방법이 있나. 임금이 바뀌어야지.”
웃음기 사라진 이생원의 말에 두 남자가 다시 검자루를 잡았다. 등불을 든, 수염이 없는 두 남자는 허리를 급히 숙였다.
“광인의 핏줄이라더군. 하늘 같은 아비도 광인이니, 그 자식들 역시 미쳐 살인귀들이 되었다. … 왕은 그 핏줄이 아닌가? 그런데, 바뀐다고 달라지겠나? 그놈의 혈통이 또 이어져 광인일 테지.”
이생원은 남은 팥죽을 박박 긁어서 다 먹은 후 숟가락을 소반 위에 탁하고 올렸다. 작고 짧은 파열음에 주모는 그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승려는 툇마루에서 내려와 두 손을 모았고, 백정도 평상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동지의 차가운 바람보다 더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이생원보다 먼저 호산월이 일어났다.
“아십니까? 나리? 동지는 호랑이가 장가를 가는 날이랍니다.”
호산월은 이생원의 소반에 놓인 술병을 들어 그의 술그릇에 막걸리를 따랐다.
“밤이 아주 길고 길어서 그렇다지요? 저희 모두에게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소인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었고, 저기 저 주모는 자식 셋을 잃었지요. 어쩌다 잃었나?”
호산월의 말에 무릎을 꿇은 주모가 대답했다.
“아들 둘은 제 애비랑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린 딸은 역병에 죽었지요. 먹일 약도 없었고 와주는 의원도 없었습니다. “
주모의 대답에 호산월이 이번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승려에게 물었다.
“스님께선 전쟁 때 어디 계셨습니까?”
“승병이 되어 평양성에서 싸웠지. 내 손으로 왜놈들을 수 백 명 죽였는데, 지금은 매골승이 되어 버려진 시체를 땅에 묻고 있소.“
호산월은 고개를 돌려 백정을 바라보았다.
“재인께서는 전쟁통에 어찌 살아남으셨소?”
“회자수였습니다. 진주성에서 탈영하다 붙잡힌 자, 왜군과 내통한 자들의 목을 내 손으로 참했습니다. 왜놈의 목을 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손에 목이 날아간 건 겁먹은 군인과 너무 어린 군인이었지요.”
백정의 말이 끝나고, 호산월이 다시 이생원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리, 호랑이도 장가 가느라 내려오지 않는 이 밤,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이 밤을 뭐라 하는지 아십니까? 드디어 겨울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호산월의 말에 이생원이라고 칭한 남자의 차갑던 눈에 점점 온기가 스며들었다.
“겨울에 도달했으니, 해는 지금부터 길어질 것이고, 이제 봄으로 가겠지요.”
이생원은 호산월이 따라준 탁한 막걸리를 보더니 한 번에 들이켜고는 주막을 나섰다. 그의 발길이 어둠에 닿지 않도록 두 남자가 제등으로 빛을 밝혔고, 그 뒤로 검을 든 남자 둘이 따랐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죽을 목숨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주모와 백정과 승려는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호산월만이 천천히 움직여 주막 문 앞에 걸린 등불을 껐다. 순식간에 주막 안은 어둠에 휩싸였다.
“죽음이 죽음을 부르고, 원망이 원망을 부르고, 원한이 원한을 부르고, 슬픔이 슬픔을 부르고, 질투가 질투를 불러오며, 집착이 더 큰 집착을 부른다네. 잃은 것은 잃은 것, 남은 것은 남은 것, 살아야 하는 것은 살아야지.”
호산월의 말이 끝나자 눅눅하고 음습한 바람이 그 옆을 지나 반촌의 골목을 쓸며 사라졌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어둡지만은 않았다. 허리가 동강 난 상현달이지만 그 반쪽 남은 달빛이 동지의 기나긴 밤을 밝혀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