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빗소리가 무거웠다. 무엇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빗물은 다른 소리를 내겠지만, 덕인재 고택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모두 무겁고 탁했다.
고택 안의 사람도 빗방울과 다르지 않았다. 따뜻하게 데운 술상을 나르는 하인도 빨랫감을 내오는 하인도, 모두 얼굴의 반을 흰 수건으로 가려, 내리깐 눈만이 오갔다. 그들의 눈이 닿아있는 곳은 사랑채 왼쪽 방의 팔십 먹은 노인이었다.
흰머리를 바짝 올려 만든 상투 위에 정자관을 쓰고 흰 도포 차림인 노인은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다. 원래 비쩍 마른 건지, 소문의 그 일 때문인지 그의 표정만으로는 호산월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노인에게서 멀찌감치 앉은 호산월은 그의 말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의원이 일곱이나 다녀갔다. 밖에서는 역병이라며 이 근처로는 발길도 안 하는데, 이건 역병이 아니야.“
“역병이 아니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호산월의 질문에 가슴까지 흰 수염을 기른 팔십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호산월은 그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 앞에 놓인 소반에는 소박한 색깔의 찻잔과 연꽃을 담은 찻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연꽃차를 마시며 무거운 침묵을 모른 척할 수도 있는데, 호산월은 덕인재의 주인을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아들은 피부가 점점 검게 변하고 있지. 검은 재를 뒤집어쓴 것처럼. 그런 역병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며느리는 눈에서 피가 흐르고 눈을 뜰 수가 없어 흰 천을 대고 있는데, 두 시진이면 그 천이 붉게 물들어 갈아야 한다. 그런 역병을 들어보았느냐?”
“봉조하께서는 짐작하고 계시는 게 있으십니까?”
“짐작?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임금께 부탁하여 어의를 청하시지 않고, 미천한 기생을 부르신 데는 어떤 확신이 계시기 때문 아닙니까?”
호산월의 말에 봉조하라 불린 덕인재의 늙은 주인은 고집스레 입술을 꾹 물었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당인지 기생인지 모를 여인을 사랑채에 비밀리 들인 것이 떨떠름했다. 그런데 천한 것이 잘난 척 떠드는 것을 듣고 있으니 속이 뒤집혔다.
“북촌을 드나들며 요설을 퍼트린다는 말은 들었지. 사돈댁에서 권하기에 하는 수 없이 불렀더니, 지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호산월은 그제야 찻잔을 들어 따뜻하게 데워진 연꽃차를 마셨다. 사랑방의 주인은 앞에 놓인 술잔을 내던지고 싶은 것을 참았다.
“봉조하께선 여귀라고 아십니까?”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성리학자라면 응당 성현의 뜻을 따라야 하느니.“
“그렇다면 미천한 기생인 제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여’라는 글자가 참 괴이합니다. 역병이라는 의미도 있고, 괴롭힌다는 의미도 있지요.“
“결국 역병이라는 게군.“
덕인재의 주인은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런데, 여라는 글자에는 아주 예리하게 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칼을 간다는 말이지요.”
“칼?”
“아드님, 며느님, 공직에 갓 오르신 손자분이 바로 칼입니다.”
수염이 하얀 노인은 그 의미를 읽으려 했지만, 기생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지금 칼이 아주 날카롭게 갈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칼이 아주아주 날카롭게 갈리면, 봉조하를 찌르겠지요. 이제 짐작 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덕인재의 주인은 호산월의 말에 손을 꽉 쥐었다가 술잔에 든 술을 마시고, 다시 따라서 한 잔 더 마셨다. 빗소리가 거셌다. 구름은 며칠째 해를 가리고,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사랑채의 큰 문마다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머니 쪽으로 왕실의 피가 흐르고, 그의 여동생은 왕비였다. 그는 호송공신이었으며 봉조하의 명예도 얻었다. 큰아들은 한성부 부윤으로 앞길이 창창했고, 손자는 사간원의 정언으로서 임금의 신임을 얻었다. 작은아들이 문제였다.
“따라오너라. “
덕인재 주인은 보료에서 일어나 직접 손자의 방으로 안내했다. 비바람에 문이 덜컹대는 복도를 걸으며 호산월은 손이 굳어가는 감각에 바짝 긴장했다.
“혼인을 앞두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여역인가? 홍역인가? 그랬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문이 열리고 호산월이 손자의 방으로 들어섰다.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심한 악취는 상한 생선내 같기도 하고 구더기 핀 시체 냄새 같기도 했다. 덕인재의 젊은 종손은 이부자리에 누워 썩어가고 있었다. 온몸이 푸르뎅뎅 부풀어 곧 핏줄이 터지고 진물이 흐를 듯했다.
이미 정신은 혼미하고, 겨우 숨만 붙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종손의 모습은, 늙은 할아버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었다. 참으로 칼을 잘 갈았고, 덕인재 주인은 그 칼에 내장이 조각나고 있었다.
“살릴 수 있느냐? 귀신이 보여?“
“쿨럭! 쿨럭!”
자리에 누운 손자가 기침을 할 때마다 그의 입에서 물이 흘렀다. 침이 아니라 그것은 분명 몸속 어딘가에 고여있던 물이었다. 호산월은 굳어가는 손가락을 힘껏 펴다가 버티지 못하고 방에서 나와 대청마루까지 빠르게 걸었다.
“너도 어려운 것이냐? 안 되겠지. 저런 것은 본 적이 없다더군.”
뒤따라온 팔십의 노인이 다 포기한 듯 큰방을 향해 걸었다. 그가 원한 것은 오직 순리대로 죽는 것이었다.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줄 아들과 손자가 있어 만족했다.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죽는대도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런데, 이제 먼저 죽는 것은 아들과 손자일 것이다.
“여기에 빈소를 만들고, 신주를 갖다 놓고 초와 향에 불을 붙이세요.”
“아직 죽지 않았는데, 상부터 치르라는 것이냐?”
“아직 죽지 않은 자가 아니라, 이미 죽은 자들 말입니다. 봉조하께서 죽인 자들이요.“
호산월의 말에 심노인의 얼굴이 수염만큼이나 창백해졌다.
“여기에 빈소를 차리세요. 봉조하께서 직접 곡을 하시고, 상주가 되시어 문상객을 받으세요. 그것이 노비든 비렁뱅이든 가리지 마시고, 절하고 곡하셔야 합니다.”
“죽고 싶은 것이냐? 엄연히 반상의 법도가 있어. 나라의 질서가 무너져 공명첩으로 신분과 벼슬을 산다 해도, 양반은 양반이고, 노비는 노비야.”
심노인은 작은 몸을 펴고, 온 집안이 쩌렁쩌렁하게 호통을 쳤다. 호산월은 더러운 것을 바라보듯 응시하며 대꾸했다.
“목숨이 그토록 하찮으십니까?”
“질서가 무너지면 이 나라가 무너지는 거지. 무너진 나라에서 목숨은 붙어있을까?“
“백성이 없고서야 나라가 있겠습니까?“
“조선은 왕의 나라야. 왕이 곧 국가야. 왕이 왕일 수 있는 건, 신분질서다. 삼강과 오륜이 지켜져야 왕의 자리가 튼튼하고, 그래야 나라의 근본이 유지되고, 그래야 백성이 평안한 것이다. 천한 기생년이 그런 것을 알겠느냐? 계급 질서가 무너지면 법은 사라지고, 혼돈만이 남는 것이다.”
호산월은 돌아섰다. 이대로 마루를 내려가 신발을 신고 빗속에 잠겨가는 덕인재를 떠나면 그만이었다. 이 집 일에 발을 담가봐야 늪이었고, 자칫하면 빗물 속으로 깊이 잠겨 물귀신의 밥이 될게 불 보듯 뻔했다.
“대감마님, 큰 안방마님께서 숨을 쉬지 않습니다.”
수건으로 입을 가린 하인이 마당으로 뛰어와 빗속에서 외쳤다. 덕인재의 팔십 먹은 주인은 기운이 쑥 빠진 듯 어깨가 처졌다.
“지금 빈소를 만들지 않으면 아드님도 손자도 살 수 없습니다.”
“그놈들은 노비였다. 집 밖에서 살아도 노비는 노비지. 노비는 주인이 내다 팔아도 그만이고, 매를 때려도 그만이야.“
호산월은 그대로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나왔다. 하지만 덕인재 대문으로 나가지 않고, 사랑채 뒤의 연못으로 향했다. 기이한 돌을 세우고 대나무로 꾸민 연못에는, 죽은 잉어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덕인재 하인 모두 그것을 보았지만 두려움에 건드리지도 않던 연못 안으로 호산월이 들어갔다.
가운데로 들어가자, 호산월의 어깨까지 물에 잠겼다. 호산월은 물풀 쪽으로 손을 휘휘 젓더니 무엇인가를 꺼내 비가 쏟아져 질퍽이는 땅으로 던졌다. 하인들과 함께 심 씨 노인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나무로 깎아 만든 말이었다. 호산월이 연못에서 걸어 나와 목각 말을 주워 심 씨에게 보였다.
“이것으로 아이를 꾀어 죽이지 않았습니까? 아비가 만들어준 말을 찾겠다는 아이를 연못에 빠트려 죽였지요? 물려줄 아이가 없으면 노비의 재산은 주인의 것이 되니까. 노비 재산으로 뭘 하셨습니까?”
외척이요 공신인 덕인재 주인은 나무를 깎아 만든 말을 보며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노비들은 차갑게 주인을 노려보았고, 호산월은 한 발 앞으로 나와 그의 대답을 대신했다.
“6살 어린아이를 익사시키고, 그 어미가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게 만들었지요? 나라니, 백성이니 해가며 군자인 척하지 마십시오. 그 아비는 불 속에 가둬 태워버리셨잖습니까? 국왕의 충신인 척 위선 떨지 마세요. 결국 노비의 재산을 빼앗아 … 작은아들의 벼슬을 사셨잖소.”
그때, 하인 하나가 또 달려와 노인에게 말했다.
“대감마님! 부윤 영감께서 숨을 쉬지 않습니다.”
심노인은 멍해져서는 입만 벙긋댔다.
“나는 양반이야. 내 어머니는 왕족이고, 내 여동생은 왕비였어. 나는 공신이고, 임금께서도 봉조하라고 나를 대우해 주셨어.”
호산월은 더는 쓸데없는 짓이라며 덕인재의 사랑채 마당을 걸어 나갔다. 구름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가릴 만큼 무거웠고, 비는 멈추지 않을 기세로 쏟아졌다. 덕인재의 팔십 먹은 노인은 중얼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호산월은 물웅덩이를 밟으며 중문의 문턱을 넘었다.
“네놈들이구나. 너희 놈들이 역병을 옮겨왔어. 내 재산을 노리고, 노비 문서를 태우려고 역병을 갖고 왔어.“
팔십 먹은 노인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담을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