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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九尾狐 놀이

by 김사과


“분명 구미호의 짓이요. 사람 간을 빼갔는데, 구미호가 아니면 뭐겠소?”


올린 머리끝에서 팥닢댕기가 나풀거릴 만큼, 반촌 주모는 흥분해서 구미호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는 호산월은 의금부 옥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표교 아래서 어린아이 시체가 나왔는데, 간이 없는 아이였답니다. 소시장에서 간이 사라진 채 죽은 소 이야기 못 들었소?”


듣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호산월의 표정을 보고는, 주모도 따라서 의금부 옥사를 보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치도곤을 당했는지는 도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역모 사건에 이름이 나오기만 해도 의금부에 잡혀 와서 온갖 고문을 당했고, 초주검이 되든가 아니면 황천길이었다.


“의금부로 끌려가면 맞아 죽거나, 살이 썩어서 죽거나, 망나니 칼에 목이 달아나는 법이요. 작년 여름에 내 눈으로 직접 보았소.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양반의 몸이 여섯 조각으로 찢어지던 것을요.“


사내의 비명이 아직도 주모의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날의 광경을 떠올리니 여름 땡볕에도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러자 의금부로 잡혀들어간 길달이 떠올라,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 돌을 올린 듯했다.


“의금부 옥사에 갇히면 밥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쥐들의 밥이 된다는데... 그놈들이 터진 살을 파먹고, 부러진 뼈를 갉아 먹는데도 쫓지 못한다던데... 내 말을 듣고는 있소?”



주모가 버럭 하면서 호산월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내심 여기까지 와준 호산월에게 고마웠다. 도와달라는 한마디에, 의금부까지 와 줄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것도 반촌 백정의 목숨을 구하려고.


“길달이는 아닙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제 집 앞에 내버리는 놈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이건 구미호 짓이 분명해요.”


나장 하나가 낭청방 쪽에서 다급히 뛰어왔다.


“자백을 했습니다. 양반을 잔인무도하게 살해한 흉악범이라고, 내일 광희문 앞에서 참한답니다.”


주모가 다급히 나장의 손을 잡았다. 나장은 놀라서 손을 빼려 했지만, 주모는 악착같이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소, 돼지를 죽일지언정 사람의 간을 빼서 죽일 살인귀는 아니오. 어르신!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반촌 주모와 나장의 시선이 호산월에게 닿자,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호산월이 물었다.


“죽은 성균관 박사의 간이 진짜 사라졌소?”

“예. 내의원에서 의관이 나와 확인했습니다.”

“그 시신이 아직 여기 있소?”

“예. 내일 형을 집행한 후 가족들에게 인계할 거라고 했습니다.“



나장의 대답에 호산월이 손에 끼고 있던 옥가락지를 빼서 내밀었다. 반들거리는 옥가락지 한 쌍을 보자, 나장이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시신을 보게 해 주시겠소? 잠깐이면 되오.”


의금부 나장이 주변을 살피자, 주모가 얼른 옥가락지를 가져다가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옥가락지를 쥔 나장이 호산월과 주모를 서간의 쪽방으로 데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향나무 냄새와 삽주 뿌리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냄새도 한여름 무더위에 썩어가는 시체의 악취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주모와 나장이 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눈살을 찌푸리는데, 호산월은 죽은 성균관 박사의 몸에 가까이 다가가 저고리를 들췄다.


갈빗대 아래쪽으로 한 뼘 정도의 칼자국이 있었다. 피는 멈췄지만 벌어진 살은 아직도 벌겋고, 간이 사라진 부분은 움푹 들어가 그곳이 비었음을 알게 했다. 호산월이 그 살을 벌려서 안을 들여다보자, 주모가 진저리를 쳤다.


“구미호요. 구미호. 사람의 간을 빼먹고 사람으로 둔갑해서 사람인 척 산다잖소.”


”몹시도 교활한 인간을 구미호라고도 부르지요.“


의금부를 나와 궁궐 쪽으로 가며 주모는 내내 구미호 이야기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산월은 웃기만 하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할 즈음 창덕궁의 높은 담이 눈앞에 나타났다. 호산월은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수문장 쪽으로 걸어가 소곤거리다가 주모에게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하셨소?”

“곧 대사례가 있다네요. 성균관에서는 대사례 준비로 너나 할 것 없이 활쏘기를 하겠지요. 그거 아시오? 왕이 연초를 싫어하면, 벼슬아치들도 납작 엎드려 연초를 멀리한다는 거. 왕이 날고기를 좋아하니 하나같이 육회를 맛보려고 현방 백정에게 뒷돈을 준답니다. 그러다 보니 돈벌이가 좋은 백정을 아니꼽게 보는 자들도 있지요.“


알 듯 모를 듯한 호산월의 말에 주모가 멀뚱히 바라보았다. 창덕궁의 담을 끼고 또 한참을 걷자, 성균관의 신삼문이 보였다. 붉은색으로 칠한 문과 기둥 너머로 물오른 녹 빛의 은행나무가 하늘을 가렸다.


“저 문은 신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성균관은 공자를 신처럼 받들고, 안자 증자 자사 맹자를 성인으로 모시며, 공문 10철 같은 현자와 성현께 제사를 지내는 태학이자, 국학이지요.”


“당장 구미호를 찾으러 가도 모자랄 판에, 뜬구름 같은 소리나 하고 있소? 길달이는 내일이면 광희문 밖에서 목이 댕강 잘릴 거요.”


주모는 답답한 마음에 호산월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호산월은 하늘을 보더니 성균관의 담을 따라 또 걸었다. 주모가 못마땅해서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호산월을 바라보았다.


“왜 안 오시오? 얼른 따라와요.”


호산월이 주모를 돌아보며 손으로 부르자, 주모는 구시렁대며 걸어갔다.



“구미호를 잡으려거든 부적을 쓰든가? 아니면 복숭아 나뭇가지라도 꺾어다 몽둥이찜질을 하든가? 당최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천한 백정이라고 죽어도 좋다 그겁니까?”


“천한 걸로는 기생도 남부럽지 않습니다.“


호산월이 걸음을 멈춘 곳은 성균관의 향문 앞이었다. 향문은 성균관의 진사식당 앞으로 난 문이었다. 향문을 몇 번 두드리자, 진사 식당의 숙수가 나와 문을 열었다. 호산월은 그 숙수의 귀에 대고 한참을 속닥거렸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주모를 가리켰다. 숙수 얼굴이 벌게져서 안으로 들어가고, 호산월이 주모에게 돌아왔다.


“뭐라고 했는데, 저런 거요? 귀신이라도 본 것 같네.”

“주모가 목격했다고 말했소. 두 유생께서 죽은 성균관 박사를 반촌의 현방 앞에 두고 가는 것을요.”

“예에? 아니 무슨 거짓말을 그리 천연덕스레 하시오?”


호산월은 반촌을 지나서 종묘 쪽으로 걸었다. 주모는 안절부절못하고 호산월을 뒤쫓았다. 양반을 무고하면 자기 역시 의금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잠깐! 유생들이 지금 스승을 죽이고 간을 빼갔다는 겁니까? 이보시오! 성균관은 이 나라의 동량들만 가는 국학이요. 조선에서 가장 똑똑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인재들만 모이는 곳인데, 어찌 짐승 같은 짓을 저질렀다 무고하는 거요?”




주모의 말에 호산월은 빙그레 웃었다.


“기생집에 누가 찾아오는지 아시오? 공자와 맹자를 추종하고 주자를 신처럼 모시는 자들이 찾아온다오. 기생을 끼고 희롱하는 자들이 누군지 아시오?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한 자들이라오. 술을 마시고 개처럼 왈왈 짖는 자들이 누군지 아시오? 임금께 바른말을 한다는 간관들과 법을 집행한다는 의금부, 형조의 높은 어르신들이오.”


호산월의 말에 반촌 주모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바라만 보는데, 호산월이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더 했다.


“무오년에 사지가 찢겨 죽은 그 똑똑한 양반도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했습니다. 술도 많이 자시고, 기생과 실컷 놀았지요.”


종묘를 지나 호산월이 도착한 곳은 좌포청 앞이었다. 좌포청 포졸이 호신월을 보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호산월이 안으로 사라지고, 주모는 계단 아래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반촌을 돌아다니며 싸움질하고 물건을 깨고 하던 것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서 어린 재지기를 발길질하던 것과 아버지뻘인 서리의 뺨을 때리던 것도 떠올랐다. 주막에 와서 술을 먹고 술상을 엎어버릴 때,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가 맞을 뻔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긴, 그때 길달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내가 먼저 황천길 갔을지도 모르지.”


주모는 그제야 그날 술상을 엎었던 유생 두 명이 떠올랐다. 열여섯 열일곱 정도였던가? 한 명은 유달이라 불렀고, 한 명은 석재라 했던 것도 떠올랐다. 그들의 어깨에 활과 화살통이 걸려있었고, 그 활로 자기를 쏘려했던 것도 떠올랐다.




한참 생각하는데, 좌포청에서 호산월이 나왔다. 주모는 호산월을 보자 얼른 일어나 다가갔다. 그런데 막상 입 밖으로 내려니 또 두려워졌다. 반촌의 천한 주모가 하는 말을 누가 들어주고 믿어줄까?


“성균관 박사의 찢어진 상처 안으로 화살에 뚫린 흔적이 있었소. 간을 빼간 것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살에 찔린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였다오. 참 교활하지요? 사람의 탈을 쓴 구미호라 할 수도 있겠네요.”


호산월의 말에 주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시겠소? 내일이면 광희문 앞에서 목이 댕강 떨어질 천한 백정을 구하시겠소? 그냥 모른 척하고 성균관 유생들 하는 꼬라지를 지켜만 보겠소?”


주모는 어깨에 힘이 빠져서는 호산월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우르르 소리를 냈다. 곧 비가 올 듯했다.


농사야 잘되겠지만, 비 오는 날 떨어져 나간 목에서 피가 흐르고 뇌수가 흐르면 쥐들이 몰려와 눈이고 혀고 다 파먹을 것이다. 누가 백정의 몸과 머리를 수습해서 묻어주겠는가? 오랑캐 핏줄이라며 벌레 취급하는데, 호귀(胡鬼)가 호귀(狐鬼)짓했다고 죽은 시신에 침을 뱉으려 들 것이다.


“내 죽어도 할 말은 해야겠소. 그런데 의금부가 아니고 왜 좌포청이요?“

“죽은 성균관 박사가 여기 종사관의 아우요.”




주모는 피식 웃고는 좌포청 안으로 들어가려다, 인상을 확 쓰며 돌아섰다.


“그럴 거면 나한테나 말하지, 진사식당 숙수에게는 뭐 하러 가르쳐 준 거요? 남 말 하기로 소문이 자자…“


그러다가 주모가 다시 피식 웃었다.


“지금쯤 성균관에 모르는 자가 없겠네.”

“소문이 돌다 보면, 쉬쉬하던 것들이 속속 드러날 것입니다. 입 다물고 있던 또 다른 목격자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나올 테지요.“


주모가 호산월을 향해 눈을 흘기며 웃다가 좌포청 안으로 들어갔다. 짙은 먹구름이 운종가 거리로 몰려들었다. 호객하는 사내들의 고함과 흥정하느라 목청을 높이는 여인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 사이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반가운 마음에 호산월이 미소를 지으며 송화루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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