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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색연작, 05화

데몰리션

무너뜨리며, 다시

by 투명인간

초라한 유랑객한테는

잡음이 많아진다.

헐렁한 나를 파괴하고 싶은 건지,

철거를 바라는 건지.


나는 몇 층짜리 건물이었길래

사소한 미풍에도 흔들렸을까.

애초 설계의 문제였을까.

비싼 옆 건물들은 방음이 되지 않는다.


발소리가 자꾸 거슬려 들려온다.

결국 분통을 이기지 못한 채,

기린 같은 포클레인을 몰고 와

나의 태양을 가린다.


부리나케 달려오던 단골손님들은

노란 표지판을 지나

광택 나는 건물 안으로 꺾어

무심히 들어간다.


이 허름한 천장과

누런 벽을 허물고

찢어낸 달력으로

한 해를 만든다.


그저 파괴했고,

다시 세워진다.

조용히 철거를 마친 뒤,

완공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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