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쌀국수가 먹을 만하다.
베를린에 있으면서 먹는 것이 문제였다. 아침은 호텔조식으로 해결했지만 낮에 돌아다니면서 점심과 저녁을 때우는 일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외국에 가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호텔조식을 신청하는 편이다. 아침부터 밖에서 마땅히 먹을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얼 먹으려고 일찍부터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는 것도 귀찮다.
유럽의 호텔 조식은 대부분 뷔페식인데 아주 부실한 곳이 아니면 먹을 만하다. 여러 가지 빵 종류, 과일, 다양한 요구르트, 햄, 소시지, 주스 등 어떤 경우에는 연어회까지 나오는 곳도 있다. 보통 삶은 계란은 기본으로 나오고 따뜻한 수프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난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다. 여러 가지 못 보던 음식을 골라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밥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평생 동안 밥을 먹었으니 며칠 정도는 견딜만하다.
아침 호텔 조식을 하면서 슬그머니 빵과 과일 몇 개 봉지에 넣어온다. 이 도둑질은 오래전 여행사 가이드로부터 배웠다. 그것이 저녁 요기에 도움이 된다. 저녁은 가볍게 먹는 편이라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 약간의 음료수와 샐러드 하나 정도 사 오면 된다.
점심은 돌아다니다 먹어야 하는데 마땅치 않다. 한식집이 어디 있는지 알 수없고, 구글을 뒤지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부근에 있으면 다행이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간다면 일부러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
그러다가 우연히 태국이나 베트남 식당이 무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베를린 중앙역 뒤편 광장에 가보곤 하였는데 이상한 건물이 보였다. 10층 이상 될 듯한 건물인데 외부는 전부 반사유리로 되어 있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무슨 건물인 지 궁금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Food Factory'라고 쓰여있어 무슨 음식을 파는 곳으로 추정되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1층은 일종의 food court 비슷한 형태로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뜨끈한 국물과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런 메뉴가 있을까,Food Factory에 들어가 한 바퀴 휙 들러보니 가장 마땅한 메뉴가 보인다. 베트남 식당의 쌀국수! 고기와 뜨끈한 국물이 들어있다. 고기가 들어간 국수는 무언가 비위가 맞지 않을 것 같다. 베트남 쌀국수는 먹어본 적이 있지만, 고기가 들어간 것은 먹어본 적이 없다. 담백한 쌀면발에 느끼한 고기가 어울릴까, 하지만 지금 나는 어울리느니 안 어울리느니 하는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나는 결국 쌀국수를 주문했다. 특유의 향이 코끝을 맴돌며 식욕을 자극한다. 고기의 식감이 부드럽다. 젓가락을 휘저어 고기를 건져먹는데 한참 먹어도 국물 밑에 고기가 나온다. 소고기의 육질도 부드럽고 양도 제법 많다. 이 정도라면 고깃집의 1인분보다도 많을 것 같다. 담백한 쌀국수의 면발이 입안에서 제법 기분 좋게 맴돈다.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니 속이 개운해지며 머리도 개운해지는 듯하다. 아, 이 쌀국숫집은 자주 와야겠다. 뜨끈한 국물과 고기가 먹고 싶을 때 자주 와야겠다. 내 숙소가 베를린 중앙역 건너편에 위치해 있으니 거리도 멀지 않다. 나는 베를린에 있으면서 이 베트남식당에 3번이나 다녀갔다. 그런데 갈 때마다 응대하는 사람이 달랐다. 온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았는데 처음 갈 때는 딸이, 두 번째 갈 때는 부인이, 세 번째 갈 때는 남편이 응대하였다.
나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가끔 베를린 중앙역 광장을 한참이나 서성거리곤 했다. 여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그들의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쓸데없이 서성거렸다.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이 일터에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모습으로 분주하다. 베를린은 저녁 9시가 되어도 어둡지 않고 약간 어스름하다. 그러면서 하늘 한쪽으로는 달도 보인다. 한국에서 보던 달을 베를린에서 보니 반가웠다. 이렇게 베를린의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