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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색연작, 07화

어느 날 오전의 끄적임

by 투명인간

아픈 글을 쓰다 보니

정말 병이 난 것일까.

얼굴은 더 수척해지고

살갗은 종이처럼 얇아지다 못해,

속마저 비칠 듯했다.


지난날의 끄적임 들을

책상 위로 흩어놓고

마른 입술 아래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아, 애처롭구나.


사랑의 원한을 품은

한 인간의 몸부림이었을까.

아니면 결점을 숨기려

떨리던 목소리였을까.


까닭 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담배 연기를

천천히, 오래 올려 보낸다.


폐쇄적인 나의 끄적임 들도

가끔은 숨 막힐 만큼 갇혀 있었듯,

‘산책’이라는 말에

귀가 먼저 쫑긋,

눈이 휘둥그레지는

작은 개처럼 안달이다.


어쩌다 산책을 시켜 주면

사람들이 스치듯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그 찰나의 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나는 또 끄적인다.

다시, 반복한다.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과 치유를

지겹도록 원했구나.

내밀어 줄 힘은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고,


아아,

이 모든 건 결국

살고 싶어서 남긴,

아픈 사람의 끄적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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