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한 장의 무게야 새의 깃털만큼이나 가볍겠지만, 곱게 간 먹물을 찍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책 한 장의 무게는 태산보다 무겁지요. 그 한 장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기도 하니까요.“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쓴 소설책의 한 장을 잡고, 호산월은 죽은 작가에 대한 원망인지 연민인지 모를 감정에 매여 쉬이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호산월의 말에 책쾌 한상호는 묵직한 은전 주머니를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그러니 금서가 됐지. 그 책은 읽는 것은 물론 소지하는 것도 금하고 있어.“
“지배층은 백성이 똑똑한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지난해에 역모 사건으로 또 여럿 죽어 나가고 단속이 심해졌으니, 너도 조심하거라.”
책쾌는 호산월에게 신신당부한 후 소반 위 붉은 빛깔의 술을 목으로 넘겼다. 근래 들어 마셔본 술 중 가장 독한 술이었지만 부드럽고 향긋했다. 술을 다 넘긴 후에도 입안에 달달한 맛이 남아 기분이 좋았다. 듣는 둥 마는 둥 책만 넘겨보던 호산월이 책을 덮은 후 책쾌 한상호의 빈 술잔에 홍주를 따라주었다.
“수표교 쪽에 있는 박가 서화점을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설공찬전을 유통하다가 아주 난리가 났지. 괴력난신 이야기가 백성을 현혹하고 선동한다며, 필사한 사람부터 책을 소지한 양반들까지 잡혀가 치도곤을 당했단다.“
“그 바람에 주문했던 책을 받아볼 수 없게 되었어요.”
호산월이 구하려던 책이 궁금해진 한상호는 술잔을 내리고 창밖과 문밖을 두리번거리면서 목소리를 줄여 물었다.
“찾는 책이 뭔데?”
“원명이라는 거사께서 필사한 책으로 책 제목은 호령입니다.”
의주에서 동래까지 발품을 팔며 책을 구하러 다닌 책쾌로서, 한상호는 처음 듣는 제목에 자존심이 퍽 상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기억을 끄집어내 보았지만 필사한 자의 이름도 책 제목도 낯설었다.
“성균관 유생 하나가 호랑이를 보았다며 헛소리를 해대다가 정신을 놓았답니다. 유생의 방에서 원명이 필사했다는 ‘호령’이 나와 대사성이 불태워버렸다고 들었는데…..모르십니까? “
성균관에서 대대적으로 금서를 찾아내 불태웠다는 얘기는 한상호도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도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책쾌 한상호는 호기심이 동하고 ‘호령’이라는 책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책을 필사한 분이 도력 높은 스님이라는 말도 있고, 둔갑한 구미호라는 말도 있다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구경이나 한번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나지 뭡니까?”
평소와 달리 들뜬 호산월의 표정을 보자 나이 많은 책쾌는 옳다구나 싶었다. 한글 소설책 한 권에 은전 한 주머니를 내놓았으니, 호령이라는 책을 구해주면 그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듯싶었다. 한상호는 붉은 술이 묻은 수염을 쓸어내리고 호산월을 바라보았다.
“그 책 내가 구해주마.“
“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허! 전란에도 수백 권의 책을 지켜낸 책쾌로서 그까짓 거 못 구할까?”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이 끝나자, 호산월이 문갑의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호산월이 꺼낸 것은 백동으로 만든 작고 동그란 손거울이었다. 뒷면에는 잉어 두 마리를 조각한 손바닥만 한 거울을 한상호에게 내밀었다.
“책을 구하시면 읽지 마시고 저에게 가져다주세요. 혹시라도 만에 하나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시면 이 거울을 꺼내세요.”
송화루의 붉은 술을 한 병 다 마신 책쾌는 은전 주머니를 바지끈에 단단히 묶고 종루를 향해 걸었다. 비싼 값에 팔리는 책은 금서가 되어 함부로 팔 수 없고, 그저 그런 책들은 찾는 이가 없어 먼지만 쌓여갔다. 전란으로 농사지을 만한 땅은 사라지고, 십여 년이 넘도록 짓고 있는 궁궐 공사로 다들 먹고살기 어려워했다. 그런 세상이니 책을 구하려는 이도 점점 줄었다.
한상호는 허리에 찬 은전 주머니 무게를 다시 헤아려 보았다. 이 정도면 일 년 치 곡식을 사고도 남았다. 원명이 필사한 ‘호령’을 꼭 구해서 기와집 한 채 가격을 불러봐야겠다 생각하니 걸음이 가벼웠다. 신이 난 책쾌는 승정원 교서관부터 들러 송별좌를 불러냈다.
“호령? 이런 사람을 봤나. 승정원 교서관에 와서 금서를 찾는 건가? 잘못 걸리면 반년동안 구들장 신세니, 그만 포기하고 나랑 탁배기나 마시러 가세.”
낮에 마신 붉은 술에 취한 책쾌는 붙잡는 송별좌를 뿌리치고 광통교로 향했다. 광통교에서 도화서까지 늘어선 서화점을 들락거리며, ‘호령‘이라는 책에 대해 물었는데 다들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밤이 되어 점포 앞에 등불이 하나둘 걸렸다. 동지를 향해가는 겨울의 찬 바람 때문인지 저잣거리는 한산했다. 하지만 허리에 차고 있는 은전 주머니 무게가 한상호를 거리에서 서성거리도록 했다.
“돈의문 근처에 사는 책쾌한테 한 번 가 보시오.”
지전의 상인에게 들은 말을 따라 한상호는 경희궁을 지나 돈의문까지 걸었다. 궁궐 공사가 한창이라 횃불이 여기저기 일렁댔고, 한숨 소리가 궁궐 담을 넘어 돈의문 가는 길까지 들리는 듯했다.
주막에 들러 돈의문 근처에 사는 책쾌에 대해 물으니, 집을 가르쳐 주었다. 돈의문 밖 연못골 사는 책선비라고 하면 다 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이 가리킨 길을 따라가니 작은 기와집이 보였다.
한상호는 사람들이 가르쳐준 기와집의 대문 앞에서 주인을 불렀다. 문을 열고 나온 남자는 수염도 없는 젊은 선비였다. 상투 튼 머리에 탕건을 쓰고 두툼한 솜 누비옷에 초피로 만든 배자 차림의 선비를 보자 그가 수완 좋은 책쾌로 보였다.
“찾는 책이 있어 왔는데 잠시 들어갈 수 있겠소?
“책이라면 제가 가진 것이 좀 있습니다. 편하게 들어오십시오.”
젊은 선비의 방은 한쪽 벽이 책장이었고, 칸마다 책이 잔뜩 놓여있었다. 책이 얼마나 많은지 책장이 휠 정도였다. 젊은 선비는 나이 든 책쾌에게 자리를 권하고 술을 내주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잔뜩 넣었는지 방은 후끈후끈했다. 솔잎 향이 나는 따뜻한 술을 마시며 구경하던 한상호가 젊은 선비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호령이라는 책을 알고 있소? 원명이라는 사람이 필사했다고 들었는데.”
“아! 그 책을 찾으시는군요.”
젊은 선비는 책장을 뒤적거리다가 얇은 책 한 권을 가져와 한상호에게 건넸다. 오래된 책에는 호령(虎令)이라는 제목 아래 필사자의 이름으로 원명이 쓰여있었고 작가는 미상이었다.
“얼마를 쳐주면 되겠소?”
“찾는 이가 없는 책이었습니다. 그냥 나중에 닭이나 한 마리 가져다주십시오.”
젊은 선비의 말에 한상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닭 한 마리로 집 한 채를 사게 생겼다며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것을 참고, 솔향 가득한 온주를 다 마신 후 그 집에서 나왔다. 인경이 울리기 전에 돈의문을 들어가야 해서 늙은 책쾌는 걸음을 서둘렀다. 동지가 아직이지만, 해시의 밤길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고요한 밤길을 걷자니 슬슬 손에 든 책이 궁금해졌다. 성균관 대사성이 불태웠다는 책은 어떤 책일까? 도력 높은 스님이 쓴 책인지 둔갑한 구미호가 쓴 책인지 알 길 없는 책은, 첫 장에 무엇이 쓰였는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호랑이를 좇는다는 건가? 호랑이에게 일을 시킨다는 건가? 그것 참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나?’
책쾌는 이 책을 필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사해 놓으면 두고두고 큰 이문을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책이 더 궁금했다. 늙은 책쾌는 밤길을 걸으며 흐린 달빛 아래 책의 표지를 넘겼다.
“산은 깊고, 물이 맑으니, 만월은 창천에 뜨고 구천은 내 앞에 있네.”
책쾌의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그의 눈은 책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 가까웠다. 책을 읽는 책쾌의 목소리가 어두운 길을 따라 흘렀다. 그 소리에 다른 발소리가 묻혔고, 책쾌의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으르르르르 …
오싹한 기운에 늙은 책쾌가 책 읽는 것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스무 걸음쯤 앞에 얼룩무늬 선명한 호랑이가 서있었다. 호랑이는 어금니를 드러낸 채 아주 낮은 소리로 숨을 토했다. 호랑이의 하얀 입김이 책쾌에게로 밀려왔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책쾌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리고 오들오들 떨었다. 아주 잠깐 호산월이 했던 당부가 스쳐 지나갔다.
“책을 구하시면 읽지 마시고 저에게 가져다주세요. 혹시라도 만에 하나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시면 이 거울을 꺼내세요.”
죽었구나 싶은 그 순간 호산월이 한 말은 그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책쾌는 손을 덜덜 떨며 품 속을 뒤졌다. 호랑이의 코와 눈 사이에 깊은 주름이 생기며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책쾌는 차라리 정신을 잃고 그대로 황천으로 가길 바랐다. 그러다 손에 호산월이 준 백동 거울이 잡혔다.
- 어흥!!!!
호랑이가 하늘로 솟구쳐 늙은 책쾌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손에 잡힌 백동거울을 꺼내 호랑이에게로 향했다. 흐린 달빛을 받은 백동 거울이 번쩍였고, 그 빛을 받은 호랑이가 순식간에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놀란 책쾌가 거울을 떨어트렸다. 백동 거울이 내뿜는 달빛이 밤의 어둠 일부를 비추었고, 거짓말처럼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한상호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거울을 주워드는데, 그 옆에 떨어져 있던 호령이라는 책은 불이 붙은 듯 잿가루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북풍의 찬 바람을 받은 잿가루는 순식간에 흩날리다가 사라져 버렸다. 주저앉은 책쾌는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인경 소리에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책쾌는 파루가 울릴 때까지 돈의문 옆에서 거적을 쓰고 밤을 보낸 후 곧장 송화루로 향했다. 마당을 쓸던 가노가 책쾌를 보자 웃으며 별채로 안내했다. 마루 끝에 앉아서 기다리던 어린 하녀가 책쾌를 보자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어르신께서 전하라셨습니다. 책쾌가 오면 거울은 돌려받고 아침을 먹여서 보내라고요. 만일 책을 가져오면 쌀 한 말을 내주고, 책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술 한 병을 내주라고 하셨습니다. 책을 가져오셨습니까?”
책쾌 한상호가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가노는 준비해 두었던 붉은 빛깔의 술 한 병을 책쾌에게 준 후 그에게 백동 거울을 받았다. 술 한 병을 든 책쾌가 송화루에서 나오는데, 어느 사대부가인지 알 수 없으나 청지기가 하인 여럿을 이끌고 송화루로 들어갔다.
하나같이 등에 지게를 졌는데, 지게 위에는 쌀가마와 소금가마, 비단이 잔뜩 실려있었다. 책쾌는 자신의 손에 든 술 한 병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비쩍 말라 정신을 놓았다는 성균관 유생이 떠올랐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둔갑한 구미호는 송화루에 있구나. 내가 홀려도 단단히 홀렸어.”
책쾌는 붉은 빛깔의 술을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넘기며 운종가를 걸었다. 이른 아침 문 닫은 상점들이 한산했다. 술을 마셔도 몸이 떨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허리에 찬 은전 주머니의 무게가 태산 같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