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이 스물여덟 번 울리고 도성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동지가 가까운 도성은 밤이 더욱 짙었고, 을씨년스러운 바람만 골목을 따라 흘렀다. 사람들이 문을 굳게 닫아걸은 깊어 가는 밤, 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운종가 끝 골목에서 멈췄다. 송화루라고 음각된 현판 아래 몇 개의 계단을 뛰어 올라온 좌순청 순라군이, 있는 힘껏 대문을 두드렸다. 번을 서고 있던 기방 가노가 문을 열자, 젊은 순라군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도둑 하나가 이 집 담을 넘었네. 방마다 뒤져 수상한 자를 찾게.”
“아이고! 잠시만요. 숨 좀 돌리십시오. 여긴 여염집이 아니라 기생집입니다요. 방마다 손님들이 주무시고 계신데, 어찌 방뒤짐을 하겠습니까?”
“도둑과 한패가 아닌 이상 당장 수상한 자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난처해진 남자 노비는 행랑 식구 몇을 조용히 깨워 군데군데 세워놓고 행수를 깨웠다. 젊은 행수기생 금선은 고민하다가 별채로 사람을 보냈고, 잠시 후 호산월이 순라군과 마주했다.
“도둑을 잡자는 건가? 도둑을 숨기자는 건가?”
“인상착의를 말해보시어요. 아무나 잡아들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젊은 여자인데, 머리를 하나로 묶고 하얀 옷을 입었는데, 맨발이네.”
모두들 의아한 얼굴로 순라군의 말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추운 겨울에 맨발로 도둑질을 하는 젊은 여자라니. 그건 의심하기에 충분히 수상한 대답이었다.
“도망친 노비인가?”
“매 맞은 아낙 아니야?”
시끌시끌해지려 하자, 호산월은 금선에게 하인들을 치우고 들어가라 말한 후 순라군과 둘만 남았다. 금선은 별다른 말없이 하인들과 자리를 떴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도둑이 아니지요?”
“으흠... 사실 의금부에서 파옥하고 도망친 죄인을 찾고 있네. 이 일이 알려지면 의금부는 사달이 나니 은밀하게 범인을 잡아야 하네.”
호산월은 순라군을 데리고 의금부 죄인이 넘었다는 담 아래로 갔다. 담은 올려다봐야 할 만큼 높아, 남자도 넘기 어려워 보였다.
“이 담이 맞습니까? 의금부에 잡혀간 죄인이라면 모진 고문에 걷기도 어려울 텐데, 이 담을 여인이 혼자 넘은 게 맞습니까?”
“사실, 담 넘는 것은 보지 못했고 담 넘은 후, 손이 걸렸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네. 하지만 시퍼렇게 죽어가는 팔 색깔이 분명 그 범인이었네.”
호산월이 담 주위의 창고를 확인했다. 창고마다 무거운 자물쇠로 단단히 잠궈 들고 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가까운 곳에 기방 부엌이 있다고 호산월이 순라군을 이끌었다. 부엌 아궁이 불씨도 꺼지고, 음식을 만들고 차렸던 흔적도 깨끗하게 치워져 횅한 느낌마저 주었다.
“또 본 것은 없습니까?”
“처음엔 의금부 앞 커다란 오동나무 뒤에 숨은 것을 보았네. 웅크리고 앉아 숨어있었지만 하나로 묶은 긴 머리가 땅에 끌리는 것을 보았지. 인정이 지난 시간에 돌아다니는 여인이라니 수상하지 않은가?”
호산월은 부엌을 나와 별채가 있는 마당으로 순라군을 데려갔다. 구석에 사당이 있고, 얼어붙은 연못이 있는 작은 별채 마루에 등불 하나가 걸려있었다. 마루와 마당 일부를 비추는 그 불빛이 호산월과 어린 순라군의 뒤로 그림자를 길게 만들었다.
“발도 보았습니까?”
“하얀 치마가 피투성이인데, 마루 아래 숨은 건지 발은 못 보고 치마가 기어가는 것은 보았지. 꼭 바닥을 쓸며 도망치는 것 같았네.”
호산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루의 등불을 내려 자루에 걸었다. 불빛이 밝아지자, 다급하던 순라군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호산월은 제등을 들고 사당의 문을 열었다. 사당 안에는 불상이 하나 있고, 녹아내린 초가 여러 개 있었다. 호산월이 제등으로 사당 안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인기척은 기방 안이 아니라 기방 밖에서 들려왔다. 골목을 뛰어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송화루의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호산월은 빙긋이 웃었고, 젊은 순라군은 어리둥절해서 돌아보았다.
송화루의 가노는 대문을 다시 열며 하품했다.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건장한 체격의 순라군 한 명이 숨을 몰아쉬며 송화루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곳으로 수상한 여인이 들어왔다. 어서 사람들을 깨워 범인을 잡아야 한다.”
나이 든 순라군이 가노를 밀치고 마당 깊이 들어가는데, 마침 제등을 든 호산월과 젊은 순라군이 그 앞으로 다가왔다.
“자네는 여기서 뭐 하는가?”
“의금부에서 파옥한 범인을 쫓고 있습니다.”
호산월은 하인에게 눈짓하여 대문을 닫고 자리를 피하도록 했다. 두 순라군이 서로가 본 것을 설명하는데, 호산월은 깊어 가는 밤의 달을 보았다. 삭월은 가장자리에 얇은 선으로 반짝이고, 밤이 가장 긴 날을 향해 조금씩 어둠이 짙어져 가는 새벽이었다.
“맞네. 나도 보았지. 시퍼렇게 부어오른 다리 말이야. 숨어있다고 모를까? 맨발로 도망친 것을 보니 죄인이 분명하네.”
“맞습니다. 고문이 얼마나 심했는지 손가락은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손톱이 빠진 건지, 돌로 짓이겨진 건지. 에휴... 하루가 멀다 하고 국문이니.”
젊은 순라군의 한숨에 나이 든 순라군이 눈을 부라리고 호산월의 눈치를 살폈다. 호산월은 못 들은 듯 제등을 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하여튼 꼭 잡아야 하네. 파옥하여 도망친 게 알려지면 의금부뿐만 아니라 좌순청도 절단날 일이야. 손님방도 보아야 하니 안내하게.”
수염이 덥수룩한 순라군이 호산월에게 다그쳤다. 호산월은 두 순라군 앞에서 제등으로 불을 밝히며 걸었다. 큰 연회가 열리는 소사랑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데 지붕 위로 쥐를 잡는 부엉이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호산월은 제등을 내려 마루 아래를 비췄다. 흐린 불빛이나마 마루 밑을 비추자, 어둠이 물러나고 뒤엉킨 잡초와 거미줄에 걸린 노래기가 보였다.
“무엇을 찾는 거요?”
“나리들께서 보았다는 그 파옥한 범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도 되겠습니까?”
두 순라군은 제등 불빛에 반사된 호산월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는 호기심인지 즐거움인지 모를 미소가 어려있었다. 호산월은 당혜를 벗어 댓돌에 놓고 두 순라군을 소사랑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좌순청에 계시니, 참수형을 당한 죄인들도 보았겠지요?”
“보다마다. 망나니가 칼을 휘둘러 단번에 목이 잘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 목에서 피를 뿜다가 겨우 떨어져 나간 머리가 굴러가 혼절하는 구경꾼도 여럿 있었지.”
수염이 덥수룩한 순라군의 말에 어린 순라군이 몸을 부르르 떨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을 떨쳐냈다. 그러면서도 두 순라군은 제등의 불빛을 따라 소사랑 복도를 걸었다.
“그럼, 능지처사로 죽는 죄인들도 보았습니까?”
“저는 말로만 들었습니다. 형님은 보셨습니까?”
“여럿 보았지. 계축년에 팔다리가 뽑혀나가 죽은 자들이 종루 앞 대로에 쌓여있었다네.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권신도 고변 하나에 온몸이 여섯 조각으로 찢겨 죽었지.”
나이 든 순라군의 말에 어린 순라군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움츠렸다. 호산월은 연회장의 문을 열어 두 남자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런 말도 있었지. 왕의 눈 밖에 나면 사약을 받고, 김상궁의 눈 밖에 나면 젓갈이 된다고 말이야.”
“젓갈이라니요?”
“머리 따로 팔다리 따로 떼서 소금 항아리에 담아 젓갈을 만든다더군.”
“으으으으….”
두 순라군은 4칸이 넘는 연회장에 들어서자, 그 넓은 크기와 짙은 어둠에 압도당해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호산월은 걸음을 멈추더니 제등의 불을 껐다. 당황한 두 순라군이 어리둥절해서 바라보는데, 호산월이 어둠 속에서 두 순라군을 바라보았다.
“동지가 가까워지면 두 분 같이 이곳을 찾아드는 순라군들이 있습니다. 도성의 밤길을 돌고 돌다 보면, 만나서는 안 되는 것을 만날 때가 있거든요.”
그러더니 호산월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 조용히 하라고 눈짓을 했다. 두 순라군은 숨을 멈추고 호산월이 바라보는 곳을 지켜보았다. 호산월은 고개를 들어 대들보를 바라보았다. 대들보에서 뭔가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쥐인가 했는데, 바닥으로 툭 떨어진 것은 질린 팔이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팔이 바닥에 떨어져 저절로 움직이며 뭔가를 찾았다. 그러자 이번엔 병풍 뒤에서 데구루루 몸통이 굴러 나왔다. 목, 팔, 다리가 다 떨어져 나무통 같은 몸통은 피가 잔뜩 묻은 치마저고리를 끌며 나오다 멈췄고, 대들보에서 떨어진 팔이 스멀스멀 기어들어가 몸통에 붙었다.
어린 순라군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소리를 숨겼다. 나이 든 순라군은 입을 떡 벌리고 눈만 끔벅거렸다. 대들보에서 다른 쪽 팔과 다리가 떨어지더니 스스로 걸어가 몸통에 달라붙었다.
다리가 붙자, 치마저고리를 입은 요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머리를 찾지 못해 걷지 못하고 두 팔로 허공을 더듬었다. 어린 순라군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하다가 문턱에 넘어져 쿵 소리를 냈다.
머리 없는 귀신은 그 울림에 반응해서 어린 순라군을 향해 걸었다. 나이 든 순라군이 육모방망이를 높이 들어 귀신인지 요괴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치려했다.
하지만 호산월의 손이 좀 더 빨랐다. 호산월은 허공을 더듬거리는 머리 없는 이의 손을 잡았다. 다정한 손길로 퍼렇게 부푼 손을 잡아서 연회장 밖으로 안내했다. 언 발에 자신의 당혜를 신기고, 달빛 없는 마당을 지나고, 창고를 지나자, 담 아래의 풀숲이 나왔다.
호산월이 풀숲을 향해 휘파람을 불자, 석상 뒤에서 검고 긴 머리카락을 묶은 잘린 머리가 데구루루 굴러와 목 없는 귀신의 손에 들어갔다. 머리까지 몸통에 붙자 귀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호산월은 귀신의 등을 토닥여준 후에 뒷문을 열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둠 속으로 밤의 이매망량이 사라지는 것을 본 후, 호산월은 소사랑 건물 앞에 서있는 두 순라군에게 돌아갔다.
“순라군은 밤을 걷는 분들이지요. 삭월에 어둠 속을 걷다 보면, 남들은 못 보는 것도 본답니다. 도둑이면 다행이고, 간혹 산군을 만나거나 그슨대를 만나면 죽은 목숨이지만, 밤귀신을 만나면 모른 척 눈 감아주세요. 안 그러면 두 분이 잡힐 것입니다.”
두 순라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송화루 대문을 나섰다. 번을 서던 가노가 계단 아래까지 제등을 들고 바래다주었다. 가노는 어르신의 선물이라며 순라군에게 불을 붙인 조족등을 내주었다. 두 순라군은 조족등의 불빛에 의지해서 밤의 도성을 걸었다. 파루 소리가 들리려면 아직 멀었고, 늘 그러하듯 어둠은 길고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