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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巫堂

by 김사과


어린 하녀를 따라 걷던 호산월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 앞으로 음식 접시와 술병을 든 주방 하인들이 줄지어 지나갔고, 접시에는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했다. 운종가 끝 송화루는 그런 곳이었다. 이 방 저 방 할 거 없이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가 흥겨운 기생집. 설을 앞두고 곡식 가격이 올라, 굶는 자들의 앓는 소리가 개천을 따라 흘러도, 전국 팔도의 산해진미가 모여드는 그런 곳이 송화루였다.


송화루 행수의 방문을 열고 호산월이 들어서자, 행수금산이 다가왔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로 늘 조용하던 행수 기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삼화라는 무당입니다. 주술을 써서 남을 저주하는 것은 저치를 따를 수가 없다는데, 여기 와서 무슨 짓을 저지를까 걱정입니다.”


삼화라는 무당은 서른이 조금 넘을 듯 보이는 작은 여인이었다. 넓은 상을 혼자 차지하고 앉은 무당 삼화는 걸신이라도 들린 것 마냥 음식을 먹어대고 있었다. 흰쌀밥을 벌써 3그릇 째 먹고 있는 삼화 앞에는 궁궐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이 줄을 맞춰 차려져 있었다.


젊은 무녀는 소고기 골을 우려낸 탕에 밥을 말아먹으며 한 손으로는 갈비찜을 뜯다가 젓가락을 들어 삼색나물을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문어숙회를 한꺼번에 세 점씩 집어 초장을 찍고, 아직 갈비찜이 가득한 입에 넣어 양 볼이 터질 듯한 얼굴로 다른 음식 접시를 훑었다.


무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화려한 색으로 멋을 낸 신선로였다. 소고기 육전과 민어 전, 소의 간으로 부친 전이 차곡차곡 쌓이고, 송이버섯과 해삼이 켜켜이 누운 자글자글 끓는 육수 속 고기완자를 향해 삼화가 팔을 뻗다 멈췄다.


“먹는 거 처음 보시나? 그렇게 서있지 말고 와서 앉아.”




삼화의 가시 돋친 말에 호산월이 가서 앉았다. 요리상에 가득한 접시는 대부분이 비고, 여기저기 음식 찌꺼기가 튀어 있었다. 조개껍질이 쌓이고, 갈비찜의 뼈가 쌓이고, 찌개 국물이 뚝뚝 떨어진 모습이 얼마나 허겁지겁 먹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호산월이 맞은편에 앉아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천일 된 술입니다. 한잔 드시고 계속 잡수세요.”

“이년은 대체 뭘까? 기생이야, 무당이야? 신선 같기도 하고, 선녀 같기도 하고?“


피식거리던 삼화가 따라놓은 술을 단숨에 털어 넣고, 다시 숟가락으로 잉어찜의 연한 살을 퍼서 쌀밥에 올려 먹었다. 크지도 않고 마른 여인인데, 먹는 것은 북방의 병사처럼 먹어댔다. 잡채는 아예 그릇을 들고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뱃속에 아귀가 들었다는 어린 하녀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 보였다.


“명나라 비단을 세 필이나 가져왔는데, 이것뿐이야? 아직 배가 차지 않았으니, 밥을 더 가져와. 얼른!”


무당 삼화의 말에 행수기생이 방을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삼화와 호산월 둘 뿐이었다. 호산월이 젓가락을 들어 조기구이를 손질하려는데, 삼화의 손이 먼저 조기에 닿았다. 젊은 무당은 조기를 손으로 들어 반을 자르더니 입에 넣어 뼈까지 씹어먹었다. 그 모습이 괴이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해서 누군가 보면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호산월은 대신 꿀에 절인 사과를 집어 삼화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올렸다.


“오늘 아주 높으신 분의 댁에 가서 굿을 했지. 정경부인 마님께서 대감의 애첩에게 살을 날려달라더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만 해주면, 기와집 한 채를 주겠다는데, 어떤가? 자네라면 할 텐가?”


“사람 죽이는 굿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삼화가 비아냥대는 표정으로 조기의 머리를 씹어가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가르쳐주지. 그 상대의 얼굴을 그리고, 바늘로 찔러서 마루 밑에 묻은 다음, 고양이를 잡아 그 눈을 바늘로 찔러서 부엌에 묻고, 쥐를 잡아 불에 그슬려 측간에 묻고, 까마귀를 삶아 그 뼈를 그 집 장독대 아래 묻고, 뱀을 잡아 껍질을 벗겨 그 집 우물에 묻는 거야. 히힛.“


입술 주변이 고기 기름으로 번질번질해서는 삼화가 저주의 방법을 말했다. 듣고 있던 호산월은 술잔에 또 술을 채워 삼화 앞에 놓았다. 무당 삼화는 거절하지 않고 그 술을 마신 후, 조기의 머리를 입안에 넣어 바작바작 씹어댔다. 망설임 없는 삼화의 이가 조기 머리뼈를 잘게 부쉈다. 그녀의 입에서 기름진 생선 비린내가 훅하고 풍겨왔다.


“저주 굿은 잘 되었습니까?”

“흐...흐흐흐....크크크크.”


삼화는 뱃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가며 웃었다. 젊은 무당의 얼굴에 굵은 주름이 생기며 일그러지더니 또 웃다가 갑자기 웃음이 멈추고 정색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걸 보았나? 나는 보았어. 대기근 때 며칠을 굶은 사람들이 시신을 찾아서, 그 허벅지를 잘라 삶아 먹는 걸 보았지. 어린아이의 고기가 연하고 잡내가 안 난다고 좋아들 하는 것도 보았어. 가마솥에서 삶아진 고깃덩이 하나를 받아 들었는데, 그건 며칠 전까지 함께 놀던 친구의 다리였다네.“




삼화는 술병을 들어 입에 대고 쏟아 넣었다. 술병에 담긴 술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몸속으로 쏟아 넣은 다음 창밖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밥 가져와. 밥! 밥! 밥! 배고프니까 빨리 가져와.”


호산월이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는데, 삼화가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리다가 요리상의 끝을 손으로 꽉 잡으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살려주시오. 나는 그저 먹고살기 위해 한 일이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이 전쟁을 지나왔소. 배운 거라고는 점치고 굿하는 것뿐이었소.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다시 또 사람의 시체를 삶아 먹는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한 일이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저주하고 죽였길래 이리도 탈이 난 것입니까?“


호산월의 질문에 삼화가 몸을 웅크린 채,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고함쳤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기근으로 죽은 이의 뼈가 산을 이루고, 왜놈한테 죽은 이의 피가 강을 만들었어. 임금이 잘라서 저잣거리에 효수한 머리 위로 수천 마리의 까마귀 떼들이 달라붙었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그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니 하늘이 노해 역병이 창궐하지.”


“손님의 몸주신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꿈속에서 보셨지요? 손님이 데리고 다니기엔 이제 너무 커져서 그 손을 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 몸을 먹고, 그 영을 먹고, 그 피를 마셨어요. 그 친구가 이미 내 몸 안에서 내가 되었는데 어찌 헤어지겠습니까? 내가 그 몸을 먹었으니, 내 몸을 그 친구에게 주어야 합니다.”




삼화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방 밖으로 가야금 소리와 장구의 장단에 맞춰 추임새를 넣는 흥겨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생들의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에 무당 삼화는 술병을 벽으로 던졌다. 창백한 흰빛의 도자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산산조각 났다. 파열음과 함께 술병 조각이 쏟아지고, 독한 술냄새가 두 여자 사이를 메웠다.

삼화는 다시 요리상으로 가서 잔반을 손으로 움켜쥐고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더 들어갈 데가 없을 것 같은 목구멍으로 꽃을 올린 떡과 조청을 섞은 들깨 강정을 가득 집어넣어 씹었다.


“먹어라. 먹어. 실컷 먹고 뒈져라.”


그렇게 저주를 퍼붓는 삼화의 곁으로 호산월이 다가가 앉았다. 요리상에 손을 뻗어 꿀에 절인 사과 조각을 집는데 그 손을 호산월이 잡았다. 끈적거리고 축축한 손을 꼭 잡고 손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러자 방안을 밝히던 촛불이 꺼지고, 어두워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복도에 놓아둔 제등의 불도 다 꺼지고, 마당에 걸어둔 화려한 등불도 일순간에 꺼지자, 여기저기서 노랫소리가 멈추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창밖으로 여인의 울음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삼화의 텅 빈 눈 속에는 오로지 원망과 원한만이 들어차 있었다. 호산월은 삼화의 손등을 천천히 두드리며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켰다. 그 호흡에 맞춰 삼화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무엇을 하며 놀았소? 산과 들로 쑥과 냉이를 캐러 다니셨소?”


무당 삼화가 저 아닌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쑥으로 떡을 해주시면 친구와 함께 나누어 먹었지.”

“꽃을 꺾고 호두와 밤을 주우러 다니셨소?”

“호두를 까느라 친구의 손은 검게 변했지.”


“이맘때면 버선을 만들고 목도리를 만들었겠소?”

“그 비싼 색실을 숨겼다가 목도리에 꽃을 수놓아 나에게 주었지. 그 목도리를 하면 정월의 추운 바람도 거뜬했어.”


삼화의 손등을 두드리는 호산월의 손이 멈추더니, 그 거친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내 아비는 왜놈의 먹이가 되고, 내 어미는 호랑이의 먹이가 되었지요. 이 몸은 산신의 먹이가 되어 꼼짝없이 종노릇을 한다오.”


삼화는 호산월의 손을 꼭 잡고, 꾹꾹 눌러가며 울었다. 먹은 것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그저 울음만 토해냈다. 호산월은 그녀가 잘 토해낼 수 있도록 등을 쓸어주었다.


“아픈 것만 기억하다 보면 행복했던 걸 잊게 됩니다. 무서웠던 것을 잊으면 내가 웃었던 것이 떠오를 것이고, 원망스러웠던 것을 잊으면 고마웠던 게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게 기억하면, 살아있는 것입니다.”




호산월은 인왕산의 토굴 같던 그 초가집을 떠올렸다. 문밖에서 어슬렁거리던 호랑이와 호랑이에게 잡혀 먹이를 찾으러 다니던 어머니의 영혼을 떠올렸다. 피에 젖어 붉던 치마저고리와 슬픈 눈이 떠올랐다. 목숨보다 사랑했던 딸을 호랑이에게 먹이로 바치기 위해, 혼자 남은 딸의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슬픈 목소리가 떠올랐다.


“연이야, 산에 가자. 밤이랑 도토리 주우러 가자.”


호산월의 말에 삼화의 울음소리가 격해졌다. 꾹꾹 눌렀던 울음이 결국 터져버리고, 제멋대로 쏟아져 나왔다. 25년 전 먹은 친구의 살덩어리가 토해낸 울음에 섞여 흘러내렸다. 무당 삼화는 무당이 아닌 연이의 친구 삼화가 되어 죽은 친구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늘에는 별꽃이 피고, 땅에는 밥꽃이 피면, 너랑 나 같이 꽃구경이나 가자. 겨울 지나 따뜻한 바람 불면 우리 같이 쑥 캐다가 쑥개떡 해 먹자.”


무녀의 울음소리와 함께 겨울밤이 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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