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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도 두들겨 보기 (rephrase)

소통의 정확도를 높이는 작은 습관

by 구르미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


조심성 많은 우리 문화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우리는 대화할 때에도 ‘괜히 분위기 깨지는 않을까’, ‘상대가 불쾌하게 생각하진 않을까’를 늘 고려한다. 그래서 질문을 삼가고, 애매한 부분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과 협업하며 그 습관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의사소통은 다리를 건너는 일과 같았다. 단단한지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 말 다시 확인해도 될까요?”


유럽과 미국 팀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어느 날, 회의 중 한 동료가 복잡한 계약 조건을 설명했다. 나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위기를 흐릴까 걱정되어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동료가 먼저 말했다.

“So, let me rephrase — you're saying that if the shipment is delayed, we’ll have to renegotiate the price, right?”

그 순간 놀랐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그걸 맞게 이해했는지를 먼저 되짚어주는 모습은 낯설지만 인상 깊었다. 그때 깨달았다. ‘되묻는 것’이 무례가 아니라, 오히려 협업의 기본이자 예의일 수 있겠구나.

그 이후 나도 회의 중 모호한 표현이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나오면 용기 내어 물어다.

“Just to clarify, do we need to submit the full analysis or just the summary by Friday?”

이 짧은 질문 하나로 일을 두 번 반복하는 수고를 줄였고, 오해 없이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메일 속 ‘early next week’의 함정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일은 이메일에서도 일어났다.
한 번은 미국 본사로부터 보고서 제출 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청을 받았다.

“We’d appreciate it if you could send the draft by early next week.”

나는 ‘early next week’를 한국식 감각으로 ‘월~화’ 정도로 생각하고 화요일 오후에 보냈다. 그런데 상대는 이미 월요일 아침을 예상하고 있었고, 미팅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 일 이후로 일정이 애매하게 표현된 메일을 받으면 반드시 다시 묻는다.

“By early next week, do you mean by Monday morning or end of Tuesday?”

Do you mean이나 Quick summary, plz correct me if I misunderstood 처럼 한번 짚고 가는 것이다.

돌다리를 한 번 두드리는 데 몇 초 걸리지 않지만, 그걸 생략했을 때의 비용은 훨씬 크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채팅 속 짧은 대답이 불안했던 순간


실시간 채팅으로 해외 클라이언트와 조율하던 중, 내가 정성스럽게 설명한 메시지에 “OK”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흥미가 없는 건가? 혹시 불쾌했나?’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몇 분 뒤, 이렇게 메시지가 이어졌다.

“Thanks for explaining in detail. I just needed a moment to digest that.”

그 이후 나는 짧은 반응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확인의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려 한다.

“So just to recap, we’ll proceed with Option B and schedule a follow-up next week, right?”

이런 rephrase는 단순히 정보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좋은 요약이야” 혹은 “덕분에 정리가 됐어”라는 답변을 종종 받는다.


질문은 무례가 아니라 신뢰의 시작


우리 문화에서는 질문을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질문이 곧 ‘관심’이자 ‘신뢰’의 표현이다. 특히 상대의 말을 내가 이해한 대로 바꿔 말해보는 ‘rephrase’는 그 자체로 강력한 신호다.
“당신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이보다 더 든든한 소통이 있을까?


실전에 바로 쓸 수 있는 표현들


“So what you’re saying is…”
“Let me make sure I understood correctly.”
“Just to confirm…”
“Can I repeat what I heard to check if I got it right?”

이런 문장들은 회의나 이메일, 심지어 일상 대화에서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다국적 팀에서는, 오히려 이런 문장들이 ‘배려 있는 프로의 언어’로 받아들여진다.

Better safe than sorry


안하다고 하는 것보다 안전한 게 낫다란 말은 노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돌다리를 두들겨 본다’는 말은 조심성 그 이상의 지혜다. 글로벌 환경에서는 그 지혜가 곧 소통의 정밀함으로 이어진다.
나도 처음엔 망설였다. 괜한 질문으로 어색해질까 봐, 괜히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정확히 이해하고, 맞게 전달하기 위해 ‘한 번 더 묻는 것’이야말로 가장 사려 깊고, 실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묻는 용기. 그게 바로 '돌다리를 두들겨 보는’ 태도다.
당신은 오늘, 어느 말을 다시 되짚어 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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