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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풍정 端午風爭 (2)

by 김사과


“전란에 의병 활동을 한 것은 북인이네.”

“우리가 선왕을 모시고, 명나라의 참전을 이끌었기에 전쟁이 끝난 거야.”


젊은 두 선비는 서로 앞서가려 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수표교로 향하는 사람들이 북적여서 원하는 만큼 빨리 걸을 수 없었다.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고 했네. 명군의 약탈이 오죽 극심했으면?”


자색 도포를 입은 선비는 고개를 쳐들고 쪽빛 도포의 선비에게 쏘아붙였다. 쪽빛 도포의 선비가 한껏 내려다보며 가르치듯 말했다.


“명나라에서 보내준 곡식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진즉에 절단 났어. “


그림을 손에 들고 걸으며 호산월은 두 선비의 등을 유심히 보았다. 두 선비는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으르렁댔다. 강씨가 호산월에게 다가와서 소곤거렸다.


“저 양반들 저러는 걸 계속 두고 봐야 하는 건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으니 내버려 두세요.”




호산월의 말대로 두 남자는 주위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말싸움을 이어갔다.


“기축옥사에서 서인 개백정들이 우리 동인을 몰살했던 것은 아시려나? 송강을 살려두자는 남인이 사람 새끼인가?“

“북인을 두고 왕의 눈을 가리고 있는 간신이라 하는 말은 들었네.”


“나라가 왜놈들 발에 짓밟혀 풍전등화일 때, 맨 앞에 나서 싸운 것은 북인이야!”

“우리 남인이 국왕을 지키지 않았다면, 왜놈들 아가리에 나라가 넘어갔어!”


두 양반 나리의 말싸움이 격해지는 동안 수표교가 가까워졌다. 넓지 않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수표교가 보였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투석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가 언덕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쌓여있고, 언덕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했다. 패랭이를 쓴 상인, 탕건을 쓴 노인네, 말총갓을 쓴 양반들까지 서로 섞여서 투석전을 준비했다.


그 맨 앞에 선 자들은 더벅머리를 땋아 내린 소년들과 망건 없이 상투를 튼 청년들이었다. 건너편의 청년 하나가 검은 깃발을 들었고, 이쪽 청년 하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수염이 긴 장정들이 북을 메고 천천히 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강씨의 아들 창희가 북소리에 이끌려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강씨는 아들을 찾다가 호산월의 말에 돌아보았다.


“아드님은 괜찮을 것입니다.”

“말이야 쉽지. 석전에 참전했다가 반병신이 되고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네. 분명 소매에다 투석구를 숨겨놓은 놈들도 있을 텐데, 잘못 맞았다가는 대가리 깨지고 목숨줄 내놓아야 해.”


강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으로 인파에 섞여 들어간 아들을 찾았다.


“뿌린 씨가 가뭄에 다 타 버릴까? 비는 와줄까? 병충해가 오면 어쩌나? 올해도 흉년이면 못 먹어서 죽는 이가 생길 테고, 역병이 또 한 차례 찾아올 텐데. … 부글부글 끓는 백성들을 달래려면, 저들끼리 싸우는 것이 상책이지요. 나랏님을 향한 돌멩이가 이웃으로 향할 테니까요.“

강씨가 뭐라 대꾸하려는데,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시작됐다. 개천을 사이에 두고 돌멩이가 공중을 날았다. 전쟁터에서 화살이 쏟아지는 듯하고, 산 하나가 무너져 돌과 흙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북소리는 더욱 빨라지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고함도 더욱 거세졌다. 돌에 맞은 청년의 이마가 터져 피를 흘렸다. 붉은 피가 이마에서 눈두덩이를 지나 뺨으로 흐르는데 눈빛은 더욱 험악해졌다.


호산월은 앞에 서있는 두 남자에게 다가갔다. 돌이 날아와 사람을 맞출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빗맞을 때는 아쉬움에 탄식했다.




“두 분께서도 나가 보세요. 응당 조선의 사내라면 투석전에서 돌 한 번쯤은 던져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 싸우는 것으로 어디 승부가 나겠어요?”


호산월의 말에 두 남자는 서로를 노려보다가 투석전을 바라보았다. 돌을 던지는 무리 중에는 댕기를 내린 소녀도 있었고, 갓을 쓴 양반도 있었다. 날아오는 돌을 이리저리 피하며 돌을 던지는 것이 보는 이의 피를 들끓게 했다.


“용맹하신 분께서 이 그림을 가져가는 걸로 하죠.“


높을 고자에 언덕 원자를 호로 쓰는 키 작은 북인 선비가 돌을 주워 들고 앞으로 나갔다. 돌이 손에 들어오자,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수염이 잔뜩 난 얼굴 근육을 일그러트리며 소리를 질렀다.


“야아!!”


그가 던진 돌이 개천을 넘어 저쪽 편 사내의 어깨를 맞췄다. 그러자 더 신이 나서 짱돌과 기왓조각을 양손에 들고, 푸를 청자에 하늘 천자를 호로 쓰는 키 큰 남인 선비를 돌아보았다.


“봤냐? 우린 도망치고, 숨을 줄밖에 모르는 남생이 놈들과 달라.“


북인 선비는 기세등등해서 다른 손에 든 기왓조각을 옮겨 들고, 발디딤까지 해서 팔에 호가 그려지도록 멀리 던졌다. 그가 날린 기왓조각을 맞은 수염 덥수룩한 장정이 이마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우아아아!!! 와아아아아!!!“


연달아 맞추고 나니, 더욱 신난 북인 선비가 소년들이 쥔 돌을 뺏었다. 남인 선비가 얼굴을 잔뜩 구기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역시 손에 돌멩이를 주워 들고 앞으로 나섰다. 날아오는 돌에 맞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북소리와 비명이 뒤섞이자,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돌로 맞춰야 하는 적뿐이었다.



호산월은 너울을 쓴 채 두 양반의 뒷모습을 찾았다. 뒤늦게 참전한 남인 선비가 긴 팔을 휘둘러 돌멩이를 던졌다. 그가 던진 돌은 개천을 넘지 못하고 퐁당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것을 본 북인 선비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손가락질까지 하며 비웃었다.

“저러다 큰일 나겠네. 이보게, 가서 좀 말리시게나.”

“말려서 될 일이면 동인과 서인이 왜 있고,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이 왜 있겠소? 이젠 탁소북과 청소북도 생겼다니, 조각난 헝겊 기워봐야 누더기지요.“


돌팔매질은 더욱 거세졌다. 개천 주변 여기저기서 비명이 흘렀다. 머리가 깨져서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기왓조각에 맞은 청년이 눈을 가리고 피를 쏟으면서도 돌멩이를 던졌다. 그 돌은 또 반대편으로 날아가 노인의 가슴을 때렸다. 노인은 숨을 쉬지 못해 캑캑거리며 고꾸라지는데 주변의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투석구를 꺼내 든 덩치 큰 사내들이 짱돌을 넣어 휘두르자, 막고 있던 나무판이 뚫렸다. 연달아 투석구로 던진 돌이 구경꾼의 이마를 깨서 피가 흐르는데, 언덕 위 사람들은 재밌다고 깔깔거렸다.


남인의 청천 선비가 있는 힘껏 기와 조각을 던졌다. 날아간 기와 조각이 키 작은 소년의 뒤통수를 맞췄다. 기와 조각에 맞은 소년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런데도 젊은 선비는 손을 연달아 하늘로 치켜들며 짐승처럼 포효했다.


“죽였어. 내가 죽였어. 으아아아!!!”



그것이 꼴사나운 북인의 고원 선비가 옆에 있는 초립 쓴 청년의 돌을 빼앗았다. 그 돌은 개천 너머가 아닌 기뻐 날뛰는 청천 선비에게 날아와 코를 맞췄다.


“아악! 이 개자식 …. 죽여버릴 테다.“


깨진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자, 쪽빛 도포에 붉은 피가 배었다. 자주색 도포를 입은 북인 선비가 입술을 꾹 다물어 웃음을 참으면서 또 양손에 돌멩이를 쥐었다.


“아이고, 아이고. 저 양반들 저러다 큰일 나시겠네.”


이쪽의 석전꾼들이 돌을 던지며 수표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몸으로 밀고 돌을 던져 위협하면서 수표교를 건너는데, 개중에는 몽둥이를 들어 사람을 때리기도 했다. 비명이 난무하는 그 가운데에 키 작은 고원 선비도 끼어있었다. 그는 적인지 같은 편인지 구분도 하지 않고 보이는 족족 돌을 던져 맞췄다.


밀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에 쓰러진 사람들이 차이고 밟혔다. 그러나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망설이지 않았다. 자주색 도포를 입은 북인 선비가 검은 깃발을 뽑아 들고 깃대를 부러뜨리자, 누군가는 주저앉고 누군가는 고함을 질러댔다. 운종가를 넘어 임금이 사는 궁까지 들릴 기세였다.


단 한 사람, 쪽빛 도포를 입은 남인 선비만이 씩씩대며 개천의 이쪽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자들과 끙끙거리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호산월은 남인 선비에게 가까이 가서 조용히 한마디 건넸다.


“그림은 저기 저분께 드리는 게 맞겠지요?”




호산월이 구경꾼들 있는 쪽으로 가는데, 코가 깨져 입 주변과 턱, 목, 도포가 붉게 젖은 남인 선비가 바닥을 두리번거려 주먹에 딱 들어오는 짱돌을 주워 들었다. 키가 크고 팔이 긴 선비는 손으로 코피를 닦아내고, 개천 반대편에서 주먹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늘보다 푸른빛의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가, 피 묻은 손으로 꽉 쥔 돌을 있는 힘껏 개천 반대쪽으로 날렸다. 날아간 돌은 자주색 모시 도포를 입은 키 작은 선비의 미간을 때렸다. 돌에 맞은 북인 선비는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갔다.


방 안에서 글만 읽어 낯빛이 하얗고 키가 큰 남인 선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키득 댔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양반은 소리 내어 웃으면 안 된다고 배운지라,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야 했다.


강씨가 눈을 끔벅거리며 그 광경을 보는데, 너울로 얼굴을 감춘 호산월이 다가왔다.


“이제 그림은 저들에게 중요하지 않겠네요. 저기, 화원님이 보입니다.”


호산월의 말대로 강씨의 아들, 도화서 화학 생도인 창희는 둔덕 위에서 수표교 석전놀이를 그림으로 담고 있었다. 강씨는 아들을 보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쪽빛 도포의 남인 선비는 아직도 웃고, 건너편 자주색 모시 도포의 북인 선비는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서화점 주인장은 돌아서서 광통교 쪽으로 걸어가는 호산월을 보았다.


“구미호야. 구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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