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악(油幄)을 친 마당에 앉은 손님들 사이로 병조판서댁의 노비들이 바삐 움직였다. 동짓달 찬 공기가 쌀쌀했지만, 손님들의 자리에는 화로가 놓여 온기가 감돌았다. 또 초대받은 손님은 두툼한 솜 누비옷에 갖옷을 입었고 어깨까지 덮는 휘항을 써서, 누구도 추위를 핑계로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사이로 무명옷에 젖은 짚신을 신은 노비들이 기름진 음식과 따뜻한 청주를 들고 다니며, 손님상에 올렸다.
“좌의정으로 영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익사 공신이시고 부원군이신데, 좌의정이 아니라 영의정이 되셔야지요.”
손님들의 축하 속에서 집주인은 기쁨을 감추지 않고, 옆에 앉은 정위군의 술잔을 채웠다. 왕의 서아우인 정위군에게 병조판서는 불편한 마음을 감춘 채 술을 권했다. 정위군이 술 향기를 맡으며 저 혼자 피식거릴 때마다, 보는 사람들은 아들을 잃고 여즉 미쳐있는 게 아니냐 수군댔다.
“시작하거라!”
병조판서의 말에 붉은색 치맛자락이 살랑거리며 사랑채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악공들이 피리와 대금을 불었고, 트레머리를 올린 다섯 명의 기생들은 피리 소리에 맞춰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하얀 눈발이 날리자, 모란 같은 기생들의 춤은 더욱 아름다웠다. 빙글빙글 돌며 장구를 치는데 붉은 비단 치마는 꽃보다 활짝 피어났다. 하지만 잔치에 흥이 오를수록 유악 밖의 노비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손이 빨갛게 얼어가야 했다.
그 시간, 흑빛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병조판서댁 안채로 들어섰다. 쓰개치마를 쓴 여인은 가체도 없이 옥비녀만 꽂고, 무늬 없는 검은색 당혜를 신었다. 원래는 전모를 써야 하는 신분이지만, 안주인이 보낸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렸다. 하인들은 모두 사랑채에 나갔고, 안채를 지키는 것은 외동딸의 유모 한 명이었다. 유모는 연신 주위를 살피며 쓰개치마를 쓴 여인에게 병조판서 외동딸의 방문을 열어주었다.
눈이 내리기는 하나, 아직 해가 있는 낮인데도 방 안은 캄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방에 난 창마다 두꺼운 가죽을 걸어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두고 촛불도 켜지 않아, 방은 깊은 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두웠다. 어둠 가운데에 이 집의 안주인이 앉아있었고, 그보다 더 안쪽에 작은 소녀가 누워있었다.
“호산월이라고 합니다. 저를 찾으셨다지요?”
정경부인이 된 안주인은 앞에 앉은 기생을 유심히 살폈다. 집안의 치부를 드러내도 될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건너 건너 들은 말로는 젊어서 도성 남자들이 줄을 섰고, 늙어서 도성 여자들이 줄을 선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기생을 은퇴한 퇴기라고 했는데, 겉보기에는 아직 스물대여섯쯤으로 보였다. 그러다 딸을 한 번 보고는 하기 어려운 말을 시작했다.
“보다시피 내 딸이 많이 아프네. 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하고, 빛이 없으면 저렇게 잠들어 일어나질 않아. 먹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여위어가고 있어. 방법이 있겠나?”
호산월은 죽은 듯 누워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품에서 부시 주머니를 꺼내 부싯돌로 촛불을 켰다. 안주인이 놀라 손을 들었지만 호산월은 촛불을 들고 누워있는 소녀에게로 갔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그 빛을 느끼는지 소녀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아악! 악! 어머니 ….. 으아아악!”
칼날 같은 소녀의 비명이 안채를 가득 채웠지만, 사랑채까지 들어가진 않았다. 병조판서의 아흔아홉 칸 고택 안은 피리 소리와 장구 소리, 술을 마시며 내지르는 손님들 웃음소리로 가득해 다른 소리는 들어갈 틈이 없었다.
호산월은 촛불을 불어서 끄고 소녀를 다시 보았다. 비명은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녀는 이불에 누워 숨만 겨우 내쉬었다. 딸의 발작을 또 지켜본 정경부인은 겨우 버티고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니 참으로 기쁘셨을 겁니다.”
“그랬지. 아들만 내리 셋을 낳고,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 어찌나 예쁘던지 애지중지 귀하게 키웠네. 좋은 옷만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갖게 했어.”
“첫 목욕을 시키고 입힌 배냇저고리는 누가 해주었습니까?”
“친정어머니께서 해주셨지. 첫 의례복이라며 좋은 것으로 해주셨네. 다른 집에서는 계집애라고 반소매를 하지만, 어머님은 귀한 딸이니 소매가 길고 통이 넓은 배내옷을 입히라셨어.”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라셨지요?”
정경부인은 친정어머니께 들은 그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병들어 누운 딸이 가슴에 대못으로 박혀 아렸다.
“그토록 귀한 의미가 담겼으니 버리지 않고, 잘 두었겠지요?”
“시집갈 때 주려고 잘 두었지. 유모!”
안채 주인이 부르자, 문이 열리고 유모가 들어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상이의 배냇저고리를 가지고 오거라.”
호산월은 조용히 눈을 돌려 유모를 바라보았다. 상전의 명령에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표정을 확인한 후, 잠들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유모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호산월이 입을 열었다.
“아기씨의 유모가 되었다면, 그해에 아이를 낳아 젖이 돌았다는 건데... 딸을 낳았소? 아들을 낳았소?”
유모는 바들바들 떨며 대답을 못하자, 정경부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그때, 유모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딸을 낳았습니다.”
“아기씨에게 젖을 먹이느라 유모의 딸은 미음이나 겨우 먹었겠군.”
유모의 고개가 점점 떨어졌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누워있는 상전의 딸을 보았다. 곧 죽을 것같이 비쩍 말라서 산송장과 다름없었다.
“그 딸은 잘 있소?“
“유모의 딸은 좌찬성의 집으로 보냈다네. 그 집 안주인은 도리가 분명하고 선한 양반이야. 절대 노비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야.”
안주인 말에 유모는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좌찬성이 정위군과 동문수학인 걸 모르십니까?“
그 말에 병조판서 부인의 눈이 커졌다. 유모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자기 젖을 먹여 키운 소녀를 바라보았다.
“부원군께서 정위군의 아들을 역모로 몰아 죽였는데, 그 일을 잊으실 분 같습니까? 정위군이 버들이를 다시 사서, 먹을 것도 안 주고 매질만 하다가 굶겨 죽였습니다. 그래놓고 날 찾아와 시신이라도 장사 지내고 싶으면 말을 들으라 했습니다.”
“이년!!!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유모는 울먹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기씨의 배내옷을 내주고, 버들이의 시신을 돌려받았습니다. 뼈만 남고 온몸이 멍투성이였지요. 노비 딸로 태어나는 바람에 에미의 젓도 못 먹고, 남의 집에 팔려가 주인 대신 매를 맞고, 굶어 죽었습니다. 태어나 먹지를 못한 년이, 죽는 것도 먹지를 못해 죽었습니다.”
유모는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안채의 여주인은 어금니를 꽉 문 채 호산월을 보았다.
“방법이 있겠는가?“
호산월은 정경부인에게 대답하는 대신 유모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
“버들이의 시신은 잘 보냈소?”
“스님을 불러 불경을 읊고, 화장하였습니다. 내세에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빌어주고, 가는 길에 배곯지 말라고 보리쌀을 넣어 주었지요. 쌀을 넣어줄걸. 스님 부르는 값이 비싸, 겨우 보리쌀을 넣어 주었습니다.”
“잘했소. 잘했어. 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보름달이 뜨기 전에 이 주술을 끊어야 합니다.“
사랑채 마당에서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장구춤이 끝나고 기생들이 물러나자, 너나 할 것 없이 술을 마시고 기름진 안주를 먹었다. 비어 가는 접시와 술병이 쌓일수록 노비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손님들뿐만 아니라 곧 정승 자리에 오르는 부원군도 불콰하게 취해 송화루의 행수기생을 불렀다.
“흥이 깨지기 전에 빨리 다음 공연을 시작하라.”
“예. 다음은 처용무입니다. 곧 영전하시는 부원군 대감의 앞날에 잡귀가 들지 말라 염원하는 춤이옵니다.”
해가 떨어지며 마당 안은 붉은빛이 가득 들어찼다. 다음 공연이 왜 이리 늦냐며 웅성거릴 때, 마당으로 검은색의 치마를 입은 여인이 들어섰다. 여인은 방상시 가면을 쓰고 한 손에는 긴 칼을 든 채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주름진 얼굴에 눈구멍이 네 개 뚫리고, 커다란 귀를 가진 탈의 입은 웃고 있어 더 기괴했다.
방상시 탈을 쓴 호산월이 긴 칼을 들어 허공에 물결 같은 선을 그었다. 연회의 주인인 병조판서는 처용무가 아니라 인상을 쓰는데, 옆에 앉은 정위군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칼춤을 구경했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산월이 휘두르는 칼의 기운에 눌려 움찔했다가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숨을 내쉬었다.
“왕기가 서렸구나. 그러니 역모이지.”
호산월의 호통에 정위군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왕재로다. 왕재야. 그러니 역모이지.”
“네 이년!”
병조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질을 했지만, 술에 취해 휘청하고 쓰러져 주저앉았다. 옆의 정위군이 일어났다. 병조판서를 부축할 줄 알았는데, 정위군은 일어나 호산월 쪽으로 갔다.
“내 아들이 목을 매 숨이 끊어졌으니, 네 자식도 숨이 막혀 죽어야지.”
그렇게 말을 뱉은 호산월이 검은색의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긴 칼로 바닥을 긁어 글자인지 그림인지 모를 문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악공 하나가 생황을 불었다. 생황에서 나오는 소리는 칼의 울음소리 같았다.
칼춤은 점점 더 격렬해지는데, 정위군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정위군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바닥에 그려진 문양 위에 서서 호산월을 응시했다. 호산월 역시 방상시 가면을 쓴 채 그를 응시했다.
“몇 명이나 죽였소? 기억은 하시오? 때려죽이고, 굶겨 죽이고, 빼앗아 죽이고, 죄를 씌워 죽이고.“
“나는 왕의 아들이야!!“
“왕족의 자식도 자식이요. 노비의 자식도 자식이지. 아비의 죄가 자식에게 갔으면 죄를 지은 아비가 그 대가를 받아야지 … 그것이 바로 업보이지.“
정위군이 호산월의 목을 두 손으로 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부원군도 손님들도 비명을 삼키고 바라만 보았다. 생황의 소리도 멈췄다. 해는 땅끝으로 숨었고, 사랑채 마당으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걸어둔 등불이 내는 불빛에 그림자가 짙어졌다. 그러자, 호산월이 칼을 내리꽂았다. 칼은 호산월의 옆으로 난 정위군의 그림자 목에 꽂혔다.
그러자 정위군의 입에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호산월의 목을 놓고 숨을 가쁘게 쉬며 물러났다. 호산월은 칼로 정위군의 향낭을 끊고 어둠 속으로 숨었다. 정위군은 호산월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나오는 소리는 오직 바람 소리뿐이었다.
안채로 돌아온 호산월은 방상시 가면을 벗고 캄캄한 방을 바라보았다. 어깨가 오싹해져 돌아보는데, 정경부인이 행랑채 쪽문에서 나왔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호산월은 행랑채로 다급히 달려갔다.
행랑채 마당에는 남자 하인 둘이 몽둥이를 들고 서있었다. 그들 앞에는 거적으로 둘둘 만 시신 하나가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버선 신은 발이 거적 밖으로 나와 있었다. 하얀색이어야 하는 버선은 피에 젖어 붉은빛이었다. 흘러내린 피 위로 하얀 눈이 떨어져 녹아서 사라졌다.
“어찌 죽이셨습니까? 딸을 살려드렸는데, 왜요?“
호산월이 정경부인에게 물었다. 정경부인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어쩌면 그게 본모습인 듯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께선 … 주인을 무는 개는 죽이라 하셨다.“
호산월은 정위군에게서 떼어온 향낭을 안주인의 발아래다 툭 떨궜다. 소녀의 어미가 향낭을 열자, 피 묻은 무명실이 들어있었다. 배냇저고리의 옷고름이었다.
“불에 태우십시오.“
호산월은 전모도 쓰개치마도 없이 방상시 가면만 든 채 뒷문으로 병조판서댁을 나왔다. 왼편으로는 화려하게 번쩍이는 창덕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불에 타서 잿더미인 경복궁이 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참 시리게도 떴고, 멀리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