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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색연작, 09화

시청기록

무의식 안에서

by 투명인간

문득 스쳐 간 꿈의 장면들을

되감아보다, 기록을 지운다.

이 질긴 반복을

멈추는 방법은 잠들지 않거나,

꿈을 꾸지 않는 일뿐이다.


끝내 갈망하던 것을 마주한 순간,

그 사람과 마주한 순간,

고정 채널이 되어버린

그 영화는 더 이상 재미없다.


가끔 꿈이 선명한 화질일 때면

혼동이 스며든다.

그러나 현실의 시야는

여전히 흐리고,

밥맛은 여전한 걸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직 흩어지지 않은 조각들을 모아

조립하고 맞춰본다.


해몽을 찾아보고,

앞날의 퍼즐을 짜 맞추는 짓은

무료 사주를 보는 일과 닮았다.


뒤죽박죽 한 기록들을

겁먹은 두더지처럼 파헤치다 보면

무언가 보이긴 하지만,

그다음은 나의 몫이다.


사실, 지우고 싶던 건

기록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었다.


유리문을 지나

날 선 햇빛과 함께 찬바람이 스친다.

그때야 비로소

나의 과잉을 인지한다.


그저 꿈이었는데,

왜 이렇게 새삼스러울까.

달콤한 게 아직도 좋은 걸까,

그 따뜻함이 품 같아서일까.


나는 지울 수 없는 이 꿈들을

결코 문질러버리고 싶지 않다.

꿈은 꿈이지만,

때로는 솔직한 의지 같다.


또다시 어둠이 드리우고,

깊은 잠에 빠질 때면

나의 아카이브 속엔

시청기록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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