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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성  鬼哭聲 (2)

by 김사과 Mar 03. 2025


“영감께서도 귀신 우는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허무맹랑하다. 귀신이라니?”               


형조 참의 김창서는 호통을 친 후에 장독대 아래 쓰러진 서리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핏빛의 지렁이가 붙어 꿈틀댔다. 광대뼈는 툭 튀어나오고 눈은 퀭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먹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렁이를 먹어야 할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말해주세요. 한 달 전, 검시했던 시신은 누구입니까?”               


그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린 형조 참의가 눈을 부릅뜨고 오작인을 바라보았다. 오작인은 허리를 숙이며 눈을 깔았다.                


“이 와중에도 숨기시려 합니까? 그날 검시에 참여한 다섯 분 중 세 분이 죽었습니다. 한 분은 역병에 걸린 시체를 뜯어먹다가 구더기가 숨구멍을 막고, 한 분은 기생을 죽이고 그 피를 먹다가 죽었습니다. 여기 이분은 직접 눈으로 보세요.”     


오작인은 죽은 한성부 서리를 보았다. ‘형님! 형님!’하며 가깝게 지내던 사람인데, 지금 모습은 꼭 지옥에 떨어진 아귀로밖에 안 보였다. 오작인은 슬쩍 옆에 있는 형조 참의를 보았다. 그의 입으로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게 불 보듯 했다.          


“영감께서 말씀 못 하시면 소인이 하겠습니다.”          


“이놈! 죽고 싶은 것이냐? 그 일을 입 밖으로 내면, 시신이나마 수습해서 먹고살던 것도 끝이야. 관의 일을 천한 기생년에게 떠들어댄 죄를 물을 것이다.”     




길길이 날뛰는 형조 참의 기세에 오작인 허 씨는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형조 참의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호산월을 내려다보았다. 그 뒤 오순길의 시신도 함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날의 일을 아는 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지 않은가?’               


“이 일을 떠들고 다닌다면 네년도 잡아들여 죄를 물을 것이다.”          


형조 참의 김창서는 오작인을 한 번 쏘아본 후 그 집에서 나왔다. 한성부 서리를 찾아간 이유는 입조심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침 영원히 입을 열 수 없게 되었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끼이이이이이 …                


수표교에 들어서는데, 귓속으로 소름 돋는 소리가 들어왔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고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 가운데로 향하는 해가 뜨거운 햇빛을 쏘아댔다. 수표교 아래는 걸인들이 옷을 벗고 물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더러운 놈들.”       


끼이이이이이. 이이이이이... 히히히히히히히....               


그의 귀에 가득 들어찬 뜻 모를 높은음이 그의 귀를 찢는 것만 같았다. 그 파장은 머리를 울리고, 목을 꽉 조여왔다. 저절로 두 손이 귀로 갔다. 귀를 꽉 막고, 소리를 피해 보려 했지만, 소리는 귀 안에서 괴롭혔다. 오히려 손으로 막으니 더 커져서 윙윙댔다.               


끄아아아아아악....끄으으으으....키키키키키키...               




그의 머릿속으로 조금 전 본 한성부 서리가 떠올랐다. 배만 볼록해서 뼈만 남은 채 지렁이를 먹던 오순길의 주검이 떠올랐다.


휘청휘청 대던 형조 참의를 잡아준 것은 뒤늦게 도착한 오작인 허 씨였다. 오작인을 바라보는 형조 참의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참의 영감?”          


형조 참의는 오작인을 밀치고, 호산월에게 다급히 가서 팔을 잡고 흔들었다.           


“들었느냐? 이 소리. 칼이 칼을 긁는 소리. 짐승이 죽기 전에 내는 소리.”          


“한 달 전, 검시했던 시신은 누구입니까?”               


호산월은 동요 없이 그 질문을 다시 했다. 형조 참의는 호산월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시선이 수표교로 향했다. 보고 있는데, 목이 타들어 갔다. 가뭄에 타들어 가는 논바닥처럼 갈라져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침을 연신 삼켜 보았지만, 삼킬수록 목구멍이 불에 타는 듯했다.               


“부모 없는 어린아이였습니다. “


오작인이 더 참지 못하고 형조 참의 대신 대답했다. 호산월은 얼른 형조 참의의 팔을 잡아당겨 시복 소매를 걷었다. 그의 팔은 매화꽃 같은 하얀 반점으로 얼룩덜룩했다. 오작인 허 씨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몸에서 간과 쓸개를 빼간 시신이었습니다.”




형조 참의는 팔을 빼내더니 곧장 수표교 아래의 개천으로 향했다. 붉은색 시복을 입은 채 개천으로 가서 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   


“검시할 때, 참의 영감이 의관에게 물었습니다. 아이 손가락이 창질에 좋은 게 맞냐고. 의관이 …어차피 고아라서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고, 손가락 다섯 개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호산월은 수표교 아래 개천을 보았다. 형조 참의는 개천물에 코를 박고 물을 마셔댔다. 입고 있는 시복을 뜯어 헤치며 목을 긁어댔다. 건너편의 걸인들이 뒤로 물러나 형조 참의가 하는 꼴을 바라보았다.


“오작인은 어떻소? 그 손가락을 먹었소?”          

“아니요!!! 안 먹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할 때 몰래 같이 넣었습니다.”         


오작인 허 씨가 고개를 돌려 개천을 보았다. 형조 참의는 이미 물속에 얼굴을 묻은 채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호산월은 잠시 오작인을 바라보며 눈만 깜박거리더니, 그의 팔을 힘껏 잡았다.           


“저분은 이미 늦었소. 나와 가십시다. 걸신이 옮겨 붙으면 영락없이 저 꼴로 죽을 것이요. 어서요.”     


오작인은 엉겁결에 호산월을 따라 수표교를 건넜다. 호산월이 오작인 허 씨를 끌고 도착한 곳은 운종가 끝자락에 있는 송화루였다.


“어르신, 저는 관아에 빨리 가서 서리와 참의 영감의 일을 고해야 합니다.”          




호산월은 대사랑의 금줄을 쳐 놓은 방 앞에 섰다. 소금으로 금을 그어놓은 방문에서는 독한 술 냄새가 올라왔고, 대낮인데도 문 앞의 등불에 불이 켜져 있었다. 호산월은 금줄을 뜯고 방문을 열어 오작인이 먼저 들어가도록 한 후,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저는 귀신이 곡하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 아이의 손가락도 먹지 않고 무덤에 넣었다고요.“


“네 명이 먹고, 한 명은 먹지 않았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소? 네 명이 들리는데 한 명은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또 무슨 연유겠소?”          


대답은 못 하고 오작인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 걸음 도망가 봐야 더 깊은 수렁이었다.     


“귀(鬼)자를 뜯어보면, 가면을 쓴 자가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오. 그러니 자기의 죽음을 한탄하는 자가 아니라, 얼굴을 숨긴 자가 푸닥거리를 하는 거라오.”     


뒤로 물러나던 오작인의 발에 끈적한 피가 묻었다. 지난밤 죽은 18살 먹은 기생 모란의 피였다. 오작인은 흠칫 놀라서 몸을 틀다가 구석에 앉은 수탉을 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앉은 수탉의 입에서 상상도 못 한 소리가 흘렀다.               


끼이이이이이. 이이이이이... 히히히히히히히....               


그 소리에 오작인 허 씨가 주저앉아버렸다. 놀란 눈으로 숨을 멈춘 오작인이 수탉과 눈이 마주치자, 문갑에 기댄 채 바들바들 떨었다.     




“이놈이 율관의 몸에 숨어있었소. 손가락 말고 무엇을 또 먹인 게지. 당신이 이놈을 깨워낸 것이오. 누구의 시신에서 또 무엇을 잘라, 가져다 먹인 거요?”


오작인은 수탉의 눈을 바라보며 목청을 높였다.


“나는 잘못 없어! 짐승만도 못한 놈들. 죽어도 싸지. 그놈들이 나를 협박했다고.“

“협박이 아니라 돈벌이였겠지.”


호산월은 앉아 있는 수탉의 목을 움켜쥐고 와, 오작인의 앞에 내던졌다. 푸드덕하고 날던 수탉이 오작인의 다리 위로 떨어졌다. 오작인을 보던 수탉의 부리에서 또 그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아아악....끄으으으으....키키키키키키...     


오작인은 수표교 개천에서 떠내려가던 형조 참의를 떠올렸다. 목구멍에 구더기가 들끓던 의관과 피칠갑을 한 율관을 떠올렸다. 지렁이를 먹던 한성부 서리가 떠오르자,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얼른 수탉의 목을 잡아 꺾어버렸다. 귀신의 울음소리를 내던 수탉의 입을 막아버리자 고요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산월이 방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방이 고요해지자 오작인은 가슴을 쓸며 자기 발에 묻은 기생의 피를 보았다. 얼른 버선을 벗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안 먹었어.”     


그렇게 말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죽은 임산부의 뱃속에서 아이를 꺼내던 것이 떠올랐다. 탯줄과 태반을 항아리에 담아 의관에게 가져다주었었다. 갓 죽은 갓난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형조 참의에게 바쳤었다. 정말 죽었나? 살아있었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끼이이이이이....               



귓속을 파고드는 소리에 오작인은 뒤돌아보았다. 수탉은 목이 꺾인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럼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소리가 날 것은 없었다.


끼이이이이이....... 키키키킼


그것은 그의 귓속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의 입안에서 숨이 드나드는 흉통에서 피를 돌게 하는 심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가면을 쓴 자가 그의 몸 안에서 제사를 지냈고, 제사상에 올릴 제물을 요구했다. 오작인의 눈에 보이는 먹을 것은, 죽은 수탉 한 마리뿐이었다.          


………. 스이 …..따


하늘 가운데 떴던 해가 점점 기울어가고, 뜨거운 열기로 기와도 마당도 바짝 익어갈 때였다. 고요한 대사랑 건물 안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스이따... 스이따...”     


행수 금산과 호산월을 만나러 온 좌포청 종사관이 하인과 함께 마당을 들어서는데,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대사랑 건물에서 나오는 오작인 허 씨였다.           


“오나까 ... 스이따...”     


오작인은 제 발로 걸어오고 있었지만,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한 좌포청 종사관은 걸음을 멈추고 숨도 멈췄다. 불길에 휩싸인 오작인은 닭을 뜯어먹어 빨갛게 물든 이를 들어내며 씹는 흉내를 냈다. 그의 입에서 종사관도 들은 적 있는 그 소리가 들렸다.          


딱… 딱…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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