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거짓 기도를 빌었다.
구겨진 답안지는
빗물에 젖은 휴지처럼 너덜거린다.
정답을 알지 못한 채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덧댄 하얀 줄들은
켜켜이 쌓인 눈길처럼
낮은 방지턱만 만들었다.
그 위엔 얼룩말 같은
검은 바퀴자국만 남았다.
지울 수만 있다면,
나는 정답을 적어낼 수 있었을까.
냉정하게,
다음 장을 넘겨야 했다.
흔적이 미세하게라도 남길 바라며
흐릿한 숨으로 습한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무거운 안경을 집었다.
엄격하게 구획된 주차장엔
내가 설 자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맞추기 이전에 들어갈 틈부터 부족했다.
그래서였을까,
도로 위의 하얀 선들은
늘 나보다 먼저 방향을 알고 있었다.
결국 정답을 알기 위해서는
홀로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것,
내가 처음 발을 디딘 선이
어디였는지를
끝내 묻고 있었다.
하늘은 조용히 저물어가고,
경비실의 하얀 불빛만
작게 반짝였다.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다.
축축해진 종이를 버리고,
하얀 노면 위
올바른 선을 따라 걸었다.
나의 답안지를 채점해 온 것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무에게도 답을 맡긴 적 없다는 걸
조용히 인정했다.
그래서
기도를 멈추고,
하얀 줄을 덧대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