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편 허주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늦여름 밤의 열기로 가득한 방에 촛불 하나만 켜있었다. 일부러 창을 다 닫아걸었고, 방안은 오직 호산월의 캑캑거리는 기침 소리뿐이었다.
- 삐걱삐걱
“들어오지 마세요.“
송화루 행수 기생이 잠시 망설이다가 방문을 여는데, 안에서 열기와 함께 묵향이 밀려나왔다. 방 이곳저곳 놓인 호랑이 그림 가운데에 호산월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며칠 사이에 비쩍 마른 호산월은 창백했고, 바스러질 듯 힘이 없어 보였다.
“나주 목사로 있던 작은아들이 올라왔대요. 큰아들 내외랑 장손은 역병으로 죽고, 노인네는 산송장이랍니다. 도성 안에 소문이 자자해요. 덕인재에 역병 귀신이 들었으니, 그쪽으로는 발길도 하지 말라고.“
호산월이 깊은숨을 내쉬다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마른기침을 연신 했다.
“귀신 붙은 집에 가서, 썩은 물에 몸을 담궜으니 살아있는 게 용하지.“
- 아악!!! 악!!
밖에서 들리는 비명에 금산이 돌아보는데, 그보다 앞서 호산월이 일어났다.
별채를 나와 대사랑으로 가니, 손님과 기녀, 악공들이 모여서 웅성거렸다. 그들을 가르고 호산월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채화로 장식된 복도를 지나, 손님과 기생들이 지키고 있는 방 앞에 멈췄다.
“모두 내보내게.“
따라온 가노가 손님과 기생들을 내보내는데, 호산월은 닫힌 문에 손을 대고는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수탉 한 마리 구해 오게. 좌포청에서 오기 전에.”
가노가 사라지고, 호산월이 손님방 문을 열었다. 훅하고 지독한 피비린내가 밀려왔다. 어둑한 방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는 뭔가를 마시는 것처럼 꿀꺽꿀꺽 소리를 냈다. 호산월은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해서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남자 손님은 쓰러진 기생의 손목을 입에 문 채 피를 빨고 있었다. 나이 어린 기생은 끈으로 목이 졸려 죽었는지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호산월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도 꿈쩍 않고 피를 빨던 젊은 남자가 움찔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과 턱, 도포의 하얀 동정과 깃이 온통 피로 물들어 빨갰다. 그는 눈이 풀린 채, 입맛을 계속 다시며 혀로 자기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았다.
“이 보시오. 거기 있는 게 … 누구요?”
호산월은 떨리는 것을 참으며 손님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되돌아온 것은 호산월에게 익숙한 소리였다.
딱… 딱… 딱…
피로 빨갛게 물든 이를 드러내고 소리가 나게 부딪히던 젊은 남자는, 갑자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입을 잔뜩 벌리고 비명을 질러대던 젊은 남자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호산월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아버렸다. 악몽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호산월은 문을 닫은 채 등지고 서서 복도 끝으로 고함을 쳤다.
“금줄을 가지고 오게. 독한 한주랑 소금도. 빨리!”
하인들이 들고 온 새끼줄을 방문 앞에 걸고, 한주를 갖다가 방문과 창문에 뿌렸다. 소금으로 금을 그어놓을 때쯤 가노가 수탉을 들고 왔다. 호산월은 닭을 그 방에 던져 넣었다. 조금 후 좌포청으로 보낸 하인이 군관과 포졸을 데려왔다. 포졸들은 방 안에서 꾸르륵 대며 오가는 수탉을 보고 어이없어하다가, 두 구의 시신을 들고나갔다.
호산월 혼자 마당에 서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의 푸른빛이 퍼질 때, 호산월은 건물 안에서 들려오는 수탉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금산에게 신신당부하고 송화루를 나섰다.
“대사랑으로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세요. 아이들은 인왕사에 불공드리러 보내고, 문을 닫아거세요.”
호산월이 향한 곳은 한성부의 중부 관아였다. 기생과 손님이 죽었다. 기생은 질식사지만 손님이 죽은 이유를 알기 어려우니 검시를 할 터였다. 중부 관아 마당에 들어서는데, 뒤뜰에서 오작인이 나오다가 호산월을 보고 얼른 뛰어왔다.
“어르신! 혹시 율관 때문에 오셨습니까?”
“송화루 기생과 율관의 시신이 여기로 왔소?”
“예. 제가 보았습니다. 기생은 목이 졸려 죽었고, 율관은 넘어간 피가 숨구멍을 막아서 질식한 것 같습니다. 저기 그런데 …”
오작인은 망설이다가 주위를 둘러본 후, 호산월 가까이 와서 소곤거렸다.
“며칠 전에 혜민서 의관 하나가 죽었는데... 역병으로 죽은 시신을 뜯어먹다가, 구더기가 숨구멍을 막아 질식해서 죽었지요.“
머뭇거리다 입을 연 오작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40대의 남자는 손을 쥐었다 펴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죽은 의관과 율관은 제가 아는 자입니다.”
“검시할 때 만난 분들입니까?”
“예. 한 달 전쯤 형조 참의 영감을 모시고 검시를 할 때, 모였던 분들입니다.”
“검시한 시신은 누구였소?”
호산월의 물음에 이번엔 오작인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작지 않은 키였는데, 잔뜩 웅크린 어깨는 그가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참의 영감께서 비밀로 하라셨습니다. 그날 검시 때 함께했던 분이 한 분 더 계시는데, 그분이 며칠째 보이지 않습니다.
“한성부 서리겠군요.”
“예. 오순길이라고, 지금 보러 가려던 참인데 어르신도 가시겠습니까?”
호산월은 앞장서는 오작인 허 씨를 쫓아서 중부 관아를 나와 수표교 쪽으로 걸었다. 수표교가 가까워지니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걸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호산월은 지난밤 마주한 그놈을 다시 떠올렸다. 피를 마시던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분명, 두 달 전 좌포청의 옥방에서 본 그놈이 내던 소리였다. 이를 부딪치며 ‘딱... 딱... 딱...’ 소리를 내다가, 뱃속 깊은 곳에서 갈구하던 그 말. ‘오나까 스이따.’
역관에게 물어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전에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배고파.”
“예?”
호산월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오작인 허 씨가 돌아보았다. 호산월은 대답 대신 수표교 아래서 더러운 물을 마시는 아이들을 보았다. 역병에 부모가 죽은 아이들, 호랑이에게 물려 부모가 죽은 아이들, 활인서조차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한성부 서리의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오순길의 집을 먼저 찾은 사람이 있었다. 붉은색 시복 차림의 나이 든 남자가 싸리문 안의 마당에 서 있었다. 주위를 연신 살피며 짜증이 잔뜩 난 얼굴의 사내는 오작인과 호산월을 보고는 당황하여 헛기침을 했다.
“참의 영감께서 누추한 곳에 무슨 일이십니까?”
“지나가는 길에 잠시... 옆에 있는 여인은 누구인가?”
형조참의 김창서는 호산월을 핑계 삼아 말을 돌렸다. 호산월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형조 참의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미천한 소인은 송화루의 호산월이라고 합니다. 제가 딸처럼 여기는 아이가 지난밤 율관의 손에 참혹한 일을 당했는데, 오순길 서리께서 율관을 잘 안다 하여 찾아왔나이다.”
호산월, 그 이름은 건너 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젊어서는 도성의 남자들이 줄을 서서 찾고, 나이 들어 퇴기가 된 후에는 북촌의 마님들이 줄을 서서 찾는다는 여인이다. 그런 호산월의 입에서 율관과 서리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형조 참의는 더더욱 초조한 표정이다.
참의는 호산월을 쫓아낼 작정으로 다가가는데, 호산월이 그를 지나쳐 어딘가로 걸어갔다. 세 칸짜리 초가집 부엌의 뒤를 돌아서 호산월이 도착한 곳은 장독대 옆 텃밭이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저고리도 입지 않고 바지만 입은 차림에 맨발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이보시오? 나 좀 보시오.”
호산월이 불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호산월의 뒤로 오작인과 형조 참의가 따라왔다. 쭈그려 앉은 남자를 보고는 형조 참의가 호통을 쳤다.
“거기서 무엇 하느냐? 당장 이리 오너라.”
그 목소리에 팔이 멈추고, 한성부 서리가 몸을 일으켰다. 사람의 몸이 그럴 수가 있나 싶었다. 배만 볼록 나온 남자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모습이었다. 갈비뼈가 하나하나 보일 만큼 말라서 뺨이 홀쭉하고 눈이 퀭했는데, 호산월이 질려버린 것은 그가 입으로 물고 있는 지렁이였다.
“저놈이 무엇을 먹는 것이냐?”
형조 참의가 징그러운 것을 감추지 않고 구역질을 하는데, 오순길이라는 한성부 서리는 입안의 지렁이를 씹지도 않고 삼켰다. 그러고는 흙이 잔뜩 묻은 손에 든 지렁이를 입안에 또 넣었다.
호산월이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영혼은 죽고 식욕만 남은 남자의 몸은 흰색 반점으로 얼룩덜룩했고, 눈은 핏발이 선 게 잠을 전혀 자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보시오. 내 말 들리시오?”
“저 소리… 저… 울음소리. 귀신이 울고 있어.”
오순길은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호산월에게 귀신의 울음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여름날의 지독한 뙤약볕 아래 굶어 죽어가는 남자가 지렁이를 씹느라 부딪치는 이빨의 소리만 들렸다.
“딱. 딱. 딱. 딱. 딱.”
계속 씹어댈 것 같은 오순길의 이빨 소리가 멈췄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장독대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진 오순길은 다리를 덜덜 떨었다. 곧 그의 몸짓이 멈췄다. 그의 코에서 붉은빛이 도는 지렁이가 꿈틀대며 기어 나왔다.
호산월은 뒤로 돌아 두 남자를 보았다. 한 달 전 시신의 검시를 한 다섯 남자. 그중 세 명이 죽었다. 남은 것은 이제 저 두 명이었다. 형조 참의, 그리고 오작인. 호산월은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두 분은 그 소리를 들었습니까? 귀신이 우는 소리. 귀곡성이요.”
* (2) 편은 저녁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