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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May 02. 2022

매달린 줄


전깃줄에 줄 하나가 매달려있다.

현수막을 걸었던 하얀 노끈

짧지 않은 1미터

손이 닿지 않는 공중에

축 늘어져 있다가

바람이 먼지 가득한 골목을 지날 때

바다뱀처럼 흔들린다.


고요한 조류를 거슬러

산호섬을 향하는 바다뱀

그 얼룩의 매끄러운 자만심

빛나는 태양을 가르는

부드러운 자유이고 싶지만

줄은 매달려 있다.


제 의지로 놓지 못하는

이젠 잊혀진 노끈

꽉 쥔 것을 풀어낼 힘도 없고

더 이상 묶일 일이 없어질까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위로 빛이 떨어지면


푸른 산호빛 물결 위로

햇빛의 굴절이 만드는 오로라

시간이 흐르지 않는

빛 그물에 걸린 오랜 산호들 위로

물결에 몸을 맡기고

산호섬으로 헤엄치는 바다뱀의

그 허영이고 싶은데


매달린 줄은

전깃줄을 꽉 잡고

그저 잠시 파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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